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헤르만 헤세) 서평

원형 이론과 그리스 신화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를 중심으로

bywinterfyellb

그리스 신화 작품 중 하나인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는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안드로이드를 다룬 SF 등 장르 문학에도 중요한 모티브가 된 자아와 사랑에 대한 원형이다. 헤르만 헤세의 이원론적 사유를 담은 작품 ‘지와 사랑’으로도 알려진 대표작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도 이러한 원형은 발견된다.


키프러스에는 피그말리온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젊은 조각가가 살았다. 그는 여성을 증오하여 결혼을 결코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혼신을 다해 만든 조각품은 여자였다. 비록 그가 여자를 혐오했을지언정 그의 작품만큼은 흠결이 없었다. 이상한 운명에 의해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완벽한 조각상을 두고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 사랑이 아무리 깊고 인간적인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또 그것이 아무리 아름다운 조각상이라고 해도 피그말리온은 그 조각상과의 입맞춤이나 정열적인 구애에도 살아있지 않은 사물에게서 반응을 얻을 수는 없었다.


사랑의 여신 비너스는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본 후, 이에 흥미를 느껴 피그말리온의 사랑을 도와주기로 한다. 키프러스의 비너스 축제에서 피그말리온은 그녀의 신전에서 그가 그의 조각품과 같은 여자를 발견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비너스는 그의 요구를 알아차리고 제단 위의 불꽃을 세차게 세 번이라 피워 올려 피그말리온에게 소원을 들어주리라는 표지를 보였다. 이를 보고 좋은 느낌을 받은 피그말리온은 집에 돌아와 여느 때와 같이 조각상에 입맞춤을 하는데, 마침내 조각상의 볼에 홍조가 띄고 피가 돌면서 기적처럼 인간이 되어 그의 입맞춤에 응하게 된다. 조각상이 인간이 된 이후 피그말리온은 그녀의 이름을 갈라테아라 지었다.


정신분석학의 대가 카를 융의 제자인 마리-루이제 폰 프란츠의 <창조 신화>라는 바카라에 따르면 이러한 창조적 인격은 고태적 동일성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고태적 동일성이란 무의식적 정신과 외부 세계 사이에 어떤 차이도 없는, 완벽한 일치를 이루는 상태이다. 그런데 이 동일성의 평화에 모종의 비밀스러운 변화가 일어나 그것이 붕괴되면 정신은 관념이 외적 사실이 아닌 네적 사실임을 받아들이는 “투사”라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런데 창조적인 인격은 이러한 투사적인 과정을 강한 밀도로 겪는 이들로서 창조적 아이디어가 있는데 이를 표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신경증적 위기 혹은 고통을 겪게 된다. 이때 이를 해소하는 방법이 바로 예술인 것이다.


피그말리온의 상황에도 창조적 인격의 이론을 적용시킨다면 그의 신화는 투사라는 과정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먼저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최고의 걸작인 조각상이 여자라는 것과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것이 여자라는 것의 모순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살아있지 않은 조각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이 사랑에 빠지는 그 순간부터 조각상과 현실의 모순이 가지던 묘한 평화가 깨지고 자신의 창조적인 인격이 조각상에 투사됨을 느낀다.


이때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가 피그말리온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점과 사물인 조각상이 사람이 된다는 피그말리온의 조각상 갈라테아가 그러했듯이 예술이란 무의식의 전체성이 의식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생기는 부산물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한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이를 테면 피그말리온의 시점을 1인칭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마리아 브론 수도원에는 특출난 재능과 차가울 정도로 느껴지는 이성을 가진 사변가 나르치스와 순수하고 착하며 정념적인 몽상가 골드문트가 있었다. 모든 것이 나르치스보다 서툰 골드문트는 처음에 나르치스에게 자신을 온전히 투사한다. 그러나 골드문트가 한 소녀와 입맞춤을 한 후에는 그러한 가치관이 무너진다.


