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여행기 3탄
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히로시마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한 뒤 가장 먼저 소화한 일정은 바로 평화공원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사실은 알고 있지만 왜 떨어졌는지는 잘 모릅니다.
미국이 1945년 8월 6일, 첫 원폭 투하지로 히로시마를 선택한 이유는 군사적, 실험적 요인이 겹쳤기 때문입니다.
첫째, 히로시마는 남부 방어를 총괄하는 사령부와 군수 창고가 밀집한 핵심 군사 요충지였습니다.
둘째, 새 무기의 파괴력을 정확히 측정하고자 기존 공습을 받지 않은 '보존된 도시'가 필요했습니다.
셋째,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라 폭풍의 파괴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투하 당일 기상 조건이 가장 맑았던 점이 최종 결정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군사적 가치, 무기 실험 의도, 날씨라는 비극적 우연이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그렇게 떨어진 폭탄은 히로시마를 생명의 흔적이 사라진 땅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1955년에 조성한 곳이 바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입니다. 첫날 오후 저희는 이곳을 향해 갔죠. 걸어서 30분 동안 가는데 첫날의 설렘이 있어서 그런지 갈 때는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사진에서처럼 히로시마의 빛을 뚫고 드디어 도착했죠.
원폭돔(원폭 피해자 위령비 인근, 구 히로시마 현 산업장려관)은 1945년 8월 6일, 인류 역사상 최초의 원자폭탄 투하 당시 폭심지에서 불과 160m 거리에 있던 건물입니다. 원폭의 엄청난 수직 충격파를 직접 받았지만 건물 중심부와 철골 돔이 기적적으로 형태를 유지했습니다.
전쟁의 참상과 핵무기의 비극을 온몸으로 증언하는 이 유적은 인류의 과오를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1996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죠. 현재는 전 세계인에게 전쟁의 잔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일요일이었음에도 꽤 많은 방문객들이 있었습니다. 건물 근처로 가니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제법 많이 보였습니다. 전 세계에서 이런 역사적 현장은 단 한 곳뿐이니 각자 조용히 둘러보는 모습이었습니다.
이곳에 폭탄이 투하된 시점에 히로시마 인구가 약 35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원폭이 떨어지자마자 약 7만~8만 명이 즉사하거나 치명상을 입었고, 급성 방사능 피폭 및 화상 등으로 인해 그해 12월 말까지 누적 사망자가 약 14만 명에 달했다고 추산됩니다. 도시 인구의 약 40%가 몇 달 사이에 목숨을 잃은 셈이죠.
장소가 장소라서 그런지 뭔가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생경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많이 걸어 힘들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마냥 즐겁지는 않더군요. 전쟁이 주는 참혹함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다음 장소에 가서는 더 먹먹하고 묵직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한국인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위령비를 발견해서였죠. 한 선배는 이 위령비에 참배하러 가면 한국 생수를 챙겨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원폭 투하 당시 수많은 희생자들은 극심한 열상과 갈증으로 인해 "물, 물을 달라"라고 울부짖으며 숨져갔다고 합니다. 고국을 떠나 타지에서 목마르게 숨져간 한국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위로하기 위해 한국 여행객들이 우리나라 물을 가져가는 추모 문화가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희생된 일본인들을 참배하는 곳도 따로 있더군요. 아치 아랫부분에 원폭돔이 보이는 광경은 만든 이의 감각이 돋보였지만 한편으로는 그날의 아픔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도 읽혔습니다.
평화공원은 모토야스강이 가로지르며 흐르고 있어 낮에도 전망이 좋고 밤에도 야경이 참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안다면 마냥 웃으면서 즐겁게는 볼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인류의 빛나는 발전을 위해 개발된 핵이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로 바뀌는 순간 어떤 참혹한 결과를 낳는지 확실히 알려준 곳이기도 했으니까요. 직접 와서 보니 더 확실히 느낄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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