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악당의 패배보다 망신이 기대된다.

by김동은WhtDrgon

굴욕의 콩가 댄스 Humiliation Conga:

줄서서 콩가 댄스로 배깅하듯 패배한 인물에게 여러 곤란이 잇따르며 그가 지키던 권위와 체면을 차례로 무너뜨린다. 단순한 불운의 반복과 인물에게 어울리는 응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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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끝난 뒤 걸려 오는 전화, 말을 듣지 않는 학교, 먹히지 않는 필살기

법정에서 거짓말이 들통난 사람에게 전화가 걸려 온다. 한 통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을 후원하던 사람들이 떠나고, 일하던 곳에서도 해고됐다는 소식이 이어진다. 범행을 부인할 때의 여유는 이미 사라졌는데, 전화벨은 아직 멎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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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역전재판 5〉의 두 번째 사건에는 시장의 비서로 일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영어판 이름은 Florent L’Belle이다. 그는 외모를 치장하고 자신의 가치를 과시하는 데 익숙하다. 법정에서 범행이 밝혀진 뒤에는 화려한 겉모습까지 무너지고, 걸려 오는 전화마다 그가 지키고 싶었던 슬롯적 대접이 하나씩 사라졌음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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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사건의 범인을 밝혔다는 사실만으로 재판의 목표는 달성됐다. 그런데 게임은 이 남자가 자랑하던 것들을 추가로 정리한다. 유죄를 입증하는 증거와 해고 통보는 서로 다른 일을 한다. 앞의 것은 범행을 밝히고, 뒤의 것은 범인이 상상하던 자기 인생이 더는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이 차이 때문에 짧은 전화 장면들이 보너스처럼 느껴질 수 있다. 플레이어는 모순을 찾아 지목하고 거짓 주장을 넘기며 여기까지 왔다. 이제 상대가 다른 핑계를 찾을 때마다 반박해야 했던 시간이 끝나고, 스스로 수습하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패배를 한 문장으로 통보하는 대신 상대가 내세웠던 여러 허세에 차례로 답을 돌려주는 셈이다.


마지막까지 품위 있게 나가려 했지만

J. K. 롤링의 소설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에서 엄브리지는 마법부의 권한을 등에 업고 호그와트의 생활을 통제한다. 학생이 무슨 말을 할 수 있는지, 교사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까지 간섭한다. 해리는 벌을 받는 동안 손등에 상처가 남는 펜으로 문장을 써야 한다. 이 사람이 창피를 당할 때 독자가 무심히 넘기기 어려운 이유가 충분히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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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엄브리지의 권위는 거대한 결투 한 번으로만 무너지지 않는다. 프레드와 조지가 풀어놓은 마법 불꽃은 없애려 할수록 문제를 키우고, 복도에는 휴대용 늪이 생긴다. 명령을 내려 일상을 관리하던 사람이 이제 하루하루 벌어지는 소동을 감당해야 한다. 규정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과 사람들이 그 규정을 따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점점 벌어진다.


쌍둥이는 학교를 떠나면서 말썽꾸러기 폴터가이스트 피브스에게 엄브리지를 계속 괴롭혀 달라고 부탁한다. 소동은 주동자들이 사라졌다고 끝나지 않는다. 엄브리지의 말이 나올 때마다 피브스가 방해하고, 평소라면 말썽을 막아야 할 학교의 질서도 그녀의 편으로 돌아와 주지 않는다. 엄브리지 한 사람과 학생 몇 명의 다툼이 아니라, 그 통치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학교 전체에 퍼졌음을 읽게 된다.


뒤에 금지된 숲에서는 마법부의 직바카라이 켄타우로스들을 복종시키지 못한다. 엄브리지가 학교에서 써먹던 우월감과 명령이 여기서는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다. 학교를 떠날 때마저 조용히 빠져나가지 못한다. 피브스가 지팡이와 분필을 담은 양말로 쫓아가며 마지막 체면까지 망친다.


