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다리로 땅을 박차고 나가는 힘

빡치는 세상에서 나의 신념을 세우면서 일하고 살아가자

by도그냥
오늘 컨디션이 안좋아서 오후 연차 쓰겠습니다.


점심시간이 코앞인데 나가서 누군가를 흉보며 밥먹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분노가 올라왔다. 이 기획 일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화가 날 때는 언제인가. 그건 주도적임에도 주도할 수 없고, 내 리소스를 퍼부어서 납득되지 않는 남의 '변덕'을 말이 되는 척 뜻이 있는 척 감싸며 프로젝트로 만들어내야할 때가 아닐까.

시간이 소리없이 쌓이고 AI와 신사업이라는 두가지 키워드로 조금은 참아주며 이렇게 해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내 과거의 자비로움이 그 끝을 외치는 순간이었다.


슬랙에 연차에 대한 텍스트를 날려쓰고, 노트북을 닫고, 의자를 박차고 나갔다. 지금 누구라도 적당히 말을 걸었다간 의자도 집어던져 버릴 각오로 밖으로 뛰쳐 나왔다.


날씨가 매우 좋은 판교의 한 공원에서.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삼삼오오 이야기를 해가며 그들만의 스트레스를 풀어날 때. 나는 더위가 머문 벤치에 걸터앉아 이 생각 저 생각을 떠올렸다.

다 부셔버릴까. 다 때려쳐버릴까. 아니면 이걸 어떻게 정상적으로 타개할 것인가. 나는 이 일 아니면 다른 회사에 대안은 없는가 등등


1시간 가량 앉아서 마음을 조금 정리하다가 평소에 가고 싶었지만 사무실과 멀어서 가보지 못한 식당에 혼자 들어갔다. 혈당 스파이크를 방지하는 음식을 판다고 하는데 조용히 입안에 음식을 음미하며 고요함을 느꼈다.

그리고 결론은 하나로 내려졌다.


이제부터는 다시 기본기를 바로잡고 가야된다


AI로 인해 back and force하면서 속도에 많이 양보하고 적당히 결과적인 부분을 더 체크하는 것이 맞다고 여겼던 급진적인 생각에 대해서 나 스스로 깨달음을 많이 얻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프로덕트적인 기술이 열렸다고 해서 모두가 프로덕트적인 기본기가 잡혀 있지 않다는 것이다. 면접에 오는 PO나 프로덕트디자이너들은 그럴싸한 사이드 프로젝트로 바이브코딩을 실행해서 나타나지만 비즈니스적으로 구조화나 목표가 없이 그냥 결과만 만들어내고 기뻐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그보다 한차원 더 문제는 프로덕트나 사용자 경험에 대한 공부나 경험이 부족한 상태로 그저 단편적 아이디어로 바이브코딩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경우다.


내가 머리 끝까지 화가 났던 그 상황들은 그 진취적인 조직 구성에 대한 6개월 만의 반성포인트랄까. 결국 바이브코딩으로 모두의 업무 프로세스를 바꾸고 일하는 경계를 변경하게 만들려면 모두의 프로덕트적 사고방식이 높아져야 한다. 즉흥성도 단편적 아이디어도 아닌 상태가 필요하다.


물론 그럼에도 시대적 흐름에 따라서 전보다 생산성은 훨씬 높아져야 한다. 문서를 AI가 엄청나게 찍어낸다는 것은 그 글들을 읽어보지도 않고 그 내용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지 않고 수많은 레포트를 무작위적으로 양산해 내서 혼란을 가중시켜야 한다는 점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미래의 방향성으로 나아가야 하기에 이 간극에 대해서 인식한 사람이 더 많은 투쟁을 하고 생각을 남겨야 한다.


그래서 결론은, 내 다리로 뚜벅 뚜벅 걸어가야한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성과가 잘 나지 않고 협업 대상자들이 열받게하고 그럴 때 무기력에 빠져봤지 나만 손해다. 부들부들 화가 나서 얼굴이 울그락 붉그락 하는 것도 도움되지 않는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다리 근력운동하듯 허리가 펴지고 둔근에 힘이 들어간 걸음걸이. 내 살 덩어리가 바닥에 터벅터벅 떨어지며 억지로 사무실에 끌려가듯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 조져 버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어깨를 피고 나 자신의 경험과 생각에 대해서 자기 확신을 명확하게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자주이고 독립적인 느낌이 되살아날 때, 그 때 전투력도 똑바로 잡겠다는 의지도 늘어난다. 내 손으로 한글자라도 격식있는 문장을 직접 쓰려고 할 때 나에 대한 확신이 상대방에게도 전해진다. 그게 기세다.

그런 기세와 올바른 신념 역시 결코 잃어서는 안되는 일의 신념이다. 그리고 이게 절대로 도망치지 않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 날 이후 나의 출근은 좀 더 파이팅이 느껴진다. 이 직업을 한동안 더 해먹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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