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로서 어른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회사 일을 하다 보면 화를 낼 때가 있다. 말을 하다 보면 그 화가 더 커지기도 한다. 화를 낸 후에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과연 그 화가 필요했는지를.
상황에 대한 화일 수도 있고, 특정 사람에 대한 화일 수도 있다. 굳이 화를 내야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 되짚어 보게 된다.
화가 난다는 것은 감정이 흔들리고 생각이 겹겹이 쌓여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화가 좋을 리 없다. 화를 마주하는 상대방도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는 점에서 화는 분명 서로에게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화도 표현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잘못을 바로잡고 상황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화낼 이유 자체가 없다. 서로에 무관심하고 상황이 나빠져도 아무 상관이 없다면, 화라는 감정은 애초에 생겨나지 않는다. 어찌 보면 화는 무언가 더 나아지고 싶다는 바람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감정이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기본적인 것이 지켜지지 않아 회사와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이 생기면, 담당자와 팀장은 혼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럴 때도 언어적으로 지나친 표현은 삼가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명확히 전달하며 언성이 높아지게 된다.
언성이 높아지면 주변 팀들은 긴장하고, 오늘의 분위기가 왜 이런지를 조용히 살피게 된다. 차분하게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동일한 문제가 반복되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을 때는 화의 게이지가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차분히 말해도 다 알아듣는데 왜 저렇게까지 화를 낼까"라고 의아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화에도 원칙이 있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화의 기복이 있어서는 안 된다. 화를 낼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1. 기본을 지키지 않아 주변과 회사에 피해를 입혔을 경우
2. 절차를 어겨 사고를 친 경우
3.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일을 처리하다 그르친 경우
4. 주의를 받았음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경우
5. 조직 문화를 해치고 조직을 흔들어 놓을 때
6.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주변에 피해를 주는 경우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지체 없이 잘못을 짚어야 한다. 먼저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그럼에도 잘못된 과정을 인식하지 못하고 엉뚱한 대답이 돌아올 때는 더욱 화가 난다. 직급이 오를수록 그런 문제의식이 없으면 리더로서의 역할은 어려워지고, 그 아래 직원들 역시 자연스럽게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게 된다.
요즘 10대, 20대 청년들이 극우화되는 현상을 보게 된다.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역사와 철학, 인문학 교육이 약화되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감각을 제대로 키워주지 못한 탓이 크다. 여기에 바람직하지 못한 정치인과 극우 세력이 청년들을 악용하는 것도 주요한 요인이다.
사람을 조롱하고 역사적 의미를 훼손하며 공권력을 부정하는 행위들, 극우가 얼마나 위험한지 인식하지 못한 채 내뱉는 말과 행동들이 너무 걱정스럽다.
무엇이 잘못인지 모른 채 행해지는 이런 모습들은, 결국 부모와 잘못된 어른들, 그리고 부패한 정치가 만들어낸 슬롯의 그늘일 수 있다. 슬롯 전반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중심을 잡아주는 탄탄한 다리가 있어야 슬롯가 흔들리지 않는데, 그 중심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의 근저에는 결국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과 철학의 부재가 있다.
회사 생활도 다르지 않다. 기본이 지켜지지 않고 나만을 위한 생각만 가득할 때, 조직은 혼란스러워지고 팀워크는 무너진다. 작은 잘못들이 쌓이고 쌓여 큰 오염이 되고, 어느 순간 회사 전체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흩어지게 된다.
기본이 지켜지지 않을 때, 그 중요성을 직원들이 인식하지 못할 때 화를 낼 수밖에 없다. 화를 내지 않으면 그 중요성이 그냥 흘러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에 별표를 치듯,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언성을 높여야 할 때가 있다.
화를 낸 후 서로 기분이 좋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편함이 두려워 잘못을 흘려보내다 보면, 결국 더 큰 불편함과 사고가 터지게 되어 있다. 화는 표현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명확히 짚을 수 있는 기회이고, 솔직함이 허락되는 순간이다. 그것을 통해 서로가 개선되고 나아진다면, 화는 분명 가치 있는 표현이 될 수 있다.
아이들 교육에서도 때로는 단호한 표현이 필요하다. 하지만 요즘 학교는 부모들의 민원과 학생 인권이라는 이름 아래 교사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조가 되어 가고 있다. 아이의 잘못을 눈감아주고, 체벌은 곧 범죄가 되는 슬롯에서 교권은 상실되고 아이들은 방치되고 있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불편하더라도 정확한 역사를 가르쳐야 하고, 철학을 통해 인간이 왜 소중한지,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이런 교육 없이 최고의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슬롯에 나와 정의도 모른 채 판사가 되고 정치인이 되어 역사를 부정하고 극단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회사의 일이든, 아이들의 일이든, 가정의 일이든 모두 맞물려 있다. 과보호와 바르게 키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따뜻해야 할 때가 있고, 냉정해야 할 때가 있으며,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반성해야 할 때가 있다. 그 과정들이 한 사람을 진정한 어른으로 만들어 간다.
스스로 어른이라 말하지만 이미 너무 많이 오염된 사람들이 언론에 가득한 요즘, 내란에 동조하고 참가했던 사람들이 당당히 나와 큰소리치고 이런 상황들을 일부 사람들은 열광하고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답답함을 지울 수가 없다. 시대를 넘어 슬롯를 깊이 고민하고 진심으로 아끼는 어른들이 더 많아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