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안 쓰려고 노력했던 홍명보 감독 이야기

by페르세우스


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을 분노를 통해 하나로 뭉치게 만들어준 홍명보 감독이 간밤에 사퇴했습니다.


25일 경기 0:1 패배 이후 사흘 동안의 간절한 바람이 무색하게 다른 나라들은 마치 놀라울 정도로 경우의 수를 피해 가며 한국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던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나온 발표였습니다. 오늘 새벽 12시 반, 멕시코 현지에서 고작 2분여밖에 되지 않는 짧은 입장문을 낭독하고 기자들의 질문 하나 받지 않은 채 도망치듯 회견장을 떠났습니다.


1승 2패, 조 3위, 최종 34위. 2006년 이래 처음으로 귀국 행사조차 없는 대표팀입니다. 거기에 세계 최초로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두 번이나 탈락한 국가대표팀 감독에 오르는 역사를 이뤄내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외조모상을 치르고 와 있어 컨디션이 좋지 않고 다른 글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이 글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국가에서 지원한 세금으로 간 대표팀인 데다 손흥민의 마지막 월드컵을 망쳐버렸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죠. 거기에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나가는 모습은 저도 모르게 탄식이 욕설로 튀어나왔고, 그 모습이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기에 충분했습니다.




남아공전,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나

사실 무승부만 해도 32강에 조 2위로 토너먼트로 올라가는 경기였습니다. 그 경기에서 홍명보 감독이 선택한 카드는 손흥민의 벤치행이었습니다. 감독은 "이기는 경기를 하겠다"라고 공언해 놓고 정작 가장 강력한 공격 카드를 벤치에 앉혀둔 겁니다. 이 판단 하나만으로도 고개가 갸우뚱해지는데 경기 내용은 더 황당했습니다.




전반 내내 남아공의 압박에 세컨볼 하나 제대로 따내지 못했고 슈팅은 10개나 허용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벤치의 전술 수정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후반 시작과 함께 손흥민을 투입했지만 이미 우리의 스리백 전술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분위기를 잡은 상대를 흔들기엔 역부족이었죠. 거기에 후반 18분 실점 직후 홍 감독이 꺼낸 카드는 수비의 중심인 김민재를 빼고 박진섭을 투입하는 이례적인 교체였습니다.




2002년 4강 신화를 함께 일궜던 동료(안정환, 박지성, 설기현, 이천수, 이영표)들마저 "전술이 없었다"라며 끝내 쓴소리를 참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프랑스 축구의 전설 티에리 앙리도 폭스스포츠 해설에서 한국의 경기 운영과 선수 기용을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경기 중에도 끊임없이 메모를 하면서 경기를 분석하는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 모리야스와 연습경기를 하듯 느긋해 보이는 홍명보 전 감독의 모습은 정말 대비를 이뤘죠.




사실 예견된 참사라고 해도 무방했기에 이렇게 열받아서는 안 됩니다. 일단 감독 선임부터 문제였으니까요.

홍명보 감독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 2패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실패를 이미 경험했던 감독이었습니다.


대표팀 감독 후보를 발굴하고 추천해야 할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를 배제하고, 축구협회가 사실상 미리 내정해 선임하는 독선적인 방식이었다는 비판을 처음부터 받았습니다. 공모나 경쟁 없이 협회 인맥, 고려대 라인이라는 논란과 함께 낙점된 감독. 이런 낙인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라는 역할이 늘 가장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자리지만 단 한 경기도 치르지 않았음에도 이 정도로 여론이 최악을 달린 감독은 한국 축구 역사상 없었습니다.




봉사를 하겠다더니 연봉이 20억?

홍명보 감독은 선임 당시 국회에 출석해서 직접 이렇게 말했습니다. "10년 전 가졌던 바카라임감과 사명감이 다시 생겼다. 마지막 봉사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의 연봉은 국내에 알려진 대로 약 20억 원 수준이었습니다. 해외 급여 분석업체 샐러리리크스는 약 37~38억 원으로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일본 모리야스 감독의 연봉은 약 14억 원밖에 되지 않았지만 일본은 32강에 정말 무난하게 진출했습니다. "38억짜리 봉사도 있느냐"라는 날 선 반응이 온라인에 넘쳐난 이유가 있습니다.




대통령은 SNS를 통해 "능력보다 네 편 내 편을 더 중시해 무능한 사람을 지휘관으로 선발하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라며 체육 행정 개혁을 예고했습니다. 대한체육회와 축구협회의 소수 간접선거제를 직선제로 바꾸도록 행정지도를 지시했다고도 밝혔죠. 이 선거제도 자체가 무능한 정몽규 체제를 만들고 홍명보 감독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니까요.


딱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는 스포츠의 영역에 정치권이 개입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FIFA는 각국 축구협회의 자율성과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을 정관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FIFA는 과거 정부의 간섭을 받은 쿠웨이트를 국제 대회에서 제외한 사례도 있습니다.


정치권이 너무 깊이 개입하면 한국 축구 자체가 국제 대회 참가 자격을 잃을 수 있다는 역설이 생기는 겁니다. 개혁의 목소리는 높아졌지만 실제로 손댈 수 있는 범위는 생각보다 좁다는 사실이 우리를 답답하게 만드는 지점입니다.




결국 협회가 자체적으로 달라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감독 한 명 바뀌고 협회장 한 명 물러나는 것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열이 식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같은 방식으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팬들은 점점 등을 돌리며 우리나라는 그저 그런 종이호랑이로 전락해 국제대회에서 다른 나라의 승점자판기가 되겠죠.


그렇게 될까 봐 가장 걱정스럽습니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손흥민의 월드컵이 이렇게 끝나니 정말 안타깝네요. 39살에 출전해 이미 5골이나 넣은 메시처럼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해서 월드컵에서 한 번 더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당연히 좋은 감독을 만나서 말이죠.


한 줄 요약 : 감독도 치명적인 결함이 있지만 그런 감독으로 선임해 세계 대회까지 출전하게 만든 구조가 문제다. 구조가 안 바뀌면 이 일은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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