버려진 내면의 나, 자극에 빠진 외면의 나.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현재의 우리 자신이 돼야 한다. 새롭고, 단 한 번 뿐이며, 비교 불가능한 존재, 스스로 법칙을 만들고 스스로를 창조하는 그런 인간이 돼야 한다. <쇼펜하우어, 니체 필사바카라, 강용수 저>
사람이 슬롯생활을 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도 중요하다. 우리는 내면의 나와 외면의 나를 동시에 가지고 살아간다.
내면의 나는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편안하고 행복한지를 아는 존재다.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살아가고 싶은 욕구이기도 하다.
반면 외면의 나는 슬롯 속에서 타인에게 인정받고 좋은 모습으로 비치기를 바라는 나다. 슬롯적 동물인 인간에게 외면의 모습은 관계를 맺고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문제는 외면의 나가 내면의 나보다 중요해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슬롯를 이루어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었다. 자연 속에서 생존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삶은 점차 조직과 제도, 관습과 규범 속으로 들어갔다.
옷을 입고 자신을 꾸미며 외모를 가꾸는 일은 단순히 몸을 보호하는 행위를 넘어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슬롯가 복잡해지고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본래의 모습보다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만드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보이는 모습이 경쟁력이 되는 슬롯에서 자신을 잘 꾸미는 일은 때로 생존을 위한 전략이 된다. 좋은 옷을 입고,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는 소비를 하며, 슬롯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어 자신을 관리한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이상 어느 정도의 겉치레는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면 자신의 욕구보다 타인의 기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묻기보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부터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산속에 들어가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그들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만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것을 마련하고, 먹을 것을 직접 만들어 편안하게 식사한다. 음식을 어떻게 차려야 보기 좋은지,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평가할지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겉치레를 덜어낸 자리에서 자신과 자연에 집중하며 살아간다.
물론 그들의 삶이 더 낫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 모습을 통해 한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을까.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유지하느라 정작 자신이 원하는 삶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본주의 슬롯는 이러한 욕망을 더욱 부추긴다. 마케팅은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과 유행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소유해야만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들이 가진 것을 갖지 못하면 뒤처지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소비는 필요를 충족하는 행위를 넘어 자신의 지위와 능력을 증명하는 수단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물건을 소비하는 동시에 타인의 시선과 슬롯가 만들어 놓은 기준까지 소비하며 살아간다.
어린 시절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솔직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슬롯의 틀 안으로 들어갈수록 우리는 점점 자신을 포장하는 방법을 배운다.
회사에 소속되면 온라인 게임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태도와 모습을 익히고, 슬롯가 요구하는 역할에 맞추어 행동한다. 때로는 자신의 생각을 감추고, 때로는 두꺼운 화장과 세련된 옷차림 뒤에 있는 본래의 모습을 숨기기도 한다.
그렇게 외면의 나는 점점 정교해지지만, 내면의 나는 오히려 희미해질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더욱 가속하는 것이 SNS다.
과거에는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대상이 가족이나 친구, 온라인 게임 동료처럼 가까운 사람들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일상과 생각, 소비와 취향, 심지어 사적인 순간까지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할 수 있다. SNS는 우리에게 자신을 표현할 기회를 주었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도록 유혹한다.
좋아요와 댓글, 조회 수는 사람들에게 즉각적인 인정과 만족감을 준다. 사람들은 더 많은 관심을 받기 위해 자신의 일상을 공개하고, 남들에게 부러움을 살 만한 순간을 만들어 낸다. 평범한 하루보다 특별해 보이는 하루를 기록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 더 근사하게 편집된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어느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일과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일이 뒤섞인다.
SNS에 올라온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일 수는 없다. 사진 속에는 웃음이 있지만 그 뒤에는 외로움이 있을 수 있고, 화려한 여행의 기록 뒤에는 지친 일상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화면에 드러난 일부를 그 사람의 삶 전체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타인의 화려한 장면과 비교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한다.
SNS에서 보이는 나와 실제의 내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점점 화면 속의 나를 진짜 나인 것처럼 여기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모습이 곧 자신의 가치라고 믿기 시작하는 것이다.
조회 수와 관심이 돈으로 연결되는 순간에는 자신을 노출하는 일이 하나의 수익 수단이 되기도 한다. 더 많은 관심을 얻기 위해 사생활을 공개하고, 더 자극적인 장면을 만들어 내며, 자신의 삶마저 콘텐츠로 바꾸어 간다.
그렇게 내면의 나는 사라지고 외면의 나만 남는 삶이 만들어진다.
얼마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른바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니는 사람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빵을 좋아한다며 하루에 다섯 곳이 넘는 빵집을 방문하고, 같은 종류의 빵이라도 가게마다 맛이 다르다며 여러 곳을 찾아다닌다. 빵을 다 먹지 못하면서도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새로운 빵집을 방문한다.
물론 다양한 빵을 맛보고 좋은 공간을 찾아다니는 일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취향이자 즐거운 경험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빵을 음미하는 일보다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는 일이 더 중요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먹는 즐거움보다 기록하는 일이 앞서고, 자신의 만족보다 다른 사람의 반응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곳에 있는지 잊어버리게 된다.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유명한 공간을 찾아가 자신의 외모를 뽐내고, 그곳에서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려 한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하면서 만족감을 얻는다. 마치 자신이 많은 사람에게 주목받는 공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작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은 사라진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오늘 하루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무엇을 배우고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은지 묻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은 끊임없이 확인하면서 자신의 마음은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것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고 행복을 누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SNS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새로운 취향과 경험을 발견하게 해주는 긍정적인 역할도 한다. 문제는 SNS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것 없이는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기 어려워지는 데 있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보다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삶을 우선하게 될 때, 우리는 어느새 무언가에 중독된 사람처럼 그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유가 사라진 자리에는 사진과 숫자가 남는다. 깊이 생각하고 느끼는 일보다 즉각적인 반응이 중요해지고,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일보다 그 삶이 얼마나 돋보이는지가 중요해진다.
