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행복과 불행이 같이 존재하는 쌍둥이라는 것을 인정하자.
인간의 행복을 가로막는 두 가지 적수가 고통과 무료함인데, 우리의 인생이란 이 두 가지 사이를 오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외적으로는 궁핍과 결핍이 고통을 낳는 반면 안전과 과잉은 무료함을 낳는다. 따라서 하층 계급 사람들은 궁핍의 고통과 끊임없이 싸우는 반면 부유하고 고상한 세계의 사람들은 무료함을 상대로 싸움을 벌인다.
행복과 불행은 객관적인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변덕스러운 감정에 달려 있다. 없으면 없다고 불평불만하고 많으면 많다고 지겨워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마흔에 읽는 쇼페하우어_강용수저>
누구에게나 고민은 있다
누구에게나 고민은 존재한다.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그 행복의 그늘 어딘가에는 불행이 조용히 깃들어 있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 곳에 아픔 하나쯤은 품고 살아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공간은 행복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세계다.
삶은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고 희석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가는 여정이다. 오로지 행복만을 좇다 보면 오히려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게 될 수 있다. '행복 중독'은 행복할 수 있다는 기대치를 끝없이 높여놓고, 그 기준에 이르지 못할 때마다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구조다.
잠깐 생각해 보자.
만약 늘 행복하기만 하다면 어떨까? 도전할 이유도 없고, 지금 이 상황이 그저 변하지 않고 유지될 뿐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더라도 기승전결의 굴곡이 있어야 이야기가 살아 움직인다. 단조롭게 평탄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드라마는 금세 지루해진다.
삶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변화 없이 그냥 시간이 흘러가고, 늘 행복하기만 한 삶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자 불가능한 일이다.
삶은 파동이다
세상에는 흐름과 사이클이 존재한다. 파동이 치듯 굴곡이 있고, 행복과 슬픔, 불행과 행복이 서로 교차하고 전환되며 삶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삶은 흘러가지만, 그 흐름 속에서는 언제나 변화와 물결이 함께한다.
우리는 그 흐름과 사이클을 인정해야 한다.
항상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기대를 내려놓고,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는 사이클들이 오히려 삶의 이야기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인정할 때,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삶을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불행이 있는데 왜 행복하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불행을 느끼고 슬픔을 경험해 봐야, 작은 것들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시간인지 더 깊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삶이 지루해지지 않고,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를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된다.
불만과 결핍이 삶을 이끈다
살아가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각자의 고민들이 존재하고, 그 고민들을 해결하면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행복은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는 것에 있고, 그 살아있음에 대해 감사하고 감탄할 때 비로소 존재한다.
하나의 고민이 사라지면 또 다른 고민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고민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한 것도 아니다. 각자의 이야기와 사연이 살아 숨 쉬고, 그 속에 잠재된 불만들이 삶의 이야기 속으로 녹아든다.
불만이 존재한다는 것은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다. 무언가를 사고하고 개선하려는 마음이 아직 살아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불편한 것들이 수없이 많고, 자신에게 불편함이 있을 때 불만은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중요한 것은 그 불만을 대하는 태도다. 불만을 불만으로만 토로하면 그저 불만으로 끝난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행동하고 개선하려 할 때, 불만은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결핍이 없는 삶은 행복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결핍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다는 것과 같다. 결핍이 있기에 부족함을 느끼고, 불만이 생기고, 행동을 통해 나아가게 된다. 결핍을 채우기 위한 행동들 속에서 시간이 흘러가고, 자신의 내공은 더 단단해지며 외부의 흔들림에 더욱 강해진다. 그런 과정들이 있을 때 삶은 오히려 풍성해진다.
비교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삶
물론 아프고 다치고 힘들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수없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남의 삶은 풍요롭고 나는 왜 이리 결핍투성이냐며 부모 탓, 환경 탓, 주변 사람 탓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탓을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 탓이 행동으로, 변화로, 결핍이 발전으로, 자바카라이 자신감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풍요롭게 보이는 삶 속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픔이 존재한다. 화려해 보이는 삶 안에도 슬픔과 괴로움과 불행이 언제나 함께 깃들어 있다. 삶의 큰 흐름에서 행복만이 존재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누구에게나 사연이 있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픔은 존재한다. 그래서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희망은 가지되, 지나친 기대치로 자신을 압박하지 않았으면 한다. 비교를 통해 스스로의 자존감을 깎아내리지 않았으면 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행복해 보이는 것이 온전히 행복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했으면 한다.
행복은 찰나의 빛 속에 있다
행복은 가까이 있다고 말한다. 가까이 있다는 것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행복이 아니라는 뜻이다. 일상 속 작은 순간들도 충분히 행복의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침 햇살 아래 나뭇가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며 옛 추억을 떠올리는 순간, 개구리가 소리 내어 귀청을 울리는 음률,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 동료들과 힘든 프로젝트를 함께 만들어가는 시간들. 이 모든 순간과 상황들이 행복의 찰나들이다.
행복은 특정한 공간이 아니다. 하나의 선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태도 아니다. 그 순간, 그 시간, 그 사람, 그 공간에서 느끼는 찰나의 감각이고 순간의 기분이다. 그 찰나들이 있기에 불행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이다.
어쩌면 삶은 행복의 용량보다 불행의 용량이 더 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행복의 강도가 불행을 잊게 해주는 도파민의 수치만큼은 충분히 크기 때문일 것이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날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아 피기 전 부는 달큼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 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 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 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 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 에게
<드라마 눈이 부시게 중>"
그래서, 오늘도 감사하며
우리의 삶은 행복과 불행, 슬픔과 기쁨이 교차되며 존재하는 시간이다. 이것을 온전히 인정할 때, 삶은 오히려 풍요로워지고 관대해지며, 일상에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다.
고민이 있어도 괜찮다. 불만이 있어도 괜찮다. 결핍이 있어도 괜찮다. 그것들이 바로 당신의 삶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감사하며,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