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잠자는 드래곤의 콧털을 뽑는 자

by김동은WhtDrgon

용을 건드리는 사람 Bullying a Dragon:

위험한 능력을 알고도 상대를 괴롭히거나 도발하여 감당하기 어려운 반응을 부르는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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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줄 알면서도 왜 그 사람을 건드릴까

금지 규칙, 경영자의 말투, 영웅의 인내를 믿는 사람들

상대가 강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시비를 거는 장면은 이해하기 쉽다. 잘못 짚은 것이다. 그런데 해리가 마법사인 줄 알면서 그를 괴롭히는 더즐리 가족은 무엇을 믿는 걸까. 사람을 손쉽게 죽일 수 있는 홈랜더를 앞에 두고, 너는 신이 아니라 형편없는 상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또 어떤 계산을 하는 걸까.


힘을 안다는 것과 그 힘이 지금 나에게 향하리라고 믿는 것은 다른 일이다. 누군가는 법을, 누군가는 오랜 관계를, 누군가는 상대의 도덕성을 안전장치로 여긴다. 위험한 사람을 건드리는 인물에게도 대개 나름의 이유가 있다. 관객은 그 이유를 들으며 동시에 안전장치가 언제 끊어질지 기다린다.


마법사를 가둬 놓을 수 있다는 자신감

소설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의 초반, 해리의 학교생활은 더즐리 가족에게 불쾌한 비밀이다. 가족은 마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데도 집에 돌아온 해리의 마법 물건들을 치워 버리고, 중요한 손님이 오는 날에는 없는 사람처럼 지내라고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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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즐리 가족이 늘 같은 정도로 대담한 것은 아니다. 해리가 주문처럼 들리는 말을 하면 두들리는 겁을 먹는다. 힘의 가능성은 이미 가족 안에 들어와 있다. 그래서 해리에게도 말 몇 마디로 사촌을 물러나게 할 작은 여지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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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지를 무너뜨리는 것이 마법부의 편지다. 집요정 도비가 푸딩을 띄우는 마법으로 소동을 일으킨 뒤, 해리는 미성년자의 마법 사용에 관한 경고를 받는다. 버넌은 여기서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를 읽어 낸다. 해리가 마법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밖에서 쓰면 처벌받는다는 사실이다.


창문에 쇠창살이 달리고 해리는 방에 갇힌다. 위험한 능력의 존재를 안 뒤 오히려 괴롭힘이 더 심해진다. 능력 자체보다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독자에게 답답한 것은 해리가 힘이 없어서 꼼짝 못 한다는 점이 아니다. 가진 힘을 쓰면 자신이 더 큰 불이익을 받는다는 점이다.


더즐리 가족은 마법 세계 전체를 통제하지는 못한다. 론과 형제들이 날아다니는 자동차로 찾아와 해리를 꺼내 가면서, 버넌이 이해한 통제의 범위도 드러난다. 한 아이에게 적용되는 금지 규칙이 그 아이를 도와줄 모든 사람의 능력까지 묶지는 못한다. 그는 해리의 제약을 알아냈지만 해리에게 생긴 관계까지 계산하지는 못했다.


가장 센 사람에게 가장 작은 이름을 붙이는 사람

드라마 〈더 보이즈〉의 스탠 에드거는 다른 종류의 계산을 한다. 그는 홈랜더가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는 일반인이 아니다. 초능력자들을 사업으로 관리하는 보우트의 경영자이며, 홈랜더를 영웅의 이미지와 회사의 이해관계 안에서 다뤄 온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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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3의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 에드거는 회사 내 입지를 잃는다. 홈랜더는 이 결과를 즐기며 찾아온다. 보통이라면 힘도 권한도 없는 사람이 패배를 인정해야 할 장면이다. 그러나 에드거는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주지 않는다. 존경도 두려움의 고백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사라진 뒤에는 홈랜더의 실수를 정리해 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홈랜더가 스스로에게 붙이고 싶은 거대한 이름을 아주 작은 말로 바꾼다. 신이 아니라 상품. 그마저도 문제가 있는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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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면이 긴장되는 까닭은 에드거가 육체적으로 홈랜더와 맞설 수 있어서가 아니다. 아무런 힘겨루기가 없어도 관객은 위험을 안다. 에드거가 상대의 자아를 찌르는 말을 계속하는 동안, 홈랜더가 참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화면에 걸린다. 말 한마디의 위험을 상대의 능력과 지금까지의 행적이 뒷받침한다.


