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려도 걸어가라. 그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흔들리는 것은 우리의 삶이다.

byWOODYK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저>


"잘 가고 있는 걸까! 가고 있기는 한데, 이렇게 가는 것이 맞는 걸까!"


어딘가를 향해 걷고는 있지만 늘 마음 한편에는 불안이 남는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열심히 하는 것이 정말 맞는 걸까?’


‘열심히’라는 말은 지금 이 순간 분명 필요한 것 같은데, 정작 무엇에 열심히 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방향을 정하고 한 걸음 내디뎠지만 그 방향이 옳은지 확신하기 어렵다. 그렇게 흔들리는 마음은 불안이 되고, 불안은 끊임없는 고민으로 이어진다.


특히 젊음이라는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젊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시간이지만, 동시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가장 많이 흔들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슬롯라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무기를 하나씩 만들어야 한다. 능력도 필요하고 경험도 필요하며, 때로는 사람을 이해하는 힘과 세상을 견디는 힘도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갖추어진 것은 많지 않다.


무언가를 갖추려고 애쓰는 동안에도 마음은 계속 흔들린다. 이쪽으로 가야 할 것 같다가도 저쪽이 더 나은 길처럼 보인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정답이라는 확신은 없다.


누군가와 함께 걸으면 그들이 어느 순간 경쟁자로 보이기도 한다. 혼자 걸으면 외롭고 힘들다. 그렇게 걷다 보면 때로는 ‘포기’라는 단어가 마음 한구석에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원래 흔들리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흔들리지 않고 성장할 수 있을까! 모든 답을 알고 살아간다면 그것을 과연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도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 수 없다. 누구도 명확한 답을 손에 쥔 채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흔들린다.


젊음은 소중하다.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젊기 때문에 더 불안하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열심히 걷고 뛰고 있지만 눈앞의 길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상만 바라보며 살아갈 수도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이해하고, 현실과 부딪히며 때로는 현실에 적응하면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야 할 때도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오래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지루하고 답답하며,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시간이 찾아온다. 중년이라고 살아가는 과정이 힘들지 않다고 할 수 없다. 또한 삶의 의문은 계속된다.


‘나는 잘 가고 있는가.’ ‘지금 제대로 걸어가고 있는가.’ ‘열심히 사는 것이 정말 정답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인간은 왜 이렇게 고민이 많을까? 어쩌면 확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자신감이 필요하지만,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구력도 필요하다. 흔들리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인내도 필요하고, 때로는 흔들림을 멈출 수 있는 자제력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흔들린 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평정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젊음이 그 모든 것을 처음부터 갖출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든다고 흔들리지 않는 것도 아니다. 중년이 되어도 삶은 여전히 흔들린다. 다만 젊을 때보다 조금 덜 흔들릴 뿐이다. 살아온 시간만큼 경험이 쌓이고, 그 경험들이 나를 받쳐주는 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후배와 이야기를 나는데 이런 말을 나에게 전한다.


“열심히는 사는데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가고는 있는데 잘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늘 흔들리는 삶인 것 같아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게 인생이 아닐까!"


흔들리지 않는 삶은 어쩌면 삶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들리기 때문에 고민하고, 고민하기 때문에 자신의 방향을 찾는다. 확신만으로 살아가는 삶은 없다. 오히려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 무너지는 순간, 사람은 더 크게 흔들리기도 한다.


삶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때로 두렵다. 그러나 바로 그 불확실성 때문에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기도 하다. 내일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오늘을 선택할 수 있고, 정해진 결말을 모르기 때문에 새로운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


호메로스의 고대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는 여신 칼립소가 제안한 늙지도 죽지도 않는 안락한 영생의 유혹을 뿌리치고 풍랑과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고통의 바다로 다시 배를 띄운다.

인간은 신처럼 완벽하거나 영원할 수 없지만 바로 그 유한성과 불완전함이 있기에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해 존재론적 절실함을 품을 수 있다. <DBR 기술의 시대, 다시 철학 중 AI발 생각의 멸종 막는 조직 설계. 이은수 서울대 철학교수>


젊음은 그렇게 걷는 것이다. 때로는 힘차게 뛰어가고, 때로는 천천히 걷는 것이다. 지치면 잠시 쉬어도 된다. 길을 잃었다면 잠시 멈춰 서서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돌아봐도 된다.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확신이 있는 길이 아니어도 걸어가는 것이다. 정답이 정해진 인생은 없다. 처음부터 완성된 길도 없다. 우리는 불확실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걸음씩 내디디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간다.


그저 걸어가는 것이다. 자신을 믿고 걸어가는 것이다. 힘들고 외로워도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걸어온 길이 보인다. 처음에는 길이 아니었던 곳에 발자국이 하나둘 쌓이고, 그 발자국들이 모여 나만의 길이 된다.


그 길이 반드시 만족스러울 필요는 없다.


때로는 후회도 있을 것이고, 돌아가고 싶은 순간도 있을 것이다. 다리가 아프고 마음이 다치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받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결국 나를 만든다.


상처가 아물면서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아픔을 견디면서 삶의 근육이 생긴다. 걷고 또 걷다 보면 발에 굳은살이 생기듯 마음에도 굳은살이 생긴다. 그렇게 힘이 붙고, 지구력이 생기고, 이전에는 견디지 못했던 삶의 무게를 조금씩 견딜 수 있게 된다.


그러니 후배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흔들려도 걸어가라, 두려워도 걸어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어도 한 걸음씩 내디뎌 봐, 걷다 보면 길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길에는 네가 걸어온 시간과 고민과 선택과 상처와 용기가 고스란히 흔적으로 남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길은 세상에 하나뿐인 너의 길이 된다."


흔들려라. 그리고 걸어가라. 어느 순간에는 힘껏 뛰어가도 좋다. 너무 지치면 잠시 멈춰 깊게 숨을 들이마셔라. 그리고 지금의 너를 가만히 돌아보아라.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다시 생각해 보아라.


그리고 다시 걸어가라. 삶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넘어지지 않는 것이 용기가 아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것, 흔들려도 다시 걸어가는 것,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용기다.


그러니 너무 흔들리는 자신을 탓하지 마라. 흔들린다는 것은 아직 길을 찾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길을 찾는 동안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흔들려도 괜찮다. 오늘 한 걸음 걸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일 또 한 걸음 걸으면 된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찾던 길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걸어온 발자국들이 모여 길이 되었다는 것을. 다른 누구의 길도 아닌, 이것이 나의 인생이라는 걸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