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미술은 자본주의, 기술, 생태, 젠더, 탈식민주의 등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다룬다. 그렇기에 작품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작가들이 공유하는 개념과 문제의식을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번 글에서는 그 가운데 ‘탈식민주의’와 관련된 네 가지 핵심 키워드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개념들을 알고 전시장을 찾는다면, 익숙했던 작품도 전혀 다른 시선으로 읽히기 시작할 것이다.
먼저 동시대미술(contemporary art)이 무엇인지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먼저 현대미술과 동시대미술은 차이가 있다. 연대기적으로 보면 1945년 이후의 미술을 현대미술, 1989년 이후에 나타난 미술을 동시대미술로 볼 수 있기는 하지만, ‘동시대성’은 좀더 복잡한 뉘앙스를 띤다.
영어로 동시대(contemporary)는 “같은 시대, 세대, 혹은 기간에 속하는”, “함께 살아있는, 존재하는, 발생하는”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현대미술이 ‘새로움(new)’을 기대하는 것에 가깝다면, 동시대미술은 ‘공존’의 의미가 훨씬 두드러진다. 이는 영어 표현에서처럼 ‘함께’라는 관계적 속성을 내포한다.
그렇기에 동시대미술은 가장 최근의, 현시점의, 혹은 당대의 미술이라는 연대기적 관점에서 바라보기보다 ‘다중적 시간성의 공존’이라는 속성에 주목하는 것이 좀더 정확한 이해에 가깝다.
동시대미술이 갖는 ‘동시대성’은 후기식민주의적 관점에서 광범위하게 논의되고 있다. 후기식민주의는 식민주의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지속되는 식민지의 영향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뜻한다. 1970년대 이후 영미권을 중심으로 등장한 개념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바카라이 대표적이다. 사이드는 이 바카라에서 서양이 동양을 미개하고 수동적인 타자로 재현하면서 서구 자신을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주체로 구성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동양’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는 서양을 중심으로 했을 때 성립하는 단어다. 하지만 식민주의 시대가 끝나고 세계화가 진행된 이후에도 여전히 이러한 지정학적 배치는 유효하다. 그럼에도 세계화 이후 우리는 중심과 주변, 글로벌과 로컬, 민족과 개인, 초국가성과 이주 같은 이분법을 직시하게 되었다. 첫 번째 키워드로 꼽은 ‘후기식민적 성좌’란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 사이의 얽히고설킨 권력의 배열을 의미한다.
‘성좌(konstellation)’라는 말도 미술계에서 자주 쓰인다. ‘성좌’는 발터 벤야민의 개념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는 역사가 일직선이 아닌,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서로 떨어져 있는 요소들이 찰나의 순간에 서로 연결되어 의미를 드러내는 독특한 사유 방식을 이야기했다. 벤야민은 예술 작품에 대해서도 지나간 과거의 것이 현재의 것과 함께 섬광처럼 드러나며 하나의 성좌를 이루듯이 연속적인 관계를 통해 통합적으로 형상화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후기식민적 성좌’라는 단어가 어떤 뜻인지 유추해보자. 여전히 우리는 지정학적 힘과 서구 모더니즘의 유산에 영향을 받아 이분법적 가치를 통해 편향될 수 있기에, 이 복잡한 성좌를 드러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지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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