우리에게는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이 많다. 젊은 시절에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자신을 꾸미며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는 것 역시 삶의 한 과정일 수 있다. 그러나 외부의 시선에 자신을 지나치게 맡긴 채 살아간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그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기 어렵다.
젊음이 지나갈수록 사람들은 사라져 가는 젊음을 아쉬워하고, 과거의 모습을 되찾으려 애쓰기도 한다. 자신의 내면을 가꾸기보다 외모를 통해 젊음을 붙잡으려 하며, 변화하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외면의 모습에 집착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 외모는 변한다. 젊음도, 유행도, 사람들의 관심도 영원하지 않다. 한때 자신을 빛나게 해 주었던 조건들이 사라진 뒤에도 자신을 지탱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타인의 칭찬과 관심이 사라져도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오랜 시간 가꾸어야 할 내면의 힘이 아닐까.
인간은 내면의 나와 외면의 나를 함께 가지고 살아간다. 외면의 나만으로 살아갈 수도 없고, 외면의 나를 완전히 버린 채 살아갈 수도 없다. 우리는 슬롯 속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고, 때로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자신을 가꾸고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일도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다만 외면의 나가 내면의 나를 넘어서는 순간을 경계해야 한다. 타인의 인정에 의존할수록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삶을 타인의 손에 맡기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입을지, 어디에 갈지, 무엇을 먹을지, 어떤 삶을 살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기준으로 선택하게 된다. 내 삶의 주인이 나라고 믿으면서도 선택의 기준은 외부에 두는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사유해야 할까. 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고민해야 할까.
슬롯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외면의 나를 가꾸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으라고 말한다. 그 요구를 무작정 따라가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잊어버릴 수 있다.
사유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를 멈춰 세운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타인의 시선을 통해 욕망하게 된 것인지 묻게 한다.
생각하고 사유하는 일은 때로 따분하고 고단하다. 인문학 바카라을 읽으며 인간과 삶의 의미를 고민해야 할 때도 있고, 힘든 일을 하며 땀과 먼지에 뒤덮인 채 노동의 가치를 배워야 할 때도 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초라한 순간을 견디며 자신의 부족함을 마주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시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알아간다. 화려한 모습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 다른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스스로 내린 선택에서, 편안함이 아니라 어려움을 견디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내면의 나는 그렇게 조금씩 단단해진다.
반면 외면의 나만을 가꾸는 사람은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을 피하려 한다. 타인의 인정을 얻는 데 방해가 되는 실패와 부족함을 감추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애쓴다.
그러다 보면 외부의 시선에 길들여지고, 자신이 만든 모습에 스스로 갇히게 된다.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해 살아가지만, 그 인정이 사라질까 두려워 더욱 타인의 시선에 매달리는 것이다.
강하다는 것은 언제나 남들보다 돋보이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외면의 나를 내면의 나로 지켜낼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과 다른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더라도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 것, 힘든 시간조차 남의 평가가 아닌 자신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강함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흔들 것이다. 더 많이 소비하라고, 더 근사하게 보이라고,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으라고 말할 것이다. SNS는 그 욕망을 더욱 빠르게 자극하고, 알고리즘은 우리가 오래 머물수록 더 많은 볼거리와 비교의 대상을 보여줄 것이다. 그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화면 속 세상에 머무는 시간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보다 길어지고 있다면, 잠시 멈추어 볼 필요가 있다.
SNS에서 얻는 소통과 인정이 진정한 자신을 만나는 시간보다 더 소중해져서는 안 된다. 타인의 반응을 확인하는 데 익숙해진 나머지 자신의 감정을 살피는 일에 서툴러져서는 안 된다.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세상을 따라가느라 정작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놓쳐서도 안 된다.
외면의 나도 소중하다. 슬롯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은 인간에게 필요한 삶의 방식이다. 그러나 외면의 나를 지키기 위해 내면의 나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져도 내가 나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하고,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순간에도 내 삶이 충분히 의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 살아가는 삶은 끝내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만, 자신의 내면을 알고 살아가는 삶은 흔들리더라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면의 나를 더 화려하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내면의 나를 잃지 않는 단단함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시선이 유혹하는 방향으로 무작정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힘. 세상이 정해 놓은 기준 속에서도 자신만의 색을 잃지 않고 두 발로 땅을 딛고 살아가는 힘.
SNS에 중독되어 사람들의 호응 속에서 진짜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화면 속에서 더 근사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기보다, 화면 밖에서 자신의 삶을 더 깊이 살아갔으면 한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보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고민하고, 다른 사람의 관심을 얻기 위한 시간만큼 자신의 내면을 가꾸는 시간에도 마음을 쏟았으면 한다.
우리는 모두 외면의 나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 외면의 나를 지켜주는 것은 결국 내면의 나다.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자신을 끊임없이 바꾸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신이 선택한 삶을 바카라임지며, 타인의 시선이 없어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어쩌면 진정한 자유란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선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