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팔지꼰
연애만 하면 무시당하면서도 떠나지를 못하는 사람,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이직을 못하는 사람, 맞고 살면서도 이혼을 못하는 사람, 자식에게 계속 돈이 뜯기는 사람 등 둘러보면 어째 저마이 미련스러울까 싶은 사람들이 있다. 주위에서 아무리 뜯어말려도 그들의 행동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상대만 탓하고 상대가 바뀌기만 바란다. 그들은 소위 착한 사람으로 불리지만 모순적이게도 그 착함의 댓가는 불행이다. 착한 게 아니라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경험이 없어도 상대가 얼추 보이는 촉이 발동 때가 있다. 그 직감은 적중률이 높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섣부르게 단정할 수는 없기에 시간을 들여서 관계를 맺기도 한다. 문제는, 직접 겪고도 또 다시 기대를 하고, 그 사람과 집단에서 못 헤어나오는 것이다. 머리로는 분명 아는데 마음이 잘 안 된다고 하면서 인연을 이어나간다. 실수로 불량품을 샀는데 반품하거나 버리지는 않고 그게 정상품이 되기를 기도하는 모습과도 같다.
이솝우화에는 농부와 뱀 이야기가 있다. 추위에 떨고 있는 뱀을 불쌍히 여겨 구해준 농부가 그 뱀에 물려 죽는다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본성은 쉽게 안 변한다, 악마에게 베푼 자비는 고통으로 돌려받게 된다는 교훈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뻔히 보이는 힘든 길을 기어코 가려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그러면서 자신의 팔자 타령을 늘어 놓는다. 모든 인간에게는 자유의지와 선택이라는 기회와 변수가 있어서 언제든지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기꾼은 귀 얇은 사람을 귀신같이 찾아내고 나르시시스트들은 유약한 사람을 단박에 알아본다. 속이는 사람이 넘쳐나는 이유는 속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구정물에는 파리 모기가 잘 꼬이고, 둔하고 띨빵한 사람은 악한 자들의 먹잇감이 되듯이, 자신의 수준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나고, 자신의 격은 어떤 사람을 상대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모두에게 친절하되 내 공간 안에 누구를 넣을 것인가는 항상 신중해야한다. 살다보면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그 실수를 수정해나갈 선택도 갖고 있다. 어떤 선택이 좋은지, 어떤 인생을 원하는지는 양심과 진심이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