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모닝

by펑예

갑자기 아침형 인간이 될 수도 있을까?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는 스스로를 야행성 인간이라 확신하며 살았고 '일찍 일어나는 새는 일찍부터 피곤하다'라는 신조를 품어왔다. 자기계발서가 추앙하는 '미라클 모닝'에 대해서도 그걸 못하는 인간들은 게으르고 열등하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며 자기 착취를 부추기는 사업모델, 생산성 강박의 정수라고 반감만 가졌다.


그런데 2주째, 7시에 일어나고 있다. 그 전까지는 새벽 1~2시에 취침해 8시반~9시를 아주 힘겹게 일어나곤 했으니 7시면 내 기준엔 아주 이른 아침이다. 그것은 J의 느닷없는 결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최근 위고비의 부작용으로 집에 돌아오면 이내 기절하듯 잠이 들어 오전 6시가 되면 눈이 떠지는 바이오리듬으로 바뀌었다. 처음엔 습관적으로 숏폼을 한참 보다가 몸을 아주 일으켜 샤워를 하러 가거나 도로 한 시간 정도를 더 잤다고 한다. 그렇게 몇주가 흐르던 어느 날 그는 숏폼을 탁 끄고 각성한다. '시간 ㅈㄴ 아깝네.' 그러면서 헬스장을 알아보다가 또 기부천사나 될 것이 두려워 뒷산에 한번 가봤단다.


아파트 후문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관악산 자락의 둘레길이 있었고 중간 공터에서 적당히 근육 운동 좀 하고 돌아오면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딱 좋은 코스. 그래서 그날 이후로 별 일 없는 한 아침마다 산에 올랐다. 그리고 나는 방금 돌아와 운동복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 그를 보며 "같이 가면 좋을 텐데. 대단하네."라고 로봇 같은 반응을 되풀이했다. 근데 어느 날 갑자기 J가 (로봇 반응을 진실로 믿었는지) 고망이에게 이렇게 선언하는 게 아닌가.


"엄마가 요즘 기운이 너무 없어서 이대로는 빨리 하늘나라로 갈 거 같아. 그래서 내일부터 아빠랑 아침에 등산할 거야."


그리고 다음 날 진짜 나를 후드려쳐 밖으로 몰았다.(비유적인 표현 아님)

"애는 어떻게 해?"

고망이는 깨워봤으나 여전히 한밤 중이자 J는 TV를 틀어놓는 나름의 장치를 해두고는 나를 잡아 끌었다. 그래도 되나 하면서도 나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 따라나섰다. 그럴 때가 있다. 내 뇌는 아직 확신을 못 했는데 이상하게 몸이 먼저 움직이거나 거부한다. 나는 그걸 존중하는 편이다.

어젯밤에 우연히 읽은 칼럼(임장을 수시로 다니는 부동산 전문가가 오전 7시에 반포 스타벅스에 갔더니 다른 풍경이 있더라는)이 영향을 좀 미친 건지도 모르겠다. 미라클 모닝으로 자기계발적 성취를 이루는 것은 안 와닿고 부자들은 오전 일찍부터 자기 주도적 시간을 갖는다는 것엔 감흥한 것도 좀 웃기는 일이지만.


그래서 첫날 해보니 어땠냐? 전날 엄포를 들은 탓인지 몸이 긴장해 눈이 빨리 떠졌고 옷을 입을 때까지는 여러 가지로 몸도 마음도 무거웠지만 산에 오르면서부터는 금방 상쾌했다. 돌아오니 고망이는 역시 울면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내일부터는 자기를 꼭 깨워서 데리고 가라고 신신당부해 둘째 날부터는 세 식구가 모두 산행에 나섰다.


예상하시겠지만 오전에 산을 오른다는 것은 무조건 좋은 일이다. 내가 실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본 일은 없었지만.


일찍 일어나면 그 멍함, 머리에 안개가 낀 것 같은 불쾌함이 있는데 산 바람을 맞으니 금새 겆히는 것 같다. 그리고 산은 봄으로 물드는, 매일같이 바뀌는 풍경과 생동감을 주지만 귀를 피곤하게 하지 않는 새소리 등 무해하면서 감각을 일깨워주는 것으로 가득하다.

고망이가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힘들게 일어나는 것은 안 됐지만 알고보니 이 어린이에게는 더 없이 좋은 활동이었다. 감각적 불균형 잡아줘, 신체 조절, 집중력 훈련 돼, 불안도 낮춰줘 그 외에도 계절의 변화, 동식물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평일엔 잠깐 인사하는 정도가 다인 아빠와의 아주 정다운 시간이 생겼다는 데 박수! 내려올 때는 힘들다며 아빠한테 꼭 엎혀 내려오는데 이마저도 아빠에겐 러시안백 운동이 되고 부자간의 스킨십 타임이 되는 것 같아 흐뭇하다.


이 좋은 시간을 지속시키기 위해 나는 오늘도 산을 내려오며 J에겐 "자기 덕에 참 건강하고 좋은 시간을 갖게 되었다"며 공로를 치하하고 고망이에겐 "우리 가족이 함께하니까 너무 좋다. 이렇게 산을 잘 오르다니 너무 대견하다. 엄마 오래 살겠다"라고 해준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들이 씻는 동안 아침을 준비하고 그들이 아침을 먹을 때는 탁자 한켠에서 영어 고전 명작에 나오는 글귀 두 챕터를 필사한다. 그리고는 고망이를 등원시키고 실내 운동을 하러가거나 커피 한잔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여기서 유튜브로 살짝 그루브한 플리를 재생시키고 커피 마시며 바카라을 읽는 것으로 오전이 마감된다.


쓰고 보니 아주 퍼펙트 모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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