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산다는 것, AI 시대 속 나를 찾기

사람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

byWOODYK
일상득취는 일상생활 속에서 삶의 운치를 찾아 누린다는 말이다. 의미는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내고 만드는 것이다. 저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내 곁에 있다. 하지만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맑은 눈, 밝은 귀, 그리고 무엇보다 텅 빈 마음이 있어야 한다. 탐욕과 운치는 서로 인연이 없다. 재물이 많다고 운치가 따르지는 않는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중, 정민 저>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다니며 AI에 대한 공포를 느낍니다. AI의 등장이 세상을 혁신하는 기폭제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고, 이 분야를 알아야만 슬롯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AI의 발전이 사람이 하던 일의 대부분을 대체하고, 로봇이 사람의 일을 덜어주며, 사람이 필요했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터미네이터〉, 〈블레이드 러너〉 같은 SF 영화 속 장면들이 더는 허구처럼 느껴지지 않는 세상이 올 것 같습니다. 미래를 함부로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슬롯가 변해가는 방향은 이미 정해진 듯합니다.


AI는 이미 일상 속에 자리 잡았고, 이 기술들이 슬롯 전반의 변화를 주도하리라는 것은 기정사실처럼 보입니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일은 AI가 탑재된 로봇이, 귀찮은 일은 사람 대신 로봇이 맡게 될 것입니다.


기술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모든 분야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고, 문제를 풀어내는 수준도 초스피드입니다. 인간의 사유보다 AI의 분석이 이 세상에 더 필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슬롯에 변혁이 일어날 때는 언제나 작용과 반작용이 따랐습니다. AI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더 편한 길을 찾게 되고 수고로움도 덜게 될 것입니다. 일하는 시간은 줄고, 힘들고 귀찮은 일은 굳이 사람이 하려 들지 않을 것입니다.


운전을 하지 않아도 집까지 데려다주는 자동차가 있으니 생활 속 편의는 더욱 향상됩니다. 생각하기 싫은 문제는 인공지능에게 물어 해결하고, 사람은 사유하는 시간을 계속 줄여갈 것입니다. 결국 편해지는 만큼 사람들은 재미와 단순함, 쾌락에 더 빠져들 것입니다.


그 편안함은 생각하는 능력을 축소시키고 신체 활동도 최소화하게 만들 것입니다. 일자리는 더욱 사라지고, 슬롯는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기본소득이라는 형태로 지급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편안하게 사는 것만이 좋은 삶은 아닙니다. 편안함이 주어지는 만큼 반작용도 따르게 마련입니다. 편안함에 익숙해지면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게 되고, 더 큰 편안함을 찾다가 게으르고 나태한 생활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신체와 뇌는 활동이 많을수록 오히려 힘이 생깁니다. 반대로 활동이 줄어드는 순간부터는 퇴화가 지속됩니다. AI와 로봇이 주는 편리함에 중독되는 순간, 나라는 존재의 가치는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오며 느낀 감정과 삶의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인간은 편안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기 위해 사는 존재입니다.


인간답다는 것은 사람으로서의 역할과 활동을 수행하고, 다른 사람들과 슬롯적으로 교류하면서 내가 공동체 안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는 편안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결핍과 부족함이 있고, 그것을 견뎌낼 인내력과 회복탄력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니체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어떤 고통도 견뎌낼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불편함을 감수할 이유가 분명한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뜻일 것입니다.


