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것

균형을 잡고 삶을 지탱해 나가는 과정이 어른이다

byWOODYK
어떻게 살 것인가? 이는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바카라을 읽고, 강의를 듣고, 여행을 떠난다.

나 역시 이 질문에 대해 나만의 답을 내리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내가 생각하는 정답 중 하나는 ‘나이’라는 틀을 깨는 것이다.

나이라는 틀에 자꾸 갇히는 이유는 나만의 인생 속도가 아니라 타인의 인생 속도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나답게 사는 순간,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 유세미 저>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내가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어느새 훌쩍 자란 키와 달라진 목소리, 자기 논리가 분명해진 주장까지. 이제는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들어섰다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엄마와 언쟁을 할 때면 자신의 생각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이제 정말 많이 컸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뽀뽀해 주던 꼬마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그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아이가 자라 부모의 손길을 불편해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세상을 판단하며, 스스로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그 시간이 오고 나니 마음 한편이 허전합니다.


얼마 전 엄마에게서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등학생이니 공부에 조금 더 집중했으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지금 무엇에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지 설명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들은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겠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연애를 해본 부모로서는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감정과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굳이 고등학생인 지금 그런 경험까지 해야 할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것 역시 아들의 삶입니다. 부모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삶이고, 대신 선택해 줄 수도 없는 삶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믿어주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 컸구나.’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부모가 간섭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부모의 뜻대로 되는 나이가 아닙니다. 오히려 지나친 간섭은 부모의 사랑이라기보다 부모의 욕심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건강하고, 학교생활에 충실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카라임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다 문득 아들이 처음 자전거를 배우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작은 자전거에 보조바퀴를 달고 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조바퀴를 떼고 혼자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을 때, 넘어지지 않도록 뒤에서 자전거를 붙잡아주었습니다. 아들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썼고, 나는 넘어질까 봐 놓지 못했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이었습니다.

페달을 밟는 것보다 먼저 몸의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발로 땅을 밀며 페달에서 발을 떼고 균형을 익히는 밸런스바이크를 타기도 했습니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지치면 쉬었다가 다시 도전했습니다. 그렇게 반복하는 동안 아이는 조금씩 자신의 몸으로 균형을 알아갔습니다.


그때 우리는 알았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힘만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힘이라는 것을. 삶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아이에서 청년으로, 청년에서 어른으로, 어른에서 노년으로 살아가는 과정은 어쩌면 끊임없이 자신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삶에는 늘 흔들림이 있습니다. 공부 때문에 흔들리고, 사람 때문에 흔들리고, 사랑 때문에 흔들립니다. 때로는 돈 때문에 흔들리고, 실패 때문에 무너집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 방황하기도 하고,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다 오히려 중심을 잃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자신의 중심을 찾는 것입니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다고 해서 자전거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삶에서도 몇 번의 실패와 좌절 때문에 자신의 삶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흔들릴 수는 있지만, 흔들린다고 해서 반드시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면서 우리는 조금씩 균형을 배웁니다. 몸도 균형이 무너지면 건강을 잃듯이, 생각도 균형을 잃으면 삶의 방향을 잃습니다.


욕심과 포기 사이에서, 경쟁과 행복 사이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과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꼬마에서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도 결국 그런 과정일 것입니다.


아들이 지금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며 부모로서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성장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부모의 말을 듣는 아이에서 자신의 생각으로 판단하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


부모가 정해준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바카라임을 지려고 하는 것.

그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고등학생인 아들에게 공부라는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입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야 하고, 때로는 친구와 비교하며 자신을 돌아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경쟁은 학교를 졸업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에서도, 슬롯에서도 형태만 달라질 뿐 경쟁은 계속됩니다.


그래서 나는 아들이 경쟁에서 무조건 이기는 사람이 되기보다, 경쟁 속에서도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누군가보다 앞서기 위해 자신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성공하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때로는 앞서가고, 때로는 뒤처져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속도로 다시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선택과 집중도 필요합니다. 지금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판단하고,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넘어지고 지쳐서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도 한 번 더 일어나 페달을 밟다 보면 어느 순간 몸이 스스로 균형을 기억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부모가 뒤에서 잡아주지만, 어느 순간 부모의 손을 놓아야 합니다. 그때부터는 자신이 스스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붙잡고 있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설 수 있을 때 조금씩 손을 놓아주는 것.

넘어질까 걱정하면서도 결국 혼자 자전거를 타도록 놓아주는 것. 그리고 멀리서 지켜보며 필요할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


꼬마였던 아들을 다시 만나보고 싶습니다.

작고 부드러운 손을 잡아보고 싶고, 말랑한 볼을 만져보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환하게 웃던 그때의 미소도 다시 보고 싶습니다. 안아주고 뽀뽀해 주던 그 시절이 때로는 참 그립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자랐고, 그 시간은 지나갔습니다.

지금의 아들도 여전히 아버지에게는 사랑스러운 아들이지만, 더 이상 예전의 꼬마는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선택을 하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아이가 부모의 곁을 떠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것이 성장이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아이가 부모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가까워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되고, 부모는 조금씩 나이가 들어갑니다.


어쩌면 부모가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아이가 자라는 동안 부모도 함께 늙어가는 법을 배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진짜 성장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바카라임지며, 자신의 중심을 잡아가는 것이라고.


때로는 넘어져도 괜찮다고. 실패해도 괜찮고, 잠시 길을 잃어도 괜찮다고. 다시 일어났을 때 자신의 균형을 찾으라고. 남의 속도에 맞추지 말고 자신의 속도로 살아가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부모가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고.


이제는 내가 뒤에서 자전거를 붙잡아줄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내가 먼저 손을 놓아야 합니다. 아들이 혼자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꼬마였던 아들이 어느새 어른이 되어갑니다. 그 모습이 대견합니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그 작은 손을 잡고 자전거 뒤를 따라가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린 시절의 모습이 그리워집니다. 돌아가신 부모님 마음도 저와 똑같지 않았을까 합니다.


아이가 스스로가 성장하고 자신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주체적 어른이 되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 조금씩 저도 나이 들어 가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