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글이 될 때,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

하루가 글이 되고 우리 모두는 작가가 된다.

byWOODYK
작가는 아무 희망도 없고, 약속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을 때도 계속해서 글을 쓰기 때문에 작가다. <주노 디아즈>



작가가 된다는 것을 꿈꾼 적은 없었다. 작가는 멀리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일 줄 알았다. 글을 쓰는 작가를 꿈꾸기 시작한 것은 글이 하나 둘 쌓이면서부터였다.


일상의 소소함을 진심으로 담아 글을 쓰다 보니 글들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학 시절 바카라을 읽고 느낀 것들을 정리하던 것이었는데, 회사에 들어와서는 답답함을 글에 담아 그때그때의 감정들을 시와 수필로 써 내려갔다.


새벽에 깨면 새벽의 느낌이 좋아 글을 썼고, 봄이 오면 봄내음을 담아 글로 옮겼다. 무더운 여름에는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며 소소한 글들을 썼고, 가을 하늘을 보며 차오르는 감정을 담아 글을 썼다.


추운 겨울에 내린 눈을 보며 순수함을 글로 담기도 했고, 비가 오면 창밖의 풍경을 눈에만 담지 않고 굳이 글로 표현했다. 자연이 건네는 철학을 삶에 견주며 끄적이고, 나이 들어가는 것의 의미를 한 해가 지날 때마다 글로 새겼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수필로 쓰며, 아이가 자라며 겪어야 할 삶의 과정들을 아버지의 자리에서 아들에게 글로 전했다.


바카라을 읽고 느낀 감정을 잊지 않으려 글로 남겨 두었고, 회사원으로서의 애환을 담아 써 내려갔다. 슬롯의 권력과 정치적 상황, 경제적 이야기들을 나름의 기준으로 풀어냈고, 부모님께 대한 고마움도 글로 표현했다.


운동을 하며 느끼는 감정을 살아가며 얻은 철학과 접목해 글을 쓰기도 했고, 잘 마무리하고 싶은 은퇴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적어 보기도 했다.


후배들이 조언을 구했던 기억을 담아 온라인 게임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글로 적었고, 회사를 떠나는 선배들을 보며 내 마음을 정리해 보기도 했다. 나무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에세이를 쓰고, 걸으며 스치는 감정들을 글로 옮겼다.


어떻게 사는 것이 내 삶을 사는 것인지 고민하며 글을 쓰기도 했고, 딱히 할 일이 없어 심심해서 쓰기도 했다. 이제는 취미가 되어버린 글쓰기를 끊지 못해 오늘도 글을 쓴다.


평범한 일상 모두가 이야기가 되고, 하루하루의 시간들이 다 나의 역사가 된다. 그 순간의 감정들이 모여 글이 되고, 사유의 시간이 글을 쓸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준다. 삶의 모든 것이 글의 소재가 되고, 늘 글은 내 곁에 있었다.


글이 나를 단련시키기보다 글을 쓰며 삶을 되짚어 볼 때 나는 성장하고 있었다. 삶을 되짚어 쓰는 시간이 나에게는 새벽의 고요함이었고, 그 시간이 성장의 순간들이였다.


새벽의 고요함이 나를 깨우면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지금의 감정을 글로 쓰고 다듬으면, 그 하루의 삶에 에너지를 불어넣은 것 같았다.


그렇게 쌓인 글들이 나의 삶의 지표가 되고, 글이 만들어 준 지침들이 나의 철학이 되어 준다. 누군가에게는 글 쓰는 것이 직업이지만, 나에게는 글 쓰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꿈같던 작가가 되어 있었다.


특별히 독자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보면 죽을 때까지 글을 쓰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 속 명대사를 보는 순간 그 대사가 하나의 글감이 되고, 삶 속에서 그 의미를 되찾아 글로 옮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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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바카라 읽는 시간은 줄어들지만, 바카라 속의 활자는 늘 우리 곁에서 살아 움직인다. 살다 보면 그 한 편의 글이 인생을 움직이고 마음을 울리기도 한다. 지나가는 수많은 시간들 속에 나에게 남는 것은 사진도 있지만, 글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어 준다.


혼자 있는 시간 속에 글이 없었다면 너무 심심하고 재미없었을 것이다. 글이 주는 가치는 나에게 너무나 소중하다.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고, 내 삶에 하나의 가르침이 되어 주는 시간이다.


글을 쓰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나 스스로가 작가로서의 삶을 일부나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 생각이 다듬어지지 않아 답답할 때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정돈되지 않은 고민들이 하나씩 글을 쓰며 자리를 잡아간다.


글은 결국 나를 깎아 다듬는 조각칼과 같다. 쓸수록 군더더기는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 조금 더 단단한 내가 남는다.


오늘 새벽도 그렇게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는 나를 보며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준다. 밖은 아직 어둠에 머물러 있지만 머릿속은 점점 밝아지고, 어둠 속에서 홀로 창밖을 보며 글을 쓴다. 작은 풀벌레 소리가 귓가에 다가오고, 적막한 시간 속 타이핑 소리가 고요함을 깨운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글을 쓰며 평범함을 시작하고,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수록 글의 힘은 더 커져만 간다. 살아온 시간만큼 경험과 추억은 많아지고, 그 모든 것들이 글의 이야기가 되어 준다.


글은 겉치레를 덜어낼수록 더욱 담백해진다. 생각이 정리되고 사유의 시간이 삶을 비추면서 버려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이 구분되고, 삶은 더욱 단순해지며 미니멀하게 여물어 간다.


글은 우리를 비우는 과정이자 채우는 과정이지만, 결국 형식을 덜어내고 정신적 알맹이를 채우는 과정이 되어 준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몸의 근육은 줄어들어도 정신의 근육은 오히려 단단해질 수 있다는 뜻일지 모른다. 멀게만 느껴지던 '작가'라는 타이틀이 더 이상 멀게 느껴지지 않고, 수십 년을 평범한 사람으로 써 온 글들이 나의 유언처럼 하나씩 쌓여가는 것에 행복감을 느낀다.


세상에 하나뿐인 글이 내 손에서 태어나며, 글을 쓰는 하루는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시간이 되어 준다. 언젠가 이 글들을 바카라으로 엮어 자식에게는 유언장으로 남기고, 후배들에게는 삶의 담담함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해 주고 싶다.


정신의 근육을 더 단단하게 키워주고, 삶의 평범함이 주는 행복을 느끼게 해 주는 글쓰기의 시간이 내 삶에서 소중하다.


누구에게나 일상은 존재하고, 그 일상이 글이 될 때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하는 사람이야말로, 나이만 먹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성숙해지는 사람일 것이다.



뮤즈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가 여러분의 집필실에 너울너울 날아들어 여러분의 타자기나 컴퓨터에 창작을 도와주는 마법의 가루를 뿌려주는 일은 절대로 없다. 뮤즈는 땅에서 지낸다. 그는 지하실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오히려 여러분이 뮤즈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내려간 김에 그의 거처를 잘 마련해줘야 한다. 다시 말해서 낑낑거리는 힘겨운 노동은 모두 여러분의 몫이라는 것이다. <유혹하는 글쓰기-스티븐 킹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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