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일상이 삶의 향기를 강하게 한다.
새벽에 눈을 뜨고 산바카라을 나선다. 아직 밖은 어둡다. 거리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의 불빛만 어둠을 가른다.
나무 사이로 스며 나오는 가을의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숲길에는 도토리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고, 은행나무 잎은 어느새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다. 발밑에는 노란 은행 열매가 수없이 떨어져 있다.
사람들이 잠든 시간에도 자연은 쉬지 않는다.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에도 나무는 잎을 바꾸고, 열매를 떨어뜨리고, 계절을 다음 계절로 밀어 보내고 있다.
자연에게 새벽은 멈춰 있는 시간이 아니라 조용히 움직이는 시간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연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어두운 새벽부터 자신의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건을 납품하는 사람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를 향해 오늘 장사에 필요한 물건을 싣고 어둠을 달린다. 밤새 거리에 놓인 쓰레기를 치우는 분들은 이른 새벽 버스를 타고 와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 거리를 정리한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음식점과 호텔의 직원들은 피곤한 몸을 일으켜 새벽부터 주방의 불을 밝히고 음식을 준비한다.
우리가 아직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시간에도 누군가는 이미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새벽의 어둠 속에도 삶은 움직이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삶은 언제나 특별한 것들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굉장하고 멋진 일,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이나 많은 돈과 권력이 삶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사람마다 가진 것이 다르고 살아가는 모습도 다르지만, 결국 우리의 삶을 가장 오래 지탱하는 것은 평범한 하루다.
어쩌면 삶은 특별한 순간보다 평범한 순간이 훨씬 많다.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고, 다시 잠자리에 드는 일. 때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하루를 보내는 것.
그러나 바로 그 평범함이 삶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를 제대로 살아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새벽에 움직이는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어제 힘든 일이 있었을 수도 있고, 오늘 해결해야 할 걱정이 있을 수도 있다. 가족을 위해 일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꿈을 위해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삶을 모두 알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그들에게도 오늘이라는 하루가 소중하다는 것. 그래서 새벽에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서로 만나지 않아도, 서로의 이름을 몰라도 우리는 같은 시간 속에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의 부지런함이 다른 누군가의 하루를 시작하게 만들고, 그렇게 서로의 삶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결되어 있다.
내가 아침에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것도, 깨끗한 거리를 걸을 수 있는 것도, 가게에 필요한 물건이 준비되어 있는 것도 누군가가 나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리는 낮의 풍요로움 뒤에는 누군가의 새벽이 있다.
새벽부터 움직이는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나 자신의 삶도 돌아보게 된다. 내가 조금 일찍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나보다 훨씬 먼저 움직이고 있다.
내가 힘들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이미 하루의 첫 번째 일을 끝내고 있다. 그것은 나에게 부담을 주기보다 오히려 이상한 힘을 준다.
피곤함과 고단함은 삶에서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누구에게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 피곤한 날이 있고 힘겨운 시간이 있다. 삶에서 고단함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은 아마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 또한 살아 있다는 증거다.
일을 하고 피곤해지는 것, 사람 때문에 마음이 힘들어지는 것, 해야 할 일을 앞두고 고민하는 것. 그런 모든 것들이 삶의 일부다.
고단함이 있다는 것은 내가 오늘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뜻이고, 피곤함이 있다는 것은 내가 하루를 살아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새벽의 사람들을 바라보면 힘듦보다 활력을 느낀다. 그들의 부지런함이 나에게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기보다, ‘오늘도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가는지가 결국 한 사람의 삶을 만든다.
특별한 이벤트가 많은 삶이 반드시 특별한 삶은 아니다. 특별함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그것에 익숙해지고 더 큰 자극을 찾게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상을 소중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평범한 하루 속에서 자신만의 특별함을 만들어 간다.
그래서 삶의 중심에는 특별함보다 일상이 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평범한 아침에 눈을 뜨고, 가족을 생각하고, 자신의 일을 하고, 누군가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고, 하루를 무사히 마치는 것. 그것은 결코 보잘것없는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는 것이 대단한 일이듯, 한 사람이 자신의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 역시 대단한 일이다.
새벽은 그런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새벽에 움직이는 일들은 대부분 시작을 위한 것이다. 누군가는 물건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거리를 정리하고, 누군가는 음식을 만들고, 누군가는 하루의 첫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들의 새벽이 있어 우리의 낮이 조금 더 풍요로워진다.
어쩌면 세상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새벽들 위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새벽이 다른 누군가의 아침이 되고, 누군가의 수고가 다른 사람의 평범한 하루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삶에 기대어 살아간다.
어둠이 조금씩 걷힌다.
나무 사이로 희미한 빛이 들어오고, 어둡던 하늘이 조금씩 밝아진다. 밤과 아침 사이에 놓인 새벽은 어느 순간 아침이 된다. 새벽과 아침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다만 새벽이 있었기에 아침이 오는 것이다.
그래서 새벽에는 특별한 엄숙함이 있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은 이미 많은 것이 시작된 시간. 세상이 깨어나기 전부터 누군가는 자신의 하루를 준비하고 있는 시간.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래서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새벽은 준비의 시간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가장 뜨거운 삶의 시간이다. 그 시간에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이 소중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해도 괜찮다. 때로는 힘들고 지쳐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다.
일찍 일어나 새벽을 걸어보면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린다. 새벽의 고요함도 들리고, 새벽의 분주함도 보인다.
자연이 움직이는 소리,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 누군가의 발걸음, 물건을 싣고 내리는 소리, 아침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움직임. 그 모든 것이 삶의 소리다.
새벽은 우리에게 말없이 알려준다.
삶은 특별한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반복하는 하루하루 속에도 삶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평범한 하루가 쌓여 결국 우리의 인생이 된다.
오늘도 누군가는 새벽을 열고, 누군가는 그 새벽을 지나 아침을 맞는다. 나 역시 그들 중 한 사람이다.
내가 가진 시간이 아주 특별하지 않아도 좋다. 오늘 주어진 하루를 소중하게 살아가면 된다.
어쩌면 행복이란 대단한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가 다시 주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새벽이 있어서 아침이 오듯, 평범한 하루들이 모여 우리의 삶이 된다. 오늘 아침도 그렇게 시작된다.
새벽의 고요함과 분주함을 지나, 다시 나의 평범한 하루가 시작된다.
그 평범함이 고맙다.
그리고 그 평범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생각해 보면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