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는 중

by펑예

많은 이웃들처럼 나도 박혜영 작가님의 <모두가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보고 있다. 지금부터 써 내려갈 글은 그렇다고 리뷰는 아니라는 것을 먼저 밝힌다.


우선 제목이 탁 들어왔다.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건 내가 습관적으로 떠올리는 오랜 생각이고 일기장에도 수 차례 등장하는 문장이다. 나는 왜 태어났지. 어떻게 무가치하지 않음을 증명하지? 이것은 아마도 작가라는 오랜 열망엔 이르지 못하고 경력은 단절되었으며 가족들의 보좌가 주업이 된 상태가 한몫했을 것이다.


엊그제 미국에서 가장家長으로 사는 절친이 전화를 걸어왔는데 출장 중에 잠시 시간이 나 친구를 만나러 가는 중이라고 했다. 잘 시간 아니냐는 말에 이렇게 말했다.


"아니, 아직 잔업 중이야. 직립을 못하는 J의 야식을 챙기는 중인데 좀 이따 식당 직원들 가운 다림질하기도 남았어."


친구도 J도 내 말에 키득대며 농담을 던졌지만 나는 새삼 내 본분, 주업이 무엇인지를 인식했다. 그야말로 주부 내지 집사. 20대의 내가 알았더라면... 얼마나 통탄했을까? 내조라는 말을 경멸하고 자아실현이 최우선이며 타협 없이 꼿꼿하던 그 20대는 이제 '오랫동안 서서 일하는 직업이라 파김치 됐는데 워쪄? 돈 한 푼이라도 아껴서 가게 관리해야지 워쪄?' 하는 이해심 많은 '워쪄 아줌마'가 되었다.


물론 이 본업은 중요하다. 내가 없으면 고망이도, 가게도, 남편도 크게 하자가 생길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멋이 없다. '가치'라는 단어를 씌워주기엔 부족하게 느껴진다. 어디 가서 직업란을 채워야 할 때, 그저 '주부'라고 써야겠지 생각하면 마치 무직이라고 써야 하는 황동만처럼 가슴이 떨린다.


얼마 전 읽는다는 것, 자신의 생각을 가진다는 것의 중요성에 관심 많다 보니 '독서지도사' 자격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부해서 고망이 독서 지도에도 활용하고 나중에 직업적으로도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 문턱도 높지 않다는 소리에 귀가 솔깃했다. 무엇보다 내년에 취학을 앞두고 있는 입장에서 엄마 직업란에 '주부'보다는 '독서지도사'가 훨씬 근사해보인다. 그래서 국가 인증 기관에서 무료로 강의를 좀 들어봤다. 근데 그런 얕은 수로 접근해선지 수업에 집중이 안되고 내용이 전혀 와닿지가 않는다. 직업란에 뭐라고 한 줄 써넣기 위한 발버둥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또 가치 타령을 하다가 보류해버렸다.


그래도 무가치함과 싸우면서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온라인카지노 스토리를 쓰는 일이다. 그리고 좋은 글들을 읽는 것, 악기를 연주해 실력이 점점 나아지는 것이다. 그 외 좋은 그림이나 영상들, 풍경들을 보며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것도 마음을 채워준다. 아무 목적 없이 특히나 돈이 될 거라는 일말의 기대 없이 재미로 즐겁자고 하는 일, 그것이 예술의 태생 아닌가. 무가치함과 싸우는 자체가 예술의 가치를 느끼게 하는 역설을 생각해보게 된다.


<모무싸>의 지난 회차 한 장면, 예술과 비즈니스 사이에 줄타기하는 고박필름 대표 고혜진이 자신의 영화를 가로채기 하려는 지극한 비즈니스맨 최동현에게 손절을 선언하며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에서 누가 돈 벌라고 영화를 하냐?"


그러면서 자폭하듯 자금 회수가 힘들어보이는 황동만 작품을 데뷔시켜준다는 전개가 흥미진진하다. '자폭하듯'이라는 표현은 이 슬롯의 판단이다. 하지만 거기에 꿈틀대고 대차게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 그들은 멍해진 머리로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아가는 우리를 환기시켜준다. 뭐가 인간답게 멋지게 사는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나는 어떻게 뚫고 가볼까? 시인인 진만의 말처럼 뭔가를 쓰면 '그것을 누군가에게 보이게 하고 싶은 징글징글한 욕망' 때문에 이렇게 글을 게시하는 정도, 악기 연주를 한다면 소수의 사람들 앞에서나마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는 딱 그 정도로만 활동하는 아마추어 예술인, 이건 어떨까? 그래도 조금은 근사한 롤인 것 같은데. 직업란에는 물론 쓸 수 없겠지만.




#내_꿈은_결국_한량?

*모든 이미지 출처_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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