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자연의 감정을 느꼈으면 한다.
새벽에 비가 강렬하게 쏟아집니다. 청춘 때 비는 시원함을 선사하고 답답한 심정을 눈물로 닦아 주는 느낌이었다면, 중년의 비는 그런 낭만은 없지만 오랜만에 자연에 소속된 한 사람이 된 느낌이 듭니다. 한편에서는 혹시 침수로 생활에 불편이 없을까 하는 걱정도 먼저 듭니다.
격렬하게 내리는 비 속에서 화창한 날에 지져기던 새들도 흔적을 감추고 떨어지는 비에 푸른 나뭇잎들만 오롯이 빗방울의 강도를 느끼고 있습니다. 우산을 쓰고 비 오는 숲길을 걸으면 자연의 향기가 코끝으로 그대로 전달되는 신선함이 즐겁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비만 오면 바흐의 무반주 첼로 음반을 틀어 놓고 글 한편 쓰며 하루를 보내기도 하고, 바카라을 읽으며 창가에 맺힌 빗방울을 만지기도 하며 실내외 온도 차이로 생긴 창가 김 위에 낙서를 하기도 했습니다. 비는 우리에게 낭만이라는 감정을 선사했고 어느 때는 자연의 무서움을 전달해 주기도 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의 눅눅하고 꿉꿉한 느낌과 냄새가 싫기도 하지만,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마음의 울적함을 씻어 주기도 했습니다.
아들이 시험이 끝나 시간이 있다고 하며 일하는 곳을 찾아왔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같이 잠을 잔 기억이 거의 없는 듯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늘 붙어서 자며 여러 이야기들을 했지만, 자아가 성장하며 같이 자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일하는 곳에 찾아와 얼굴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렇게 성장한 아들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지만, 조금 있으면 그렇게 귀여웠던 꼬마가 곁을 떠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친구들이 좋고, 친구들과 시간 보내는 게 좋은 시절, 그래서 상대적으로 부모의 곁에서 멀어지는 시점입니다.
늘 공부라는 숙제가 앞에 놓여 있어서 안타깝고 안쓰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래도 스스로가 해 나가는 과정들이 대견합니다.
둘이만 하루를 자게 되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에어컨을 켜기보다는 밖의 자연을 느끼기 위해 창문을 열고 빗소리를 들으며 서로 잠이 듭니다. 저 멀리 개구리 소리도 들립니다.
"빗소리가 시원하다. 자연 속에서 빗소리를 들으니 좋지! 아빠는 어릴 적부터 자연과 같이 자라서 이런 소리가 좋더라고.
에어컨 바람보다 밖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좋고, TV 속에 나오는 음성보다 빗소리가 만드는 음파가 좋고,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보다 어느 때는 개구리 소리가 좋을 때가 있단다. 그냥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낼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아."
아들이 응답합니다.
"진짜 오랜만에 이렇게 푸른 자연 속에서 빗소리 들으니까 좋다. 늘 학원 가랴 정신없었는데~"
우리 스스로가 자연에 눈을 돌리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은 여유가 없습니다. 자연은 우리 곁에 늘 존재합니다.
사람들이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자연이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는 줄도 모릅니다. 자연의 거대함을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여유라는 것은 자연의 일부만 느껴도 생길 수 있는 감정들입니다.
아들이 아침에 일어나 밖의 빗방울을 보며
"오늘 학원 가기 싫은데..."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비가 오면 집에 누워 엄마가 해 주시던 빈대떡 먹고 방구석에 누어 뒹굴뒹굴 놀고 싶었던 생각, 하지만 밖에 나가면 또한 그 밖의 삶 속에서 비를 즐기던 어린 시절의 생각들.
현실이라는 곳에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에서 현실을 절대 부정할 수 없지만, 잠시라도 자연이 주는 감정들을 느끼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오랜만에 아들과 보냈던 짧은 시간들이지만 그 시간 속에 자연이 살아서 젊음과 중년의 감정들을 흔들어 놓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들에게 이런 말을 꼭 해 주고 싶습니다.
" 자연이란 거대함을 작게라도 느끼며 살아가라. 자연이 주는 힘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해.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네가 성숙해 가는 것이고 자연이 주는 여유는 네가 살아가는 시간 동안 너의 감정들을 풍부하게 해 줄 거야.
건조한 현실 속에 단비가 내리 듯 자연을 통해 건조함을 적시었으면 한다.
아들아! 자연을 느끼며 살아라"
어젯밤의 거친 폭우 후 아침의 상쾌한 공기가 코끝을 자극합니다. 아들도 개운한 모습으로 미소를 짓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합니다. "오늘 학원 가기 싫은데..^^"
"잠시라도 물소리, 빗소리 느꼈으면 해... 그리고 또 둘이서 이렇게 자연을 느끼며 다음을 기약하자"
빗소리가 아들의 감정을 감싸고 아들 마음속에 낭만을 전달해 주었으면 합니다. 촉촉이 젖는 옷이 아들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적시고 자연의 감정을 느끼도록 했으면 합니다.
자연은 그렇게 우리 곁에 늘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