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엄마는 어디에 계실까
올해 초, 대청소를 하면서 열 켤레 이상의 신발을 버렸다. 그리고 남아있는 신발을 보면서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신발장을 열어 보고는 올해 새로 산 신발이 일곱 켤레라는 걸 알았다. 꼭 필요해서 산 건 하나도 없었다. 신발을 보고 서있는데 문득, 30년이 넘도록 까맣게 잊고 지냈던 양엄마 생각이 났다. 백화점에서 아주 비싼 신발을 나에게 사주셨던 통이 큰 양엄마는 대체 어디에 계신걸까.
엄마와 같은 계모임을 하시던 그 분은 동네에서 꽤나 유명하셨다. 큰 아들은 전교 회장을 한 적이 있고, 본인은 치맛바람 날리며 학교를 휘젓고 다니셨는데, 어느 날 엄마에게 자기는 아들만 있다고 나를 양딸로 삼으면 안 되겠냐고 하셨단다. 엄마는 나의 의견을 물어 보셨고, 나는 그 집에 팔려가는 것도 아니고,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좋아해주시는 그 아줌마를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 당시 어른들은 나를 다 좋게 봐주셨는데, 그 분은 유독 나를 아끼셨다. 전교 회장 선거에 나갔을 때, 나는 양엄마가 사준 명품 옷과 신발을 착장하고 운동장 단상에 올랐다. 때깔 좋은 모습으로 마이크 앞에서 입을 벌리고 서있는 그 사진은 아직도 내 앨범에 서식 중이다.
양엄마가 살던 집은 마당이 큰 단독주택이었다. 내가 처음 놀러간 날엔 잘 생긴 오빠야 두 명이 나를 친절하게 반겨주었다. 싹싹하지도 않았고 낯을 가리던 그때의 나는 인사만 하고 웃기만 했다. 양엄마는 두 아들에게 얘가 이제부터 너희 동생이라고 잘해주라고 하셨다. 그 오빠야들은 착하다고 소문이 나있어서 그런지 처음 봤는데도 편했다. 맛있는 걸 먹고 놀다가 집에 가서는 엄마 옆에 붙어서 그 집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나는 양엄마가 나에게 잘 사주고 아무리 잘 해줘도 엄마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는데, 어린 나이에도 그 아줌마가 평범하진 않다는 걸 알았던 거 같다.
양엄마는 나에게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남들에게도 돈을 척척 잘 쓰는, 가오가 아주 충만하신 분이었다. 그러다 얼마 안가서 알게 되었다. 그렇게 펑펑 쓰시다가 망해서 한순간에 사라지셨다는 걸. 어디에 있다더라는 소문조차 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양엄마는 내 인생에 갑자기 나타나서 갑자기 증발하셨다. 많이 어렸는데다, 정을 쌓을 만큼의 시간을 보내지도 않아서 그런지, 그 일에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단지, 아무리 돈이 넘쳐흘러도 과소비하는 습관을 못 버리면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필요한 게 없을수록 신과 가까워진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었는데 언제부터인지 그와 무관한 삶을 살고 있다. 양치할 때도 칫솔 하나면 충분했지만 이제는 필요한 게 여덟 가지나 되어버렸다. 거기다 두 집 살림까지 하다 보니 딸린 물건이 너무 많다. 사실 팬티도 석 장이면 되고, 양말도 모자도 안경도 많이 있을 필요가 없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면 잔뜩 쌓여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버리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꼭 필요한 것만 사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생각없이 살다보면 삶에 군더더기가 붙게 된다. 정신이 맑아지려면 매순간 깨어있는 자세로 가볍고 소박하게 살아야된다. 그래서 다시 도전해본다. 미니멀 라이프를 목표가 아닌 과정으로 여기고, 말도 행동도 간결하고 말끔하게 해야겠다. 신에 가까이 가려는 것보다 아예 신이 되는 게 더 낫겠다. 신 정리하다가 양엄마가 생각나고 신이 되고 싶단 생각까지 하게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