다만 장면을 에드거의 완전한 승리라고 읽기도 어렵다. 그의 독설이 회사 내 지위를 되찾아 주지는 않는다. 홈랜더를 다치게 할 수 있는 언어와 홈랜더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은 별개다. 에드거가 마지막까지 지키는 것은 최소한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낮추지는 않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그래서 이 장면에는 유쾌함과 불안이 함께 남는다. 누군가 드디어 홈랜더에게 정확한 말을 해 주었다는 쾌감. 그리고 정확한 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는 아니라는 불안. 에드거가 그 자리에서 보복당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음 사람에게도 같은 방법이 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영웅이 끝까지 참아 줄 것이라는 믿음

게임 〈인저스티스: 갓즈 어몽 어스〉의 출발점은 그 보장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조커는 슈퍼맨의 힘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그 힘보다 영웅의 규칙을 더 믿는 사람이다. 아무리 끔찍한 짓을 해도 영웅은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그의 도발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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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보여 주는 또 다른 세계에서 조커는 슈퍼맨이 로이스를 죽이게 만들고, 메트로폴리스의 파괴까지 불러온다. 붙잡힌 뒤에도 그는 고통을 농담으로 바꾼다. 슈퍼맨이 감당할 수 없는 상실을 겪은 바로 그 지점에서 상대를 더 찌른다.


슈퍼맨은 조커를 죽인다. 힘의 차이를 뒤늦게 깨닫는 악당의 결말만으로 끝났다면 짧은 복수극이었을 것이다. 이 게임은 그 뒤를 이어 간다. 조커를 죽인 슈퍼맨이 세계를 강압적으로 지배하게 되고, 그를 막으려는 배트맨과 다른 영웅들의 싸움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조커는 완전히 졌을까. 몸은 살아남지 못했지만 영웅을 이전과 다른 존재로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다. 자기가 감당하지 못할 힘을 자극한 행동이 가해자 한 사람에게 되돌아오고 끝나지 않는다. 그 힘에 기대어 살던 도시와 동료들까지 결과를 떠안는다.


이 대목에서 강자를 건드리는 장면의 익숙한 통쾌함이 불편해진다. 관객은 잔혹한 도발 뒤의 분노를 이해한다. 그러나 그 분노를 이해하는 것과 이후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작품은 가장 큰 힘을 가진 사람의 인내를 개인 성격 정도로 취급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조건이기도 했음을 보여 준다.


정말 몰랐던 것은 상대의 힘이 아니다

더즐리 가족은 금지 규칙을 믿는다. 에드거는 홈랜더가 듣기 싫어하는 자기 평가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조커는 영웅이 넘지 않으려는 선을 공격한다. 세 경우 모두 상대의 능력은 비밀이 아니다. 불확실한 것은 그 능력을 묶고 있던 것이 얼마나 버텨 줄 것인가다.


이런 장면을 볼 때 도발하는 인물을 무조건 멍청하다고 보면 흥미로운 부분을 놓친다. 그가 믿는 안전장치가 실제로 작동했던 시간, 그 덕분에 익숙해진 말투, 이제는 달라졌는데도 바꾸지 못하는 행동이 있다. 위험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통했던 관계를 계속 믿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 강한 상대에게 한마디 더 하는 순간에는 그 말의 수위만큼이나 상대의 침묵을 보게 된다. 지금까지 참아 왔다는 사실이 이번에도 참는다는 약속은 아니다. 그 침묵이 깨진 뒤에도 이야기는 계속된다. 도발한 사람만 결과를 치르는지, 주변 사람들까지 새로운 세상에 갇히는지가 그다음 질문이다.



함께 읽는 15가지 클리셰와 트롭스

협박의 역풍 — Blackmail Backfire: 비밀로 이익을 얻으려던 협박이 협박한 사람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다크 나이트〉(영화): 루시어스 폭스는 배트맨의 정체로 돈을 요구하는 직원에게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되묻는다.

