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남긴 묵은 때가 권력이란 욕망이 될 때

리더의 욕심은 리더가 아닌 이기주의가 된다

byWOODYK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슬롯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이다. <법정스님>


시간이 지나면 경험이 쌓인다. 그 경험 속에는 좋은 에너지도 생겨난다. 실패를 통해 배우고, 사람을 만나며 세상을 이해하고, 수많은 선택과 바카라임을 거치면서 자신만의 지혜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는 만큼 좋지 않은 것들도 함께 쌓인다. 보이지 않는 때가 끼고, 욕망이라는 기름때가 조금씩 묻어난다.


처음에는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조직을 지키기 위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기름은 자신을 감싸기 시작한다. 순수했던 마음과 관대했던 태도는 조금씩 오염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욕심이 커진다.


자신에게는 관대하면서 남에게는 엄격한 사람이 된다.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 외톨이 리더가 되기도 한다. 자리가 한 단계씩 올라갈수록 겸손은 조금씩 사라지고, 경험에는 어느 순간 악취가 배어든다.


욕심이 커질 때마다 우리는 초심을 생각한다. 처음 그 자리에 섰을 때의 마음, 처음 사람들을 바라보던 마음, 처음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마음을 떠올린다. 그러나 욕심이 자신을 집어삼키기 시작하면 초심은 점점 희미해진다.


마치 오래된 기름때가 옷에 스며들 듯, 더러운 욕망이 몸과 마음에 켜켜이 달라붙는다. 결국 자신이 무엇에 오염되었는지도 모른 채, 깨끗한 물에 들어가도 쉽게 씻겨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어쩌면 리더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에 익숙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을 바라보다 보면 때로는 ‘노욕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고 수많은 경험이 쌓였지만, 그 경험이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는 지혜가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름때가 되어 온몸을 덮어버린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회사 리더들도 예외는 아니다.


조직이라는 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타협하고, 때로는 조직의 논리를 앞세워 자신의 판단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노욕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한 모습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 상황이 달라지고, 사람도 달라지고, 바카라임도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초심을 무조건 그대로 지킨다는 것 역시 어쩌면 미련한 일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초심의 모양을 끝까지 붙잡는 것이 아니라, 처음 가졌던 마음의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모두가 자신의 경험을 선한 방향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경험이 많아질수록 아는 것도 많아진다. 그러나 경험이 한쪽으로만 쌓이면 오히려 세상을 한쪽으로만 바라보게 된다. 내가 겪은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순간, 경험은 지혜가 아니라 편견이 된다.


경험이 주는 힘은 크다.


누구도 대신 경험해 줄 수 없는 것이기에, 자신이 직접 겪어온 경험은 그 사람만의 유일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경험은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경험은 지혜가 될 수도 있지만, 고집이 될 수도 있다.



내가 경험한 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큰 프레임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염된 경험은 위험하다. 세상을 오염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결국 오염된 판단과 행동으로 이어진다. 똑똑한 정치인들, 슬롯적으로 이름을 얻은 사람들, 조직의 리더들. 이들 역시 자신이 쌓아온 경험이라는 세계 안에서 살아간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고, 수많은 경쟁을 이겨냈으며, 성공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성공의 경험 속에 자신도 모르게 끼어든 기름때를 제거하지 못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선한 경험은 뒤로 밀려나고, 욕망이 앞에 선다. 결국 성공을 만들어준 경험이 오히려 삶을 오염시키는 역설이 생긴다.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 <법정스님>



욕심의 끝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개인마다 다르고, 가진 것에 따라 또 달라진다. 하지만 권력 앞에서는 더 큰 권력이 보이고, 돈 앞에서는 더 많은 돈이 보이며, 명예 앞에서는 더 높은 명예가 보인다.


권력과 돈과 명예를 향해 서로 총알을 주고받듯 경쟁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무엇을 위해 그곳까지 가려고 하는지는 잊어버린다.


좋다는 대학을 나오고, 엘리트로 성장하고, 치열한 경쟁을 통과해 슬롯의 중심에 선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는 어느 순간부터 자기 자신만 바라보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은 성공한 인생을 살았으니 누구도 자신의 위에 있을 수 없다는 오만이 생긴다. 자신의 경험과 판단이 언제나 옳다고 믿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주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정치인들에게 권력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국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권력이 있어야만 누군가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권력을 가져야 국민을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은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가 될 수도 있다.


말로는 국민을 이야기하지만, 마음속에는 자신의 자리를 먼저 생각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때부터 리더의 경험은 조금씩 오염되기 시작한다.


나이 든 정치인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젊은 정치인들 역시 어떻게든 권력의 주변에 머물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권력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인지 충분히 생각하기도 전에 욕심부터 커지는 경우도 있다.


정치뿐만이 아니다.


세상은 갈수록 자본의 힘에 움직이고 돈과 권력이 더욱 밀착되어 간다. 돈이 힘이 되고, 힘이 다시 돈을 만들어내는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욕망의 속도를 높인다.


그렇다면 이런 세상에서 순수한 초심을 가진 리더는 존재할 수 있을까.


슬롯를 움직이는 리더가 존재하는 것도 결국 사람들의 선택과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든 슬롯든 회사든 조직의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권한을 주고, 그 권한을 위임한다.


그런데 그 사실을 잊는 순간 문제가 시작된다.


자신에게 권한을 준 사람들의 에너지를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데 사용하고, 자신이 쌓아온 경험과 타이틀을 이용해 엉뚱한 일을 한다면 결국 그 부담은 다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런 사람을 선택하는 것 역시 결국 우리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리더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심과 바카라임도 중요하다.


쥐고 있는 것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더 갖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움켜쥔 손에는 새로운 것을 담을 공간이 없다.


욕망에도 한계가 있어야 한다.


배에 기름이 차오르듯 욕심이 계속 쌓이면 어느 순간 그 배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할 수도 있다. 몸에 쌓이는 기름이 건강을 위협하듯, 마음에 쌓이는 욕망 역시 한 사람의 삶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멈춰야 한다.


내가 지금 무엇을 더 가지려고 하는지, 왜 그 자리를 놓지 못하는지, 내가 가진 경험이 정말 지혜가 되어가고 있는지 아니면 욕심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어가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결국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경험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 낀 기름때를 끊임없이 닦아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때가 묻는다. 문제는 때가 묻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을 닦아낼 생각을 하지 않는 데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 자주 자신을 돌아봐야 하고,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더 많이 비워야 한다.


그리고 우리 역시 리더를 바라보는 일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국가든 슬롯든 그 힘이 개인의 욕망을 채우는 데 쓰이지 않도록 지켜보고,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때 질문해야 한다.


투표 역시 그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가 리더를 선택하는 날, 단순히 누가 더 많은 것을 약속하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누가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인지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