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고 있다는 착각

인정받는 것과 쓰이는 것

byWONA

나는 앞으로 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오랫동안 나는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이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끝까지 바카라임을 다하는 사람. 그리고 실은, 누군가 알아주고 있다고 믿었다.


나를 알아봐 준다고 믿었던 사람들

처음부터 길을 잃었던 것은 아니다. 그때의 내게는 방향이 있었다. 무엇을 잘하는지보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가 더 선명하게 보이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를 알아봐 준다고 믿게 한 사람들이 있었다. 공감을 말하고, 함께를 말하고, 더 큰 그림을 그려 보이던 사람들. 같이하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고 했고, 다양한 경험과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나는 계산적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경험을 넓히는 일이 무언가를 쌓는 일보다 먼저라고 생각했다. 내 것이 아닌 역할에 쓴 시간도 결국 성장의 재료가 되리라 믿었다.


'기회'라는 이름의 시간

그때는 몰랐다. 나는 협업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비즈니스 모델 안에서 '실행 엔진'으로 쓰이고 있었다. '함께'라는 말 뒤에는 누가 돈을 대고 누가 시간을 대는지에 대한 분명한 구조가 있었다. 돈을 쓰는 사람과 시간을 쓰는 사람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간극이 있었다.


내가 보탠 시간은 언제나 성실했지만, 그 시간이 어디로 향할지는 내가 정할 수 없었다.


어떤 조직은 사람의 가능성을 함께 키우고, 어떤 조직은 지금 가진 에너지를 끝까지 끌어낸다. 나는 뒤의 곳을 지나면서 앞의 곳을 기대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말한다. 좋은 경험이었잖아, 그 경험이 지금의 너를 만든 거야. 맞다. 경험은 분명 있었다. 그런데 경험이 쌓일수록 이상하게도 내 이름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은 줄어들었다. 여전히 성실하게 일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언제든 바꿔 끼울 수 있는 부품이 된 것 같았다.


가장 늦게 알게 된 사실

나는 늘 필요한 사람이었지만, 주도권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들은 내가 생각하는 방향을 높이 평가했고, 내 손길을 늘 필요로 했다. 그런데 그들의 말 속에서 나는 언제나 '아직 성장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기회와 경험이 지금의 대가였고, 함께 성장할 미래가 약속된 보상이었다. 그 미래는 늘 조금 더 앞에 있었다.


누군가 그랬다. 지금 인정해 주지 않는 인정은 미래에도 없다고. 그때의 나는 그 말을 이해하기에 너무 순진했다.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과 더 많이 쓰이고 있다는 느낌은 생각보다 닮아 있었다. 둘을 구별하지 못하는 동안 나는 조금씩 중심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늦게 알아차린 사람도 나였다.


내가 머문 자리

그렇다고 그 구조만 탓할 수는 없다. 어쩌면 나 스스로 아직 내 방향을 정할 자격이 없다고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정해 준 방향 안에서 성실하게 달리는 편이 덜 무서웠을지도 모른다.


왜 그랬는지는 그 뒤로도 오래 붙들고 있던 질문이다.


이제야 알게 된 것

돌아봤을 때 남은 것이 후회만은 아니다. 다시 나답게 설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감각도 남았다.


이제는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보다 무엇을 고를지를 먼저 묻는다. 적어도 내 무대를 정하는 주도권만큼은 내가 가지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계속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남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나는 누구의 방향으로 걷고 있는가.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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