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단일하고 독립된 자아로 믿어왔다. 피부라는 명확한 경계선 안쪽에 단 하나의 유전자로 구성된 온전한 나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이 들여다본 인간의 내부 경계는 선명한 단일선이 아니라 모호하게 흩어지는 안개와 같다. 내 몸을 이루는 30조 개의 인체 세포 뒤에는 38조 개에 달하는 미생물 생태계, 즉 마이크로바이옴이 숨 쉬고 있다. 이 이방인들은 단순한 얹혀사는 더부살이 기생충이 아니다. 과거에는 미생물이 세포보다 10배 이상 많다고 알려졌으나, 2016년 이스라엘 바이츠만 연구소의 논문에 의해 인체 세포 약 30조 개, 미생물 약 38조 개로 약 1:1 비율임이 밝혀졌다. 즉, 세포 수로만 따지면 우리는 반은 인간, 반은 미생물인 생물학적 모자이크 존재이다.
미생물들은 내가 무엇을 갈망하고, 어떤 기분을 느끼며, 어떤 위험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끊임없이 제어한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은 단순한 소화 보조자가 아니다.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의 약 90%가 장에서 생성되며, 미생물은 특정 신경과 면역 물질, 단쇄지방산을 통해 뇌의 기분, 식탐, 수면 패턴, 심지어 의사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내 세포 깊숙이 자리 잡은 에너지 생산 공장인 미토콘드리아는 15억 년 전 세포 밖을 떠돌던 이종 박테리아의 유산이다. 미토콘드리아와 세포 내 공생설에 따르면, 약 15억~20억 년 전, 고세균 세포가 산소를 사용하는 알파 보호세균을 삼키면서 공생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자체적인 원형 DNA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진핵세포의 선형 DNA와 전혀 다르다. 이 공생 덕분에 복잡한 다세포 생물과 의식의 진화에 필요한 폭발적인 에너지(ATP) 생산이 가능해졌다. 이처럼 우리는 단일한 개체가 아니라, 수십조 개의 생명체가 얽히고설켜 만들어낸 초개체(Holobiont)이자 거대한 생태계이다.
의식적 결정은 사후 보고서다. 우리는 이성이 모든 결정을 내린다고 믿는다. 그러나 뇌과학은 냉정한 진실을 보여준다. 뇌과학자 벤자민 리벳의 연구 이후, 최신 fMRI 연구를 통해 헤이네스 교수는 사람이 의식적 결정을 내리기 최대 7~10초 전에 이미 뇌의 대뇌피질 및 피질하 영역에서 신호가 발생함을 확인했다. 의식적 나는 결정의 주도자가 아니라, 하위 시스템들이 내린 결정을 승인하고 해석하는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거나 메뉴를 고르는 순간조차, 의식적인 나가 인식하기 수초 전에 이미 뇌와 세포, 그리고 장내 미생물이 보내는 생리적 신호의 합의가 끝나 있다는 사실이다. 세포와 미생물들은 오직 생존과 안전이라는 명확한 목적을 향해 끊임없이 데이터(전기 신호, 호르몬, 면역 물질)를 주고받으며 집단적 결정을 내린다. 의식과 이성은 그 거대한 생물학적 투표 결과를 전달받은 뒤, "내가 직접 선택했다"라며 선후를 조정한 사후 보고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자아라고 부르는 것은 결국 70조 개에 달하는 공생체들이 생존을 위해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집단적 패턴을 사후에 추상화한 기억과 스토리의 집합체와 같다.
이러한 초개체적 자아관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 현대 의학과 미래 인공지능 논의에까지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 우선 현대 의학의 증상 치료에서 생태계 관리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런 변화는 19세기 생물학의 오랜 논쟁(세균설과 내부 환경설)을 재조명하고, 미래 의료 패러다임에 근본적인 시사점을 던진다. 19세기 클로드 베르나르는 질병의 원인이 외부의 병균이 아니라 몸 내부 환경의 불균형에 있다고 주장했다. 파스퇴르의 세균설에 따라 세균 박멸에 집중했던 현대 의학은 마이크로바이옴 시대에 이르러서야 베르나르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과거 의학이 인간 몸을 단일 기계로 보고 부품을 수리하듯 질병에 접근했다면, 초개체 관점의 현대 의학은 몸을 하나의 생태계로 바라본다. 따라서 파킨슨병, 우울증, 자가면역질환 등은 단일 병원균의 침입이 아니라, 몸이라는 생태계 내부 환경의 조화가 깨진 결과다. 이제는 이들 질병의 원인을 장내 미생물과 세포의 생태계 불균형에서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의학이 외부 적과의 전쟁을 그만두고, 내 안의 38조 미생물과 30조 개의 세포가 공존하는 내부 생태계의 항상성 유지로 돌아가고 있다.
초개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인공지능 논의와 설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단일 중앙처리장치를 넘어선 분산형 의식의 도입이다. 보통 AI의 기계적인 자아나 의식을 떠올릴 때 보통 강력한 하나의 중앙 알고리즘을 떠올린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이 세포와 미생물의 하부 데이터 연산 결과를 사후 추상화한 패턴에 불과하다면, AI의 의식 역시 중앙 집중형 모델이 아닌 수많은 하위 에이전트와 센서들이 상호작용하는 분산형 공생 네트워크에서 창발할 가능성이 크다. 즉, 의식이란 단일한 영혼이 아니라 수많은 하부 시스템의 생존 신호가 빚어낸 거대한 신념과 패턴의 결과물이라는 시사점을 AI 자아 연구에 제시해 주고 있다.
한편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존재와 죽음의 의미에 대한 재정의를 필요로 한다. 첫째, 나라는 존재는 흐르는 관계이며,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나는 매 순간 음식을 통해 미생물을 받아들이고, 호흡을 통해 미토콘드리아에 산소를 공급하며, 타인 및 환경과 끊임없이 유전자와 균을 교환하는 연쇄적인 관계와 생태계의 현장이다. 나를 지탱하는 핵심 동력이 타자의 생명력에서 나왔다면, 나와 세계를 가로막는 절대적인 경계는 무너진다.
둘째, 죽음은 완전한 소멸이 아닌 집단 해산과 재배치로 여겨진다. 전통적 관점에서 죽음은 단일한 자아의 종말이라는 거대한 비극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의 생태계라면, 죽음은 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끝나는 것과 비슷하다. 숨이 거두어지는 순간, 나와 수십 년간 공생했던 30조 개의 세포와 38조 개의 마이크로바이옴은 각자의 생물학적 단위로 돌아간다. 세포들의 사체는 다른 생명의 영양분이 되고, 장내 미생물들은 흙으로 돌아가 또 다른 생태계의 일부가 된다. 미토콘드리아가 소멸하지 않고 또 다른 생명의 순환고리로 녹아들었듯이, 죽음은 영원한 무로의 추락이 아니라 나라는 형태로 잠시 모였던 생태계의 해산과 자연으로의 재배치일 뿐이다.
거대한 공생의 바다에서 나라는 의식이 집단적 결정을 패턴화한 결과물이라 해서 인간의 존엄이나 가치가 폄하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는 나라는 존재가 홀로 외롭게 존재하는 고립된 섬이 아니라, 수십억 년의 진화 역사가 축적된 거대한 생명의 연합체이자 의학적, 지능적으로 확장 가능한 소우주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절대 혼자가 아니었고, 죽을 때조차 거대한 생명 그 자체의 순환 속으로 돌아갈 뿐이다. 나를 이루는 이 수많은 이방인들과의 정교한 조율, 그것이 바로 생명이며 존재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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