회사에서 후배들에게 늘 이렇게 말합니다. "일이 별로 없어서 회사생활이 편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성장이 멈추는 순간일 수 있다." 무언가를 배우는 즐거움, 무언가를 하며 성장하는 기쁨, 그 과정에서 성취하는 행복감,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슬픔과 기쁨. 이 모든 것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이며, 우리가 불편함을 감수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제도와 시스템 속에서 살아갑니다. 〈매트릭스〉와 〈다크 시티〉 같은 영화 속에서도 인간은 늘 인간답게 살고자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제도와 슬롯적 시스템에서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영화 속 사람들은 갇힌 틀을 깨고 자신을 찾아 나아가려 합니다. 그 과정은 고되고, 현실적으로도 버겁습니다. 그래도 그 어려운 길을 헤쳐 나가려 애쓰는 이유는, 인간다움을 버리는 순간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에 의존해 살아가는 편을 선호할 수도 있습니다. 그쪽이 편안하니까요. 그러나 한번 의존하기 시작하면 그 힘에 이끌려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사유의 시간을 갖지 않고 AI에게 묻고 의지하다 보면, 우리의 뇌는 AI라는 도구에 의존하게 되어 더 이상 사유라는 활동을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뇌의 활동은 줄어들고, 의미 있는 사유를 할 이유도 사라집니다. 고리타분하게 여겨지는 인문학과 철학은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렇다면 AI가 발전할수록 왜 사람들은 오히려 인문학과 철학을 이야기할까요?


그 이유를 되물어 보면 답이 보입니다. 사유의 시간은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하고,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살아가게 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어렵게 느껴지는 인문학과 철학은 결국 인간이 어떻게, 왜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또 물으며 생각할 시간을 주는 학문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일러주는 중요한 삶의 요소입니다.


그런데도 쓸모없어 보이고 귀찮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 분야를 등한시합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온 시간 속에서 사람을 이야기하는 인문학과 삶을 이야기하는 철학이 빠진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 이미 그것들이 녹아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개똥철학' 또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문학과 철학이 스며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의 바탕에는 반드시 사유의 시간이 있습니다.


아무리 문명이 발전하고 혁신이 일어나 인간에게 편안함을 제공한다 해도,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왜 존재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사유하고, 편안함과 불편함의 균형을 조절하며 살아가는 일입니다.





세상의 균형이 깨지고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칠 때, 그 안에 사는 인간은 스스로의 의미와 삶의 기준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작용과 반작용, 편안함과 불편함, AI와 철학·인문학, 사람과 기계, 가짜와 진짜 뉴스, 좌와 우의 정치적 극단화 등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팽팽한 균형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파스칼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불렀습니다. 우주 앞에서 갈대처럼 연약한 존재지만, 생각하는 존재이기에 존엄하다는 말입니다. 그 팽팽한 균형을 지키는 것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슬롯 속에서 나는 작은 존재일지 모르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생각하고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며 나라는 사람의 균형을 유지하고 깨어 있으려 합니다. 그 속에서 정(正)·반(反)·합(合)을 만들고, 다시 또 정반합을 만들어가며 작은 성장들을 이루려 합니다.


다산은 말한다. 일상의 공간에 마음을 쏟아라. 굳이 먼 데를 기웃거리지 마라. 명승지를 찾아다닐 것도 없다. 내가 사는 공간에 정성을 쏟아 그곳에서 일상의 기쁨을 만끽하라. 생활 속에 운치를 깃들이는 일. 그를 통해 삶의 차원을 한 단계 높이는 일은 몸은 비록 티끌세상에 묶여 있어도 마음은 훨훨 자유로운 경계 속에 노닐게 하는 일이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중, 정민 저>



삶의 의미와 인간다움의 가치를 소확행처럼 실천하려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새벽에 글을 쓰고, 조금씩이라도 바카라을 읽고, 사색을 이어갑니다.


회사에서는 동료들과 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더 깊이 만들어가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활동을 하려 합니다. 잠과 깨어 있음의 균형을 지키며 뇌의 활동을 보존하고, 삶의 의미를 더욱 깊게 만들어가려 노력합니다.


변화는 사람을 더욱 정신 차리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AI의 발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상상을 넘어서지만, 살아 있는 동안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계속 찾아가고, 그 활동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켜가려 노력할 것입니다.


그 여정에서 글쓰기는 사유의 여행을 더욱 자유롭게 해주는 친구가 되어 줍니다. 나이 들어감에 글과 바카라은 인간다움을 유지시켜 주는 소중한 동반자가 되어 주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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