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부족이 일상인 네살 아들 낳아서 키우는 워킹맘으로 마흔이 되었다. 만나이로 39살이 20일 남았다지만 거기까지 굳이 따질 필요없이 마흔이다. IT 기업의 스타트업 기준으로 사내에서는 제법 나이로는 지지 않게 됐다. 나이로 이겨봤자 바카라임은 많고 권한은 그렇게 많은 건 아니지만.
이 블로그를 처음쓰던 10년전과 나는 얼마나 다를까.
일단 판교라는 1시간반 거리 통근은 정말 힘들다. 예전에는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서서 폰으로 글도 팍팍 썼다면 왕복 1시간이 더 늘어나고 출산후 약해진 몸을 단련하지 못한 죄로 통근길에 체력부족이 훨씬 심하다.
마흔이 되면 아프다더니 나도 올해 계속 이래저래 아픈중이다. 뭐가 이렇게 아픈 곳이 많나 싶게 잔잔하게 아프다. 소화가 안됐다가 두통이 있었다가 근육통이 생겼다가 난리다. 퇴근 후에야 깨작 아이랑 몇시간 보는 주제에 그 시간에 운동을 하겠다는 생각은 직무유기가 아닐까 싶다. 걍 최선을 다해 아이 말이라도 들어준다. 그래도 지쳐서 앉아있는 것도 여전히 직무유기다.
아이가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매일 웃지만 내가 출퇴근하고 돌아오는걸 당연하게 여겨주는 네살박이에게 고마울 뿐이다.
올초에는 양가 부모님들이 편찮으시면서 마흔을 실감하게 됐다. 아래로는 자녀의 안전과 성장과 교육. 위로는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40대의 주요 고민이 나에게도 다가왔다. 보상을 중심으로 기업을 쫓아다니지 못하는 성격에 일의 가치를 따져온 젊은이는 눈앞에 놓은 현실장벽에서 소박한 연봉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그렇다고 내가 연봉만 따졌다면 나는 과연 행복했을까? 우리 부부 둘다 주식투자 부동산투자도 못하는 그냥 소심한 사람들이라는 게 딱 이런 시기에는 같이 한숨쉰다
갑작스런 가족들의 건강문제는 스스로에게도 걱정을 자꾸 가져온다.
혹시 내가/남편이 큰 병에 걸리면 어쩌지?
그런 마음이 한번씩 괴롭히고 내 쪼꼬미의 웃음을 지켜주고 싶다.
마흔이 되고 부모가 되고 변화는 더 있다. 과거에 좋아하던 좀비영화나 눈물 나오는 꼬꼬무를 더 이상 못보겠다. 아이가 다치거나 잘못된 뉴스를 보면 악몽처럼 느껴져서 귀를 막게 된다. 지킬 것이 많아진 나이에 과거의 강건너 불구경으로 드러내던 나의 연민과 중립성은 이제 다르게 느껴진다. 아이들은 그만큼 소중하고 생명의 가치는 게임이나 영화에서 픽픽 나올 것이 아닌것 같다.
회사에서는 주인공이 되어 인정받고 싶고 욕먹기 싫고 그런 마음이 줄어들었다. 모두가 즐겁게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좀 더 모두가 하고 싶게 만들고 싶다. 앞에서 연봉을 후회하고 인정욕구가 줄었다니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그렇다고 대충하진 않는다. 대충하기엔 아는 바가 너무 많아서 휴리스틱이 크게 작동한다.
어제 회사 동료 2명이 나에게 어떻게 항상 웃냐고 말했다. 웃상이라 그렇지 싶다가도 내가 이 일이 재밌으니 스트레스 받아도 웃으면서 끌고 가려는게 아닐까 싶었다. 아이에게도 한번 더 웃어주는 엄마가 되어야할텐데 충분히 웃어주고 있는걸까? 마흔의 워킹맘은 이제서야 워라밸의 진정한 의미를 고민한다.
모든 것에 감사한다. 인간은 정말 어미의 젖조차 찾아서 구분할 능력없이 아무 능력없이 태어난다. 100일이 지나고 손가락 발가락 보며 신기해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만큼 40년을 살아온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일인가. 특정한 관심사에 그래도 아는 척 관심을 갖고 지식을 말하고 경험이 있다는 것도 감사한일이다.
밤에 뻗어버려서 자꾸 약속을 못지키고 지나가는 기고들도 많다. 내가 다 타서 녹아버리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래도 웃어야지 그래도 기준을 낯추진 말아야지. 나답게 살아야지.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내 팔을 두드려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