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심리학이 알려준 어제 개발 요청 회의가 실패한 이유

논리가 완벽했는데 왜 모두가 일하기 싫어졌을까

by도그냥

그 회의, 다들 한 번쯤 겪어봤을 것이다.

현업은 요청 배경을 완벽하게 설명했다. 데이터도 붙였고, 경쟁사 사례도 준비했다. 개발팀은 시스템 구조상 왜 어려운지를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아키텍처 다이어그램까지 띄웠다. 양쪽 모두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회의는 실패했다.


결론 없이 끝났거나, 어느 한쪽이 마지못해 "네, 알겠습니다"를 뱉으며 끝났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그 "알겠습니다"는 아무것도 알겠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다음 스프린트에서 같은 싸움이 정확히 같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실패한 회의의 대가는 그 자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실행은 눈에 띄게 더뎌진다. 다들 기분이 상해 있어서, 사소한 확인 하나에도 벽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목표에 대한 열의를 다시 끌어올리기가 힘들다. 회의는 원래 일을 굴러가게 하려고 하는 것인데, 실패한 회의는 정확히 그 반대로 — 일의 속도와 관계의 온도와 목표를 향한 마음을 한꺼번에 깎아 먹는다.


왜일까. 논리에 구멍이 있었나? 아니다. 문제는 논리가 아니었다.


최근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말하지 않고 말하기』를 읽고, 내가 운영하는 트레바리 독서모임 <본질을 아는 기획>에서 네 시간 동안 이 얘기를 나눴는데, 15년 넘게 겪어온 '실패하는 개발 요청 회의'의 구조가 처음으로 언어화되는 경험을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다.

소통의 실패는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다. 그리고 그 관계의 핵심에는 '감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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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의실에서 매일 재연되는 헤겔의 인정투쟁

김정운은 이 바카라에서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끌어온다. 요약하면 이렇다. 두 자아가 만나면 서로 우월한 존재로 인정받으려 투쟁하고, 그 결과 주인과 노예로 분화된다. 그런데 역설이 발생한다. 주인이 노예에게서 받아내는 인정은 강요된 인정이라 아무 가치가 없다. 이긴 쪽이 정작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게임.


이 구조가 낯설지 않다면, 당신은 요청 회의를 해본 사람이다.


현업이 도메인 지식과 매출 임팩트로 누르면 개발팀이 노예가 된다. 개발팀이 "그건 정바카라상, 구조상 불가합니다"라는 프로세스 권력으로 누르면 현업이 노예가 된다. 역할은 고정이 아니다. 회의마다, 안건마다 주인과 노예가 뒤바뀐다. 그리고 헤겔이 예언한 대로 — 눌러서 받아낸 "알겠습니다"는 공허하다. 강제된 인정은 축적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매번 제로에서 다시 싸운다. 시지프스처럼.


여기서 중요한 건, 이 투쟁이 나쁜 사람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양쪽 다 논리적으로 옳고,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확신할수록 투쟁은 격해진다. 내가 옳다고 확신하는 순간, 상대는 설득의 파트너가 아니라 계몽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몽의 대상이 된 상대는 정확하게 그 무시를 감지한다. 논리가 완벽할수록 회의가 험악해지는 역설은 여기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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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커머스에서 일하는 서비스기획자,PM. PO 여러가지로 불리며 엄마이자 아내이기도 합니다. 거창한 방법론이 아닌, 현실에서 일하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말과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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