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사이클이다. 자연스러움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이다.
계절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라. 그 공기를 호흡하고, 그 음료를 마시고, 그 열매를 맞보고, 그 영향력에 자신을 맡겨라. 불어오는 모든 바람에 나부껴라. 모공을 활짝 열어 자연의 온갖 물결 속에 잠겨라. 시냇물과 바닷속에, 모든 계절 속에, 봄과 함께 초록으로 자라고, 가을과 함께 황금빛으로 익어라.
어떤 이들은 봄에, 혹은 여름에, 혹은 가을에, 혹은 겨울에 잘 지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그저 그들이 정말로 잘 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완전히 계절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중, 헨리 데이비드 소로>
새벽에 잠에서 깨어 창이 보이는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멍하니 밖을 보며 매미 소리를 듣습니다. 아직 밖은 어둡고 나무들의 형체가 희미하게 보입니다. 저 멀리서 조금씩 옅은 밝음이 다가오는 듯합니다.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신도 아직 몽롱합니다. 그래도 그냥 멍하니 밖을 보고 있는 게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또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어제의 강도 높은 근력운동의 후유증이 온몸에서 느껴지지만, 기분 나쁜 근육통은 아닙니다.
정면의 통창을 바라보며 창문을 열어 둡니다. 요즘은 잠을 자는 동안 에어컨 대신 창을 열어 둡니다. 밖의 온도와 실내의 온도가 적절히 섞여 잠자는 내내 무리 없는 상태를 유지해 줍니다.
낮에는 아직 더위가 남아 있지만, 밤이 되면 기온이 확실히 여름과는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여름의 끝이 다가오는지 새벽의 매미 소리는 점점 더 커져, 온 세상이 매미 소리로만 채워져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매미는 단 1주일을 살아가기 위해 수년을 유충으로 참고 견딥니다. 각자의 생명이 지닌 의미는 다르지만, 짧은 자신의 시간을 위해 견디고 또 견디며 미숙한 시간을 인내로 채워갑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전성기라는 게 존재합니다. 그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자신이 가장 빛나거나 행복했던 순간들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전성기란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살았던 시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이루어가는 주체적인 삶이 진행될 때를 말합니다. 사람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배우고, 하나의 문장을 배우고, 부모가 태워주는 자전거를 타다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자전거를 타게 됩니다. 자신의 자전거를 타며 자신이 보고 싶은 세상을 보게 되고, 부모의 단어가 아닌 자신만의 단어들을 만들고 조합해 갑니다. 그렇게 성장하며 자신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자신이 원하는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스스로 보고 느끼는 세상에 대한 생각을 만들어 갑니다. 자신감이 붙고 혼자서도 무엇인가를 창조하며 슬롯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전성기를 느낍니다. 운동선수는 자신의 기록으로 전성기를 가늠합니다. 기록이 향상되고 연봉이 오르며 그 정점에 다다랐을 때를 우리는 전성기라 부릅니다.
매미는 짧은 1주일을 살아가지만, 그 짧은 전성기를 누리기 위해 수년간 유충으로 견디며 때를 기다립니다. 그에게는 그 시간이 최고의 순간이기에, 더 크게 자신의 소리를 내며 살아갑니다. 단 몇 초, 몇 분도 아까워하며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 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인간의 생명은 상대적으로 길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아직 충분하다고 느끼며 살아갑니다.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기보다 시간이 넉넉하다고 여기며 지내는 것입니다. 너무 시간에 얽매여 답답하게 사는 것도 안타깝지만, 시간의 유한성을 깨닫지 못하고 허투루 흘려보내는 것 역시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돌아옵니다. 사계절의 시계 속에는 늘 사이클이 존재합니다. 인간의 삶에도 자연의 사계처럼 사이클이 존재합니다. 서서히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 인내의 시간이 있고, 어느 순간 잠재력이 터지며 전성기라는 시간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그 짧은 전성기를 지나면 자연스럽게 가을과 겨울의 문턱으로 다가가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이라는 형태로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사이클을 맞이하게 됩니다.
새벽의 어둠이 서서히 환한 빛으로 변하고, 분주한 낮이 다시 어두운 밤으로 바뀌며 잠들게 하는 그 사이클처럼, 삶의 모습도 자연의 모습이나 매미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추억을 간직하며 옛 시절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전성기를 지나면서 그 시절의 추억이 그리워지고, 순수했던 마음을 잊고 지내는 건조한 삶에 그 추억이 작은 위안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단순해지는 삶이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흥미로운 것을 찾기보다 평범한 하루하루를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이게 됩니다. 세상 사는 모습이 저마다 달라 보여도 크게 보면 비슷하고, 욕심을 부리기보다 서서히 내려놓게 됩니다. 젊은 시절의 패기 넘치던 시간을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나이 들어감을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자연이 주는 의미를 받아들이며 조금씩 시간을 흘려보냅니다.
회사에서도 친했던 동료들이 하나둘 떠나고, 어느새 선임이 되어 후배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동료가 떠날 때 아쉬운 마음은 있지만, 한편으로는 각자 또 다른 삶을 찾아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떠나는 것이기에, 조금 빠르거나 조금 늦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이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그저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리고 각자의 길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아가리라는 것을 믿으면 됩니다. 그래서 아쉬워하기보다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받아들입니다. 저 역시 언젠가는 떠나야 할 회사이기에, 떠남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삶에는 사이클이 있습니다. 그 사이클 속에서 자신의 시간을 만들고, 오르고 내려가는 시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너무 기뻐하거나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은 결국 잊히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이기에, 어둠을 두려워할 필요도 밝음을 기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자신의 시간을 만들어 가면 됩니다. 그것이 삶이고 인생입니다.
멍하니 밖을 한참 바라보는 사이, 어느새 밖은 밝은 빛으로 물들고 새소리가 다시 하루를 준비하라고 귀를 울립니다. 기지개를 켜고, 멍하니 밖을 바라보던 시간을 뒤로한 채 다시 하루를 준비합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하루의 시작도 우리 삶 속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오늘도, 오늘을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삶이 되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