조롱이 부른 죽음 — Death by Mocking: 상대를 비웃고 자극하는 행동이 죽음으로 이어진다.〈데스노트〉(만화): 라이토는 방송에서 키라를 악이라 부르는 린드 L. 테일러를 죽여 오히려 수사의 단서를 준다.

상대를 잘못 고른 강도 — Mugging the Monster: 범죄자가 정체나 실력을 모른 채 위험한 상대를 피해자로 고른다.〈존 윅〉(영화): 요제프 일당은 은퇴한 킬러인 줄 모르고 존의 차를 훔치고 개를 죽인다.

아이들의 잔혹함 — Kids Are Cruel: 어린 인물들이 순진함과 거리가 먼 잔인한 괴롭힘을 한다.〈8 볼 클라운〉(영화): 아이들이 광대에게 거듭 장난 전화를 걸어 모욕하며 적의를 키운다.

스스로 해내는 순간 — “Can Hold Her Own” Moment: 보호받을 것처럼 보인 여성이 직접 자기 능력을 증명한다.〈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게임): 왕자가 뒤처지지 말라고 하자 파라는 곧 그보다 앞서 달려간다.

건드리면 폭발하는 말 — Berserk Button: 특정한 사소한 자극이 인물을 유난히 격분시킨다.〈공의 경계〉(소설): 아오자키 토우코는 자신이 혐오하는 별칭으로 불리는 일을 극도로 용납하지 않는다.

물러날 때를 알기 — Know When to Fold 'Em: 불리한 승부나 잘못된 목표를 계속 붙잡는 대신 포기를 선택한다.〈세일즈맨의 죽음〉(희곡): 비프는 자신들이 특별한 성공을 약속받았다는 아버지의 꿈에서 벗어나려 한다.

두려움을 모르는 무모함 — Fearless Fool: 위험 앞에서 필요한 경계심까지 갖지 못한다.〈지크프리트〉(오페라): 지크프리트는 두려움 자체를 모르기에 무시무시한 상대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다.

변호사 군단 — Army of Lawyers: 많은 법률 대리인이 상대를 압박하는 힘이 된다.〈사라진 배심원〉(소설): 담배 회사를 둘러싼 재판에서 양쪽은 변호사 조직과 자원을 동원해 다툰다.

할머니를 얕보지 말 것 — Never Mess with Granny: 만만해 보이는 노년 여성이 뜻밖의 강함으로 맞선다.〈블랙 라군〉(만화): 요란다는 교회가 공격받자 황금색 권총을 꺼내 반격한다.

초월적인 존재를 도발하지 말 것 — Do Not Taunt Cthulhu: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존재를 모욕하면 감당할 수 없는 보복을 부른다.〈디도네〉(오페라): 유노는 트로이의 파멸을 배경으로 인간들에게 신을 노하게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잠든 강자를 깨우기 — Awakening the Sleeping Giant: 싸움에서 물러나 있던 강력한 세력을 공격해 참전을 불러온다.〈어쌔신 크리드: 브라더후드〉(게임): 체사레의 몬테리조니 공격은 조용히 지내려던 에치오를 다시 보르자 가문과의 싸움으로 끌어낸다.

겁주기에 실패하기 — Intimidation Failure: 위협적인 말이나 태도가 상대를 물러서게 하지 못한다.〈맥베스〉(희곡): 맥베스가 예언을 믿고 자신은 죽지 않는다고 말하자 맥더프는 그 믿음의 허점을 밝힌다.

뒤늦게 깨달은 위험 — Oh, Crap!: 인물이 자신이나 주변에 닥칠 큰 위험을 갑자기 알아차린다.〈호빗: 스마우그의 폐허〉(영화): 빌보는 분노한 스마우그가 호수마을로 향하자 자신들이 불러낸 결과에 경악한다.

불길한 상대의 웃음 — Ominous Adversarial Amusement: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한 상대의 웃음이 우세에 대한 확신을 흔든다.〈배트맨: 애니메이티드 시리즈〉(애니메이션): 배트맨은 자신을 붙잡은 할리 앞에서 웃으며 조커가 그녀의 승리를 기뻐할지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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