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니 빌뇌브의 2021년 영화 〈듄〉의 아침 식탁에는 물컵 하나가 놓여 있다. 폴은 어머니에게 물을 달라고 하고, 제시카는 직접 자신을 움직여 보라고 한다. 막 잠에서 깬 아들에게 건네는 평범한 부탁 같았던 말이 훈련의 시작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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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이 집중해 목소리를 내자 제시카의 손이 컵을 향한다. 그러나 끝까지 건네지는 않는다. 제시카는 움직임을 멈추고, 폴에게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뜻을 전한다.
이 짧은 장면의 이상함은 컵이 공중을 날지 않는 데 있다. 움직이는 것은 어머니의 손이다. 물건을 옮기는 대신 물건을 옮길 사람의 의지를 건너뛴다. 초능력의 크기를 과시할 거대한 폭발 없이도, 타인의 몸에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인지가 보인다.
평소에는 누군가 물을 건네주면 부탁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이 식탁에서는 그 간단한 연결이 흔들린다. 손이 움직였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동의했다고 말할 수 없다.
〈듄〉의 보이스는 목청이 좋다는 뜻이 아니다. 폴이 익혀야 하는 것은 상대를 향해 특정한 방식으로 힘을 행사하는 기술이다. 같은 내용을 말해도 평범한 요청일 때와 보이스가 실릴 때의 효과는 다르다.
영화는 그 차이를 소리와 반응 사이에 둔다. 목소리의 질감이 달라지고, 상대의 몸이 반응하는 짧은 순간이 붙는다. 관객은 긴 설명을 듣기 전에 무언가 자신의 귀에도 끼어든 것 같은 낯선 감각을 받는다. 시각적으로 평범한 식탁에, 평범하지 않은 복종이 잠깐 들어오는 것이다.
제시카가 훈련을 받아 주는 어머니라는 점도 재미있다. 이 장면에는 서로 아는 사람 사이의 안전한 연습이라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면서도 연습하는 내용 자체는 타인의 거절을 무력하게 만드는 힘이다. 친밀한 관계가 능력의 성격을 부드럽게 보여 주지만, 그 능력이 다른 관계에서 쓰일 때의 불편함까지 없애지는 않는다.
폴의 시도가 완벽하게 성공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목소리만 내면 누구나 똑같이 무너지는 단순한 버튼으로 소개되지 않는다. 숙련도와 상대의 저항이 보이므로, 이후 누가 누구에게 명령하는지뿐 아니라 명령이 실제로 닿았는지에도 긴장이 생긴다.
드라마 〈제시카 존스〉의 킬그레이브는 이 능력을 일상 속의 폭력으로 가져온다. 그의 명령을 들은 사람은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도록 강제된다. 겉에서 보면 그 사람이 직접 걸어가고 직접 손을 움직인다. 명령하는 사람은 손 하나 대지 않고도 결과를 만든다.
트리시가 자신을 해치라는 명령을 받는 장면에서 이 강제는 특히 선명하다. 제시카가 당장의 위험을 막아도 트리시는 멈추지 않는다. 명령한 사람이 눈앞에서 사라지거나 수단 하나를 치웠다고 해서, 남은 사람이 자기 몸의 주인이 되지는 않는다.
제시카는 트리시에게 명령을 이미 이행했다는 다른 해석을 받아들이게 해 위기를 끊는다. 머리 안에 탄환을 넣으라는 말을, 입 안에 탄환이 들어갔다는 사실로 충족시켰다고 납득시키는 것이다. 장면의 초점은 더 강한 명령으로 친구를 제압하는 데 있지 않다. 친구를 붙잡고 그 말에서 빠져나올 틈을 함께 찾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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