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빈틈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그 빈틈 사이로 서로에게 닿습니다. 한동안 나는 내가 경험하고 느끼는 감정들을 기록하고 언어화하는데 깊은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시를 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적 허용과 은유는 친절한 설명 없이도 많은 여백을 두고 독자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어쩌면 그 여백이 언어가 닿지 못하는 곳을 대신하는 공간인 것 같습니다.
하이데거. 일상의 언어는 존재를 가리지만, 시적 언어는 존재를 드러낸다.
학창 시절 국어시간에 언어의 추상성에 대해서 배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교과서에서는 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무지개를 예로 들었습니다. 실제 자연에서 우리가 보는 무지개는 경계 없이 이어지는 연속적인 색의 스펙트럼이지만 언어는 이 연속적인 자연 현상에 인위적인 경계를 설정합니다. 이를 언어의 분절성이라고 하며, 이러한 개념을 단순화하는 과정을 추상화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우리나라와 달리 영미권에서 무지개는 여섯 가지 색으로,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 두세 가지 색으로 표현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같은 무지개를 보면서 저마다의 다른 언어의 현실을 살고 있는 셈입니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처럼 언어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언어를 반영하기도 합니다. 언어가 현실을 카테고리로 잘라서 그 카테고리대로 세상을 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실 자연에 잡초라는 단어는 원래 없다고 합니다. 그저 인간이 쓸모없는 풀에 잡초라고 이름 붙인 순간 뽑아야 할 대상이 된 것입니다. 언어가 없었으면 그저 자연의 일부였을 풀이 언어화되면서 다른 현실로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 역시 본래 경계가 없는 무지개의 연속적인 스펙트럼처럼 같은 순간조차 사람마다 전혀 다른 결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를 언어화하는 순간 입체적으로 펼쳐지던 무한한 차원의 경험은 고작 2차원의 평면적인 정보로 압축되고 왜곡됩니다. 그 과정에서 본래의 형태가 깎여 나가는 것입니다. 이토록 불완전한 언어의 한계를 자기만의 경험으로 채워서 이해하는 면에서 시는 참 좋은 언어의 수단이기도 합니다. 시인의 경험이 그대로 전이되지 않더라도 독자는 자신의 경험과 배경을 바탕으로 그 빈틈을 새롭게 풀어내며 마음을 울립니다.
롤랑 바르트. 저자의 죽음은 곧 독자의 탄생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선불교의 오랜 가르침처럼 언어는 경험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 경험 그 자체는 아닙니다. 언어는 삶의 생생한 순간을 담아내기에 그 한계가 너무나도 뚜렷합니다. 역설적으로 언어로 담지 못한다는 건 이미 그것을 넘어선 경험을 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가령 맑은 하늘을 보며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벅차고 황홀한 감정을 나의 언어로 표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밤하늘의 밝은 달을 보며 차오르는 그 먹먹함을 저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움은 그립다고 표현할 수 있고, 억울함은 화라도 낼 수 있는데 이 먹먹함은 도저히 이름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다만 저는 그 감정을 마치 하늘을 유영하는 듯한 가벼움으로 표현합니다. 이렇게 나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들을 필요한 이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언어는 도구일 뿐이고, 진짜 목적은 경험과 경험의 연결입니다. 나의 경험과 독자의 경험이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마음과 마음으로 닿고 서로 공명하기를 바랍니다.
비트겐 슈타인.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하지만 침묵하면 개인적인 경험에서 그치지만 그 침묵을 넘어서 기록하고 그것이 쌓인 뒤에는 필요한 누군가에 닿을 수 있습니다. 물론 언어는 불완전하고 이러한 나의 시도도 여전히 부족하고 미흡합니다. 하지만 불완전한 언어로 표현해도 받는 사람이 각자 자기의 경험으로 채워서 이해하길 바라는 것이 작가가 독자들을 위해 남겨둔 여백이기도 합니다. 지도가 지형이 아닌 걸 알면서도 지도를 그리는 것은 지도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함입니다. 나의 경험을 기록하고 언어화하는 것은 그 한계를 넘어서 누군가와 이 경험을 공유하고 마음으로 공명하며, 필요한 이에게 작은 위로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