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명할 필요가 없는 이유
사실에 집착하던 나는 잘못 알려진 일만큼은 어떻게든 바로 잡고 싶어 했다. 설령 그 사실이 내 잘못이라도 당당하게 시인하고 사과하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관계가 틀어지든 말든, 상황과 타이밍이 맞든 말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즉각 드러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억울함을 밝히려 하지 말라는 불경 구절은 오랜 시간 나에게 물음표로 남았다. 그런데 그 의문은 나이가 들면서 저절로 풀리게 되었다.
오해받는 일이 너무 잦다고 토로한 A와 B가 있다. 그 둘에겐 공통점이 있는데 말이 너무 많고 그 요점이 분명하지 않아서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오해 제조기들이다. 그런데 나는 A에겐 여러 번 되물어서라도 의도를 파악하려고 하고, B에겐 그러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이유는 A에게 더 기회를 주고 싶고 더 이해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다 그럴 것이다. 그 노력도 상대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소문때문에 오해를 받아서 멀어진 사람에게 연락해서 풀어야겠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나는 굳이 왜 그렇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진짜 자기 사람이라면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도 않고 한쪽 말만 듣고 관계를 끊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일로 인해 그만큼 얕은 관계였음이 드러난 것일 뿐, 그런 사람을 잡겠다고 굳이 해명하는 데 애쓸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면 말이 다르겠지만, 바쁜 일상에서 나를 오해하겠다는 사람을 챙길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사람은 같은 것을 보고도 그릇과 능력과 가치관과 환경과 애정에 따라 받아들이는 인식과 해석이 제각각이다. 그래서 오해도 생기고 거짓이 사실로 둔갑되는 경우도 많은데, 그 때마다 일일이 설명해줘야 하는 사람보다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한결같이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잘해주는 것이 더 이롭고 효율적이다. 진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간 드러날테고, 나를 오해하고 쉽게 멀어진 사람은 내 인연이 아닌 것이다. 잡초까지 세세하게 신경쓰며 살다보면 나를 보고 웃고 있는 다른 꽃의 아름다움을 놓치게 된다. 사람은 상대를 생각하는 만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돈과 시간과 정성은 나에게 노력하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퍼부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