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아픔은 없었다.

by월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원하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성취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 여정에서 저는 늘 무거운 압박감을 느껴왔습니다. 의식하지 못했을 뿐 표면 아래의 삶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고, 불안과 두려움이 서려 있었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불안했을까요? 그 두려움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돌이켜 보면 걱정했던 많은 일들의 대부분은 실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경제적 결핍이나 취업 문제처럼 오지 않은 미래를 붙잡고 앞서 불안해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도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당장 밥을 굶거나 공과금을 못 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지는 않습니다. 원하는 온라인 게임을 가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제 삶이 불행하거나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취만이 삶의 목적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삶은 지금 이 순간에도 흐르고 있고, 나는 여전히 내게 필요한 경험들을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고, 지금도 이 순간을 살아갑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과거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시간을 우리가 생각하는 과거, 현재, 미래처럼 하나의 선으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하나의 원처럼 순환의 개념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과거와 미래는 현재와 동시에 존재하는 하나의 연결된 고리였습니다. 시간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보지 않고, 계절처럼 끊임없이 순환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원주민들의 이러한 시간관은 현대의 선형적인 시간의 스트레스에 벗어나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데 큰 바탕이 되었습니다.



또한 불교에서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존재합니다. 시간이란 마음이 만들어낸 하나의 환상이고, 실재하는 건 오직 이 찰나의 경험뿐이라고 합니다. 결국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에 머무를 때, 우리는 현재를 충분히 살아가지 못하게 됩니다.



저는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타고 관계의 상실에 깊이 흔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성향상 가벼운 관계를 잘 맺지 못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을 깊이 이해하고 연결되기를 원합니다. 그렇기에 소중한 관계가 끝이 나면 마치 자신의 일부분을 잃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실제 우리의 뇌는 이별의 고통을 신체적 부상을 입었을 때와 거의 동일하게 인식한다고 합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이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뇌과학적으로는 어느 정도 사실인 셈입니다. 그런 상실의 경험이 지금 돌이켜보면 나를 한 단계 성장시킨 배움이 되었습니다.



그럼 아팠던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아팠던 과거의 사건은 그대로 존재합니다.

달라진 건 그 사건에 대한 저의 인식입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아픔이라는 것이 고정된 실체로 존재했던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정신분석학에는 "사후성"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유년기나 과거에 겪은 사건이 그 당시에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단순히 서랍에 박혀 있다가 시간이 흐른 뒤 현재의 새로운 인식이나 경험을 만났을 때 비로소 과거의 사건이 재해석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얻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같은 경험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고통이 되기도 배움이 되기도 합니다. 아픔은 환상이었고, 두려움 또한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합니다. 과거라는 필름은 서랍 속에 존재하지만 실제로 영화가 상영되는 장면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뿐입니다.



현재 깊은 어둠을 겪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나의 경험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통을 지나온 뒤에야 우리는 그것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 과정에서 의식은 확장되고, 비로소 우리는 성장의 의미를 체감하게 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원망 대신 "이 경험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로 질문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비로소 각자의 방식으로 그 답에 가까워집니다.



영혼은 필요한 경험을 스스로 선택하고 계획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성장합니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과거가 당신에게 갖는 힘은 지금 이 순간 당신이 결정합니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냅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아픔 따윈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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