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4.월

5월 이창진 신부님 일정을 따라서, 그 첫 시작

by윈디

삼성산 성지에 다녀왔습니다.

현재 돈암동 협력사제로 계시는 이창진 신부님이 삼성산 성지에서 사목하실 때,어떤 단체 입회 추천서를 받으러 갔던 곳입니다.

그때 신부님께서는 사제관에서 식사를 챙겨주셨고,저는 귀한 성물도 받아왔습니다.그 후로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올해 5월에는 많은 일을 잡지 않았습니다.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여러 가지였습니다.

서명숙 이사장님을 기리는 올레길을 걸어볼까,마음에 담고 있는 영산강 줄기를 따라 걸어볼까,이런 마음 사이에서 이창진 신부님의 5월 일정을 따라보기로 했습니다.

받은 5월의 첫 일정 중 처음은 삼성산 성지였습니다.

가서야 알았지만 매월 첫 월요일을 찬양과 미사, 묵주기도와 함께하는 ‘메주고리예 성시간’이었고, 신부님께서 강의와 미사를 집전하시는 월1회 정기 일정이었습니다. 신부님이 알려주셨던 일정대로 1시 40분까지 갔습니다.곧 성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울지 않아도 되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천만에, 그동안 매번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던 실패들이 서러워 울었습니다.

저는 20대 초부터 성소모임을 다니며 수도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처음 갔던 광주 본원의 수녀원에서는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입회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포기하고 살다가 나도 남을 돕고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26세에 처음으로 대학 문을 두드려 간호학과에 입학했지만,첫 해부학 수업 후 자퇴했습니다.

그 후로 30대 초반까지 거의 취미생활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을 일부러 멀리 한 것은 아니었지만 주말이면 모여 놀다가 일요일 아침 해가 뜰 때 헤어지는 날도 많았기에 성당에 갈 수 없었습니다.

자전거, 살사, 와인, 골프로 이어지는 취미생활이었습니다.

33세부터 우울이 심해진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대치동 쪽을 걷다가 20대 때 논현동 본당 보좌신부님이셨던 분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당시 사목하시던 대치3동 성가대에 저를 입단시켰습니다. 다시 성당에 나간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휘자님의 보살핌 속에서 1년 반 동안 화요일 연습과 주말 성가대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지만, 남들이 모르는 우울감이 커져 집 근처 성당을 다니겠다는 핑계로 그만두었습니다.

논현동 성당에서 매일 아침 미사를 드리고 7시까지 출근했습니다.

또 성소의 불이 지펴졌지만 입회 허락을 받게 되면 제 문제들이 저를 괴롭혀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논현동 밤 9시 미사 성가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창진 신부님이 부주임 신부님으로 오셨습니다.첫 교중미사에서 사목회장님이 신부님을 소개할 때 ‘만세’를 부르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 세 분의 신부님이 아침 미사를 돌아가며 집전하셨는데, 이창진 신부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하는 저에게 말을 건네시곤 하셨습니다. 기억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어떻게 매일 미사를 나오니?”

“그냥 눈이 떠져버려요.”

“그것도 은총이다.”


또 한 번은

“성령세미나 한 번 다녀오면 좋겠다.”

“그런 거 제일 싫어해요.”


신부님께서는 성가대 회식도 마련해 주시고,선물 받으신 와인도 나누어 주셨습니다.그런 일상에서는 아무렇지 않으면서도 미사 때 복음 말씀만 들으면 눈물이 흘러 멈추질 않았습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나날이었습니다.

저는 조금도 우울한 기색을 내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위장하던 때였지만 그럼에도 몇 년 동안 계속해 온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묵주의 9일기도였습니다.

술 마시고 돌아온 날에는 절하며 기도했고,그마저 하지 못한 날에는 다음 날 두 배로 기도했습니다.

당시 어린 둘째 조카는 제가 집에 들어오면 초를 가지고 오며“수나 이모, 빨리 기도해.”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우울이 극에 달해 죽고 싶었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이해되었습니다.

매일 와인 한 병을 마셔야 잠이 들었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눈이 떠져 다시 미사에 나갔습니다.

어느 날 심한 꿈에 시달려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아침 미사를 드리지 못해 그날 저녁 미사에 갔습니다.

미사 중 복음 말씀이 제 마음에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에게 특별히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눈물이 계속 흘렀고 미사가 끝났지만 일어설 수 없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말했습니다.

“자매님, 기도하러 가시겠어요?”

저는 지금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릅니다.이후 아무리 알아보려 해도 알 수 없었습니다.그 목소리를 따라 처음 가보는 지하 소성전으로 내려갔습니다.성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본당 성령기도회 ‘성모의 밤’ 이었습니다.

맨 앞자리까지 가서 앉은 것도 이상한 날이었습니다.

꽃과 초를 봉헌하려고 맨 앞에 섰는데 슬롯자가 봉사자들을 모두 불러 기도해 주었습니다. 부축을 받고 자리에 돌아와 엎드린 채, 구석에 웅크려 있는 저를 응급처치하듯 빛으로 쏘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 후 저는 하느님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아욱실리움을 추천받았습니다.서울에서 모임을 갖고 나중에 교구를 옮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결국 또 갈림길에서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어느 수녀원에서는 큰 환대를 받았지만 막내 수녀님 혼자 너무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제 앞날이 보이는 것 같아 포기했습니다.

40대 까지도 마지막으로 한 단체에 잠시 발을 들였지만 제게 그곳은 너무도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그 후 저는 하느님과 멀어졌습니다.

결국 이 모든 길을 돌고돌아 더 많은 후회를 높이 쌓았습니다.이제는 더 이상 후회하고 싶지 않습니다.이 지상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창진 신부님은 논현동 본당에 딱 1년 계시다 떠나셨습니다.

성령기도회 싫다고 말했던 저는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이렇게 '가난한 마음과 초라한 모습'으로 삼성산 성지 메주고리예 성시간에 매월 참여하기로 다짐합니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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