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속에 어머니가 살아계시다.

자반고등어, 어머니의 추억들이 다시 살아난다.

byWOODYK
엄마는 그래. 지는 굶어도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게, 그게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더라고. 내가 못 먹어도 너 먹이는 그 밥 한 숟가락이 내 목숨보다 무겁더라.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중>


회사 근처에 생선구이집이 있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날이 좋건 늘 문을 연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시장에 흔하게 깔린 생선 좌판에서 자반고등어를 사 오셨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고등어를 구우면 연기가 올라온다. 비린 냄새가 나지만 이미 고등어구이의 맛을 알기에 저녁을 기다렸다. 아버지가 퇴근 후 집에 오시면 상에는 여지없이 고등어구이가 올라왔다. 아마도 그 시절에는 고등어가 흔하고 값싼 생선이었을 것이다.


고기는 자주 못 봐도 생선 중 고등어는 자주 보았다. 자반고등어도 싱싱하면 냄새가 덜 났다. 하지만 어느 때는 신선도가 떨어졌는지 먹을 때 비린내가 물씬 풍기기도 했다.


요즘은 대부분 아파트 생활을 하기에 생선을 집에서 구워 먹지 않는다. 비린내가 집에 배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생선구이를 먹기 힘든 세상이다.


어머니의 저녁 반찬에 올라온 큼직한 자반고등어를 먹을 때면 늘 갓 지어 따끈한 집밥이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에 어머니가 올려주신 구운 자반고등어살을 먹으면, 입안에서 짭조름하게 배어든 고등어살이 꿈틀거리듯 미각을 살려 주었다.


잘 구워진 고등어는 뼈에 남은 겉살 맛이 일품이었던 기억이 난다. 뼈에 붙은 살까지 입으로 다 뜯어먹어야 고등어를 제대로 먹은 듯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고등어 가시가 목에 걸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워낙 급하게 먹다 보니 중간중간 가시를 모르고 삼킨 적이 많았다. 배 속으로 넘어가면 다행이지만 목에 걸릴 때면 먹던 밥도 뱉고 계속 꽥꽥거리며 안절부절못했다.


어머니가 상추에 밥을 크게 싸서 입에 넣어 주시면 그제야 가시가 사라지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 꼬마가 지금은 어엿한 중년이 되어간다. 어린 시절 구운 자반고등어의 추억을 생선구이 식당에서 찾기도 한다. 열무김치와 배추된장찌개, 그리고 생선구이를 먹으며 어린 시절을 되새겨 본다.


어머니는 고등어가 지겨워질 때면 임연수구이를 해 주시기도 했다. 하지만 고등어가 압도적으로 밥상을 차지했다. 아버지가 좋아하셔서 그러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늘 온라인 게임에서 고생하는 남편을 안쓰러워하셨고, 잘해 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식 외에 의지할 사람은 아버지뿐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낯선 타지로 혼자 와서 결혼을 하셨고, 자신을 응원해 줄 사람은 아버지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주름진 손은 자반고등어를 구울 때도 생겼지만,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바카라임져야 했던 무게에서 비롯된 주름이기도 했다.


고등어구이나 임연수구이를 식당에서 점심으로 먹을 때면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 일 수 있다. 흔했던 국내산 고등어들도 지금은 다 수입산이고, 어릴 적 따뜻한 밥 위에 올려 먹던 자반고등어의 그 맛은 사라진 지 오래다.


어머니의 정성 어린 손길보다는 장사에서 얻어지는 이윤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생선구이이기에 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 크기도 달라지고 맛도 달라졌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먹는 생선구이가 옛 추억을 불러온다.


구이가 아니면 어머니는 생선조림도 자주 해 주셨다. 싱싱한 고등어를 통째로 시장에서 사 오시면 직접 손질하고 씻어 조림을 준비하셨다. 냄비에 밭에서 뽑은 무를 잘라 깔고 그 위에 고등어를 올려 양념을 하고 지글지글 불에 조리셨다.


시간이 지나면서 물기가 줄어들고 조림이 익어 가면, 옆에서는 어머니가 김에 참기름을 발라 소금을 뿌려 구우셨다. 조림이 완성되어 냄비 뚜껑을 열면 뽀얀 증기가 위로 올라가며 뜨거운 열기를 식혔다.


고등어조림을 접시에 올리고 조려진 무까지 담아 국물을 끼얹으면, 그것만으로 밥 한 그릇을 충분히 비울 수 있는 반찬이었다. 거기에 참기름 두른 구운 김이면 저녁상은 완벽했다.


지금은 생선조림을 먹을 곳이 많지 않다. 어머니의 생선조림 같은 맛을 볼 수 있는 식당도 없고, 그 맛을 구현하는 곳도 없다.


지금은 김도 포장된 것을 뜯어 일회용으로 먹지만, 어머니는 직접 기름을 바르고 구워 최고의 김맛을 내셨다. 흰쌀밥에 김 한 장 올려 먹으면 참기름이 밥을 감싸고 고소한 김이 입에서 녹아내렸다. 거기에 조림 생선과 무를 한입 먹으면 이미 입은 천국을 오가는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빨갛게 고춧가루가 묻은 총각김치를 입에 넣으면 그날 저녁은 깔끔히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밥솥 누룽지를 담아 식구들 상에 올려놓으셨다. 배가 터질 듯해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시 숟가락을 들어 구수하고 탄 맛 나는 누룽지를 입에 넣으며 행복감을 느꼈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집밥을 먹고 싶다.


엄마가 해준 된장찌개 냄새가 나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져. 그 냄새는 그냥 음식 냄새가 아니라,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있다는 신호거든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중>



중년이 되어도 잊히지 않는 어머니의 손맛, 그 집밥이 그립다. 죽을 때까지 그 맛을 잊을 수 없을 듯하다. 그래서 가을이 깊어질수록 더욱 어머니가 보고 싶어진다.


보고 싶어도,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과 손맛, 그리고 그녀가 남긴 맛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다.


보고 싶다. 목소리가 듣고 싶다. 여느 식당에서 나오는 생선구이가 아닌, 어머니의 고등어 반찬을 다시 먹어 보고 싶다.


나이가 들어가고, 계절이 바뀌며 시간이 흘러간다. 이제는 나도 아빠가 되어 부모님의 그늘을 이해하고 감사함을 느끼며 조금씩 성숙해진다. 생선구이집이 주는 낭만이 오늘 부모님을 소환한다.


어머니의 집밥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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