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문화는 행동이다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마루에 누워 푸른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흰 구름이 느리게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머니는 내 곁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새벽부터 부엌에서 하루의 일을 시작하신 어머니가 잠시 쉬기 위해 마루에 누우신 것이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자장가 같았다. 곁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어머니는 늘 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날도 아마 아들 곁에 누워 잠시라도 몸과 마음을 쉬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나는 그때 그것을 알지 못했다. 어머니가 자신의 젊음을 가족을 위해 내어놓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모님의 희생이 조금씩 선명해진다. 어릴 때는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특히 추석이 다가오고 가을의 깊이가 더해질수록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더욱 또렷해진다.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마음 한구석에 설명하기 어려운 허전함이 찾아온다. 예전에는 몰랐던 감정이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어갈수록 가을을 탄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조금씩 알 것 같다.
바쁜 일상 때문에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의 산소에도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 그러나 살아가는 동안 두 분에게 받은 은혜만큼은 잊지 않으려고 한다. 때로 좋지 않은 일이 생겨도 부모님이 살아오시며 쌓으신 덕이 그만큼 나에게 액땜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부모가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것도 부모님이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신 것도 부모님이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많은 것을 말로 가르치지 않으셨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셨고,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애쓰셨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이야기하셨지만, 그 바탕에는 언제나 따뜻한 정이 있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자식들이 있으니 견딜 수 있다고 하셨고,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가족을 생각하며 버텨내셨다.
연세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진 뒤에도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스스로 힘겨워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 역시 부모의 사랑이었다.
자식을 키워보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는 말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자식은 부모의 말을 듣고 배우기도 하지만, 결국 부모의 행동을 보며 더 많은 것을 배운다. 다만 자식은 부모가 바라는 모습 그대로 자라지는 않는다. 그것 또한 부모가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이치일 것이다.
진정한 가정교육은 부모가 자식에게 무엇을 가르치느냐보다 부모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말로 교육하려 한다.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고,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부모님에게서 말보다 훨씬 강한 교육을 받았다.
부모님은 행동으로 가르치는 교육자였다.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주셨고, 성실함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게 해 주셨다. 이웃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람에게 어떤 마음으로 다가가야 하는지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그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부모님이 만든 가정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몸으로 배웠다.
형제들이 함께 살아도 물욕이나 시기심 때문에 크게 다투지 않았다. 넉넉하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부족함 속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법을 배웠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마음도 배울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가정의 분위기였다. 특별한 교육철학을 세워 우리를 가르친 것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이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하나의 교육이었고 하나의 가정문화였다.
가정의 문화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식을 키우면서 나 역시 부모님이 만들어놓은 가풍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자식을 따뜻하게 대하는 것이 혹시 자식에게는 오만함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까. 너무 편안하게 키운 나머지 세상의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으로 자라지는 않을까.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가정교육을 말로만 하는 부모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걱정도 생긴다.
자식은 어느 순간 부모의 품을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부모의 조언이 어느 순간에는 간섭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부모의 좋은 뜻이 오히려 자식의 삶을 흔드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부모님에게는 거창한 가정교육의 철학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들의 삶을 진실하게 살아내셨다. 가족을 위해 성실하게 일했고, 이웃에게 베풀었으며,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애쓰셨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인 삶이 결국 나에게는 하나의 철학이 되었다.
철학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았던 삶의 모습들이 어느새 내 몸속에 들어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된 것이다.
부족함은 간절함이 되었고, 성실함은 바카라임감이 되었다.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삶에 대한 열정으로 남았다. 부모님이 말로 가르쳐주신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보여주셨던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자식을 바라보면 마음이 조심스러워진다.
아직은 어린아이처럼 보이지만 자식은 부모를 모두 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하는지뿐만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는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힘든 일을 어떻게 견디는지, 약한 사람에게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까지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세밀하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자식에게는 삶의 자료가 될지도 모른다.
어느 날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그 직원이 이런 말을 했다.
“저는 가정교육이 잘된 집안의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요. 돈이 많으면 좋겠지만 돈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그냥 가정이 화목한 집안에서 자란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요. 요즘은 그런 집안을 찾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생각이 머물렀다.
가정교육은 결혼을 위해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 어려움을 견디는 힘,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 돈과 성공을 바라보는 방식까지도 어린 시절의 가정문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가정교육은 어쩌면 특별한 것이 아니다.
부모의 행동을 보며 배우는 과정이고, 부모가 살아온 방식이 자식에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다. 부모가 살아가며 쌓은 덕이 자식에게 이어지는 것 또한 가정문화일 것이다.
화목한 가정과 올바른 사고를 가진 부모가 반드시 완벽한 자식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도 흔들릴 수 있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오히려 더 단단한 삶의 철학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가정의 분위기와 부모의 삶이 자식에게 매우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어머니는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누가 찾아오면 허투루 보내지 말고, 이웃과는 베풀며 살아라. 그 덕이 다 쌓인다.”
그 말씀은 이제 나에게 하나의 삶의 문장처럼 남아 있다.
부모님은 덕을 쌓아야 한다고 가르치기보다 덕을 쌓으며 사셨다. 성실해야 한다고 말하기보다 성실하게 사셨고, 가족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기보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놓으셨다.
어쩌면 가정교육의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자식 앞에서 제대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식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재산만이 아닐 것이다. 부모가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대했고, 어떤 자세로 세상을 살아왔으며, 어떤 삶을 선택했는지가 자식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 삶은 어느 날 자식의 삶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느리게 흘러가는 초가을의 아름다운 날이다.
마루에 누워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는 그저 평범한 하루였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부모님이 내게 남겨주신 가장 따뜻한 가정교육의 한 장면이었다.
구름은 그때처럼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다만 달라진 것은 그 구름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아오신 시간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서, 그분들이 내게 남겨주신 것은 말이 아니라 삶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삶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내 아이에게 무엇인가로 남을 것이다.
그것이 부모라는 자리의 무게이고, 가정이라는 공간이 가진 힘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하늘을 바라보며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었던 그 은혜를, 늦게나마 마음으로 배운다.
“부모가 자식에게 남기는 것은 말이 아니라 살아온 모습이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부모님에게서 배운 가장 오래된 가정교육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