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미술에서 ‘트라우마’와 ‘기억’을 가장 강렬한 방식으로 다루는 작가를 꼽으라면 시오타 치하루(Shiota Chiharu, 1972-)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작업에는 낡은 침대와 의자, 신발과 옷, 여행가방 같은 평범한 사물들이 등장하지만, 그것들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과 부재를 환기하는 매개체가 된다. 실로 연결된 거대한 설치 공간 속에서 관객은 자신의 기억과도 마주하게 된다.
시오타는 자신의 유년 시절이 전반적으로 음울하고 쓸쓸하고 외롭고 음울한 정서로 점철되어 있었다고 회고한다. 작가는 유년기 시절 가족의 묘에서 감지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 두 번의 암 투병으로 인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겪은 비애의 정서를 표현한다.
시오타는 1972년 일본 오사카에서 생선 상자 제조 공장을 운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 시기는 일본이 고도 경제 성장을 달성한 때로, 부모님 공장도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매일 1천 개의 상자를 생산했다고 한다. 간혹 급하게 주문을 받는 날이면 시오타와 그녀의 두 오빠까지 공장 현장에 동원돼 밤 11시까지 남아 나무 상자를 만들었다.
“나는 마치 기계 같았다. 온종일 그저 한 가지 일을 반복해서 할 뿐이었다. 이때 발생하는 기계의 윙윙거리는 소음과 공장의 시스템이, 그리고 이런 부모가 싫었다.”
- 시오타 치하루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광란(frantic)”이었다고 표현한 바 있다. ‘광란’이라는 단어에서 공장 환경이 그에게 불안을 유발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불안을 느끼지만, 사실 불안은 특정한 대상이나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는 두려운 감정을 지칭한다. 자신에게 닥칠 위험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미래의 가능성으로 존재하고 있어 자기 안전이 깨어질 것이라는 두려운 마음이 바로 불안이다.
하지만 실제로 ‘불안’은 불안은 정신적인 고통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성장하기 위한 원동력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시오타도 이러한 불안을 느끼며 자신의 삶에서 더 영적으로 만족스러운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피어올랐다고 회고한다.
그는 매주 일요일 신문 속 이미지를 모아서 앨범에 붙여두고, 미술관에 자주 들러 화가로 성장하길 꿈꿨다. 자신이 처한 규격화된 일상과 달리 미술이 지닌 힘과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영적으로 풍요롭고 성숙을 이루는 삶을 동경하게 된 것이다.
시오타는 교토 세이카 대학에서 1학년 때까지는 회화를 전공했지만, 이내 곧 회화로는 표현을 하는 데 한계를 느껴 ‘스스로 작품이 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때 발표한 작업이 <회화가 되어가는 과정>인데, 몸에 애나멜을 칠하고 벽에 걸린 캔버스를 가로지르고 서서 퍼포먼스를 하는 작업이다. 그는 작품의 형식에 제한을 두지 않았으며, 회화를 벗어나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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