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랫가락 차차차
간만에 나를 보신 부모님의 첫마디는 너무 까맣다였다. 일광욕에 미친 나는 그 말을 들으니 괜히 뿌듯해졌다. 나는 주먹으로 아빠 가슴을 때렸고 아빠의 근육은 여전히 돌덩어리 같았다. 엄지척을 하니 아이처럼 웃으신다. 엄마는 주방에서 음식하고 전화받느라 차분히 얘기할 새도 없다. 인기쟁이라 늘 바쁘시다. 내 방은 냉장고들이랑 식료품들 창고로, 작은언니 방은 청소용품이랑 가전 제품 창고로, 큰언니 방은 옷방이 되어버려서, 나는 큰방, 거실, 주방으로 서성거리다가 밖에 널어둔 밤을 가지고 들어오라는 말씀에 마당으로 나갔다. 볕이 좋아서 반팔티를 어깨까지 올리고 앉아있는데 엄마가 그만 좀 태우고 들어오라고 머라카셨다. 나는 5분만요라고 답하고 알람을 맞췄다.
모든 게 평화로웠던 그 순간, 어릴 적 명절이 생각났다. 할매집엔 아주 커다란 마당이 있었고 거기에는 명절만 되면 수십명의 친척들로 북적였다. 관광버스를 갖고 계시던 친척 아재는 가라오케 반주기와 커다란 앰프 두 대를 늘 챙겨오셨다. 제일 웃긴 멜빵 삼촌은 철로 된 대야를 두드리고 숙모들은 노래하고 춤을 췄다. 애어른 할 것없이 모두가 무슨 사이비 신도들처럼 방방 뛰었다. 다들 유흥이란 이런 것이다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숨도 안쉬고 몸을 움직여댔다. 지나가던 낯선 사람들도 들어와서 술마시고 놀다가 가곤 했다. 나는 어른들이 자주 부르던 노래를 저절로 외우게 되었고 훗날 학교 행사만 하면 그 곡들을 전교생 앞에 차례대로 선보이곤 했다.
어린 시절의 그 추억은 떠올릴 때마다 나를 감사하게 만든다. 그런 기억이 유쾌하고 즐거운 인생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날에 태어난 내 친구는 예술적 철학적 감수성은 나와 많이 닮았었지만, 드러나는 성격은 완전히 달랐는데, 내가 자라온 그 환경이 준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유머가 있고 잘 노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심각하고 화가 나는 일에도 가볍고 쉽게 털어버리고, 분위기를 말랑하게 만드는 재주는 고해라는 인생에 잠식되지 않게 해주는 튜브와도 같으니 말이다.
나는 오래 전 ‘논다’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논다라고 하면 땀 흘리며 춤을 추는 것,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것이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바카라 읽으며 논다, 운동하며 논다라는 말도 잘 하던 나에게는 그것들도 하나의 놀이였다. 그렇게 생각을 확장해보니 사유도 노는 것이고, 글쓰는 것도 노는 것이며, 운전하는 것도 노는 것이었다. 그래서 논다는 것은 즐기는 것과 같은 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즐거움은 생동감이고, 즐겁지 못한 것은 무기력이며, 무기력은 죽은 상태와도 같다. 그래서 사람은 놀기를 멈출 때 죽음과 가까워진다고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여행도 다리 떨릴 때 하지말고 가슴 떨릴 때 하라고 했듯이 놀기를 미뤄서는 안된다. 젊을 때는 젊을 때만 즐길 수 있는 일이 있고, 늙어서는 그 때의 일이 따로 있다. 가무를 하면서도 즐겁지 않다면 노는 게 아닐 것이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는 우리는 신나게 놀 수 있다. 잘 노는 데 필요한 조건은 즐기겠다는 마음 하나로 충분하다. 멋진 인생이란 잘 노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이번 주도 실컷 놀고 많이 웃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