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표현 방식
아주 오래 전, 나는 자주 보던 친구A에게 나의 다른 친구B를 소개하며 같이 논 적이 있었다. 어느 날 B가 나에게 전화를 했는데 A가 자기에게 전화를 너무 자주 한다며, 친한 줄 아는가 보다, 귀찮다고 말을 했다. A는 평소 나와 다른 친구들에게도 전화를 자주 하는 애였기에, 가 원래 얘기하는 거 좋아해서 그렇다고, 니가 불편하면 내가 잘 말해 보겠다고 말하고 끊었다.
B가 직접 말하기 어려워해서 나는 A에게 그 말을 전했는데, A는 무안했는지 갑자기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더니 나중엔 나에게 왜 그 말을 전달하냐고 화살을 돌렸다. A는 사실보다는 자기 기분 나쁜 것에만 초점을 두고 있었다. 나같으면, 나만 바보될 뻔했다, 빨리 알려줘서 고맙다, 조심해야겠다고 말할 거 같은데, 나를 마치 중간에서 이간질한 사람처럼 말하는 것 같아서 순간 열이 뻗쳤다. 그 시절 내 성격은 개차반이어서 바로 쌍욕을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만약 내가 알면서도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 배신감이 더 클 거 같아서 한 말이었는데, 그런 반응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내가 어떻게 해야하나 싶기도 했다. 사실 내가 나서지 않고 B한테 A에게 직접 말해라고 하고 냅두면 되는데, 그 쉬운 일이 그 어릴 때는 애매하고 의문스러운 문제로 여겨졌다.
나는 그 뒤로도 A같은 사람을 종종 보면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게 약이라고 생각하고 산다는 걸 알았다. 어떤 사실을 알게 되면 마음이 불편해지니 아예 귀막고 몰라몰라 하는 사람. 암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곧 죽는 거 마냥 짐부터 싸는 사람. 상대가 바람을 피는 거 같은데도 굳이 외면해보려는 사람. 좋다는 건 신나게 하면서 나쁜 걸 말해주면 괜히 들어서 찝찝하다고 하는 사람. 그들에겐, 사실을 모르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원효의 해골물처럼, 알고 나면 그 생각과 감정이 자신을 지배해버리기 때문에 굳이 파내서 뒤져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듣기 전과 들은 후는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고, 플라시보처럼 믿음이 현실을 만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이 모르고 싶어 하는 것은 좋은 기분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 보호 방식이라고 봐야한다.
사실, 능력만 된다면 모든 걸 다 알고 싶어하는 내가 그런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지난 달 친구와의 대화에서 내가 놓친 게 있다는 걸 알았고, 사람의 성향을 미리 알아서 그에 맞게 말해주는 게 좋겠다는 걸 알았다. 나는, 알아서 받는 충격보다 몰라서 겪게 되는 고통이 더 싫기 때문에 진실, 현실 직시 같은 단어를 좋아한다. 문제도 제대로 알고 분석해야 빨리 해결하고, 정바카라이나 계획, 추세, 전망은 미리 알아서 대비하고, 유행하고 선동한다고 정신 팔지 않고 항상 그 이면까지 살피면서 행동하는 것. 이것은 아는 것이 힘이라고 생각하는 나같은 사람들의 자기 보호 방식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겁이 없다면 보호를 할 필요도 없다. 보호를 한다는 것은 겁이 나기 때문이다. 모르고 싶은 것도, 알고 싶은 것도 그 심리의 저변에는 모두 똑같이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출발선은 같고 그 표현 방식만 다른 뿐이다. 그래서 모르는 게 약이 맞다거나, 아는 게 힘이 맞다고 우겨댈 수가 없다. 몰라서 생기는 장단점과 알아서 생기는 장단점은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우리는 그저 나약한 존재로서 각자가 가진 그 두려움을 자신에게 더 맞는 방식으로 극복하며 살면 된다. 그리고 상대의 방식도 인정하고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