골드문트는 그 후로 여성을 혐오하고 입맞춤의 경험을 피하고 감추려는 모습을 보이고 심지어는 이것 때문에 감정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쓰러지는 상황에 이른다. 사실 골드문트의 어머니는 이교도이고 무희였으나 남편의 신앙교육을 빙자한 억압에 시달려 골드문트가 어릴 적에 가출을 하였고 골드문트는 그런 억압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르치스와의 깊은 대화와 쓰러진 후 보인 어머니의 그림자가 다녀간 이후 골드문트느 몽상가적이고 영성적인 모성 원형 신앙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이를 위해 골드문트는 방랑을 시작한다. 하지만 방랑은 어느새 잘생긴 골드문트의 바람기 탓에 여성편력이 되어 간다.


그러다가 어느 수도원에 들렀는데 거기서 골드문트는 무의식중에 자신의 크고 작은 죄를 회개하던 도중 명인 니콜라우스의 성모 마리아 조각상을 보고 엄청난 충격과 영감을 받고 니콜라우스의 견습생이 된다. 니콜라우스의 지도 아래에서 조금 게으른 생활도 하긴 했지만 이내 나르치스를 모델로 한 사도 요한의 조각상을 만들어낸 골드문트는 그 과정에서 자신을 예술에 온전히 내맡기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골드문트가 진정으로 만들고 싶었던 조각상은 그의 삶 속에 늘 그림자를 드리웠던 어머니의 얼굴을, 그가 사랑한 모든 여자들을 합친 그만의 성모 마리아 상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상징과 은유로만 그의 몽상 속에 드러난 어머니는 출생과 죽음을 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이 다시 방항을 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자 하지만 견습생으로서 슬롯인으로 골드문트를 추천하려던 니콜라우스는 골드문트에게 실망하게 되고 그는 방랑이 아닌 방황을 하게 된다.


그때 흑사명이 도지고 혼란스러운 세상 가운데 도덕 관념이 흐릿해지던 시점에 골드문트는 어느 백작부인과 불륜을 하다가 걸리게 되고 교수형이 그에게 선고된다. 그런데 그가 죽음에 처하기 직전 죄를 사하려 온 대속신부는 공교롭게도 나르치스였고 그의 도움을 받아 골드문트는 탈옥에 성공한다.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와 지난 날을 대화하면서 나르치스에게 그만이 겪은 경험과 예술가적 기질을 인정받는다. 골드문트도 피그말리온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여성을 혐오했지만 자신 안에 억압된 콤플렉스와 트라우마 너머의 세상을 보게 된 이후로는 모성적 원형, 즉 아니마적 표상으로서 스스로 살아있는 원동력에 숨 돌릴 새도 없이 이끌리게 된다. 평생 이성에만 의지하면서 수도원에 남았던 나르치스와 달리 골드문트는 방랑 속에서도 자신의 창조적 인격에 충실하려고, 그것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의 비정상적인 도덕관념이나 모순된 인간성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골드문트도 그 비판을 곱씹는다. 언뜻 이성의 감성에 대한 승리 같아보이는 상황이지만 골드문트가 흑사병에 걸리면서 상황은 전복된다.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에게 유언을 남기면서 자신이 정념과 삶이자 죽음의 충동의 화신인 자신의 어머니의 조각상을 만들고 싶어했지만 결국 어머니의 그 표상이 지금까지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하고 죽는다.


그러나 작중에서 골드문트가 유일하게 남긴 작품이 나르치스의 조각상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결국 시간 속에 불멸하는 것은 이성 혹은 아니무스이며 우리의 창조적 인격은 필멸하는 것일까? 이는 나르치스에게 골드문트가 어머니의 상은 자신과 늘 함께 있었다는 말을 떠올리면 다르게 이해된다.


어릴 적 단절된 아니마적 원형에 자신을 투사시켜 그것과 결합하려는 그의 시도는 순환적 혹은 영원회귀적으로 죽음의 순환 아니마적 충동이 자신을 이끌었으며 자신은 단 한 번도 그로부터 떨어진 적이 없음을 깨닫게 한다. 오히려 물질적으로 남겨지는 것은 이성적 표상이지만 시간 그 자체를 이루는 인간의 진정한 영혼은 창조적 인격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