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숫자보다 행동과 태도의 신뢰가 주는 힘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는 순간 상대를 가리키는 손가락은 검지뿐이다.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세 손가락은 ‘나’를 향한다. 세 손가락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검지를 들어야 한다.
타인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내가 떳떳한지 족히 세 번은 따져봐야 한다. 우리는 늘 타인을 지적하며 살아가지만, 진짜 지적은 함부로 지적하지 않는 법을 터득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말의 품격, 이기주 저>
말이 많다고 해서 대화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말이 적다고 해서 대화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늘 대화를 하고 싶어 하고,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며 소통하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언어라는 도구를 만들었고, 그 언어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전달해 왔습니다. 하지만 언어의 양이 많다고 해서 대화가 잘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말이 많아지면 자칫 지루해지기 쉽고, 듣는 사람도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언어의 숫자가 대화의 품격을 지켜주는 것도 아니고, 그 숫자만큼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말이 많아질수록 불필요한 말들이 오고 가고, 그 말속에서 실수가 늘어나기 쉽습니다. 실수가 쌓이면 오해가 생기고, 때로는 말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나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이 사실을 잊습니다. 무언가를 설명하려 할수록, 상대를 설득하려 할수록 더 많은 말을 쏟아냅니다.
그러나 정작 말이 많아질수록 핵심은 흐려지고, 진심은 말의 양 속에 파묻혀 버리곤 합니다. 대화란 결국 말의 총량이 아니라 그 말이 전하는 진심의 밀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대화가 된다는 것은 말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행동과 태도로도 얼마든지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과 태도가 시간 속에서 지속성을 가질 때, 비로소 신뢰가 쌓입니다. 신뢰가 담긴 행동과 태도는 몇 마디 말보다 훨씬 강력하게 다가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속성이란 곧 시간성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오랜 시간 한결같이 신뢰할 수 있는 행동과 태도를 보여준 사람은,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대화가 통하고 소통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가 이미 의미로서 전달되고, 그 태도의 품격 자체가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됩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교언영색 선의인이라 했습니다. 말을 꾸미고 낯빛을 꾸미는 사람 중에는 어진이가 드물다는 뜻입니다.
화려한 언변보다 한결같은 태도가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준다는 것을, 오래전 사람들도 이미 알고 있었던 셈입니다.
반대로 말이 많아 중언부언이 되고, 지루함이 핵심을 덮어버리고, 말속의 크고 작은 실수들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상황은 결국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는 과정이 되고, 말은 오히려 신뢰를 갉아먹는 도구가 되어 버립니다.
말이 많다고 대화가 되는 것은 아니며, 말이 적다고 대화가 안 되는 것도 아니라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들에 정확히 들어맞습니다.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떠올려 봅니다. 말도 많아지고, 별다른 의미 없어 보이는 행동들도 자연스레 오갑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지속성을 갖고 오랜 시간을 품어온 추억들이 있습니다. 그 추억들이 이미 서로에게 말을 걸고 있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이미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눈빛 하나, 몸짓 하나만 보아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있고, 그 마음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서로 오해할 법한 부분들조차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신뢰 속에서는 자연스레 사라지고, 다소 불필요한 말이 오고 가더라도 그냥 웃으며 흘려보낼 수 있는 관계가 됩니다. 그것이 바로 지속성이 만들어낸 신뢰의 힘입니다.
반면 처음 만난 사이, 혹은 아직 신뢰가 쌓이지 않은 관계에서는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예민해지고, 작은 실수 하나가 큰 오해로 번지기도 합니다.
결국 대화의 깊이를 결정짓는 것은 말의 양이 아니라, 그 관계 안에 얼마만큼의 시간과 신뢰가 쌓여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말을 먼저 합니다. 그 말속에 여러 의미를 담기도 하지만, 때로는 별다른 의미 없이 던지는 말들 속에서 오히려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말도 어찌 보면 하나의 태도이고 행동입니다. 말을 한다는 것은 단지 소리를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행동이자 태도인 것입니다.
말속에는 이미 그 사람 자신이 담겨 있습니다. 배움이 많고 적음을 떠나, 말은 곧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은연중에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말을 잘한다고 해서 반드시 신뢰가 가는 것도 아니고, 말을 다소 서툴게 한다고 해서 신뢰가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 말속에 얼마나 진심을 담아 전달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태도와 행동이 비로소 신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말의 전달력이 좋을수록 순간적으로 신뢰를 얻을 수는 있으나, 그것이 곧바로 지속적인 신뢰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말의 전달력은 결국 그 말이 지켜지고 행동으로 옮겨질 때 비로소 진짜 힘을 갖게 됩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려고 노력하는 그 진심 속에서, 말은 비로소 힘을 얻는 것입니다.
나는 인간의 말이 나름의 귀소 본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언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헤엄쳐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려는 무의식적인 본능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돌고 돌아 어느새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되돌아온다.
<말의 품격, 이기주 저>
우리는 종종 현란하고 현학적인 표현에 마음이 흔들리며, 그 안에서 알 수 없는 신뢰감을 느끼는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교수라는 타이틀이 있으면 그 말이 대단한 것처럼 느껴지고, 유려한 설교에는 감탄하며 쉽게 신뢰를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하나의 언어적 프레임에 스스로 속아, 그렇게 믿고 싶어지는 마음일 수 있습니다.
권위가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해서 저절로 권위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권력을 쥐고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대화가 잘 되는 것도, 신뢰가 절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 타이틀에 현혹되어, 그 사람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빠지곤 합니다.
대화가 된다는 것은 말과 타이틀이라는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상대의 태도와 행동을 있는 그대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쌓여온 시간 속에서 그 행동과 태도가 계속해서 지속될 때, 비로소 대화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말이 전달하는 힘은 분명 큽니다. 하지만 행동과 태도가 전달하는 힘은 그보다 수백 배는 더 크고 오래갑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상대와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서로의 신뢰가 쌓이는 행동과 태도가 존재할 때에야 비로소 그 말은 더욱 큰 의미를 갖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말이 지닌 힘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말이 주는 순간적인 유혹에 너무 쉽게 빠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누구를 신뢰할 수 있는지, 누구와 진정한 대화가 통하는지를 알고 싶다면, 상대의 말보다 먼저 그 사람의 태도와 행동을 오래도록 지켜보아야 합니다.
대화는 말이 많다고 잘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 적다고 안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고 착각하는 순간, 우리는 말의 유혹에 빠지고 상대의 그럴듯한 언변에 빠지는 실수를 하게 됩니다.
당신은 말이 더 중요한 사람인가요, 아니면 행동과 태도가 더 중요한 사람인가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말은 많고 행동은 적은 세상입니다. 누구나 그럴듯한 말을 쏟아내지만, 그 말을 끝까지 지켜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행동이 주는 믿음, 그리고 오랜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지속성의 태도가 사람들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오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행동과 태도는 말의 숫자보다 대화를 훨씬 더 깊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오늘부터 말수를 조금 줄이고, 대신 행동과 태도로 사람들과 대화해 보려 합니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그가 남긴 말이 아니라, 그가 살아낸 시간과 그 안에 쌓인 진심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