각각을 떼어 놓으면 불꽃놀이, 말썽, 언쟁, 우스꽝스러운 퇴장이다. 순서대로 읽으면 엄브리지가 의지하던 통제 수단이 줄어드는 과정이 된다. 권한이 있어도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복종을 요구해도 듣는 사람이 줄어들며, 마지막에는 퇴장하는 방식도 고를 수 없다. 같은 사람을 반복해서 넘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을 높게 보이게 하던 방법들을 서로 다르게 무너뜨린다.


소설이라는 매체도 이 누적에 유리하다. 며칠 동안 이어지는 학교의 소동 사이에 해리의 생활과 다른 사건들이 끼어든다. 엄브리지가 잠시 안 보이더라도 다음에 등장하면 새로운 곤란이 기다린다. 짧은 장면 하나의 웃음보다, 이제 학교가 예전처럼 그녀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변화가 오래 남는다.


잘하던 기술이 웃음거리가 될 때

애니메이션 영화 〈쿵푸팬더〉의 타이렁은 실제로 강하다. 탈옥하고, 뛰어난 무술가들을 쓰러뜨리고, 사부 시푸까지 압박한다. 관객은 그가 허풍만 떠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최종 대결을 맞는다. 그의 체면이 깎이는 장면에 힘이 생기는 것도 앞서 확인한 실력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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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렁은 용의 전사로 뽑힌 포를 보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다. 포는 날렵한 무술가의 모습과 거리가 먼 판다이며, 그 몸 때문에 수련 과정에서도 곤란을 겪었다. 하지만 둘의 싸움에서는 타이렁이 익숙한 방법을 고집할수록 뜻밖의 결과가 나온다. 상대를 마비시켰던 급소 공격이 포에게는 예상대로 먹히지 않고, 포는 맞고 굴러가면서도 자기 몸을 이용해 다시 싸운다.


타이렁에게 이것은 상대가 강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불편한 패배다. 자신이 우스워하던 몸과 움직임에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다듬은 기술을 자랑하던 사람이 곤란한 자세에 빠지고, 심각하게 위협하려던 순간이 웃긴 동작으로 바뀐다. 관객은 포가 버티는 것을 응원하면서 타이렁의 자신감이 어디서 삐걱거리는지도 함께 본다.


이때 포의 몸은 단순한 놀림거리에 머물지 않는다. 타이렁이 강함의 조건에서 제외했던 특징이 싸움의 결과를 바꾼다. 그래서 반복되는 우스꽝스러운 충돌이 전투를 멈추는 장식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포가 어떤 전사인지를 알아가는 과정과 타이렁이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과정이 같은 동작 안에서 진행된다.


엄브리지의 실패가 여러 날과 장소에 걸쳐 쌓였다면, 타이렁의 곤란은 움직임의 박자로 이어진다. 한 번의 공격, 예상과 다른 반응, 다시 시도하는 얼굴, 더 우스워진 결과가 빠르게 연결된다. 문장 사이에서 누적되던 권위의 붕괴를 애니메이션은 몸의 탄력과 표정, 잠깐의 정지로 압축한다.


33_차례로 쓰러지는 금빛_목판화_독일표현주의_날카로운흑백면_잉크·목판·금박_트로피도미노.png33_차례로 쓰러지는 금빛_목판화_독일표현주의_날카로운흑백면_잉크·목판·금박_트로피도미노

벌이 늘어나면 재미도 계속 커질까

세 사례에서 망신을 당하는 이유와 잃는 것은 다르다. 법정의 범인은 치장과 슬롯적 대접을, 엄브리지는 복종을 요구하는 권위를, 타이렁은 자신만이 강함을 판별할 수 있다는 확신을 잃는다. 추가되는 곤란이 인물의 욕망과 맞물릴 때, 관객은 단순히 사고가 많은 장면 이상을 보게 된다.


반대로 이미 충분히 패배한 사람에게 관계없는 불행만 보태면 웃음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처음에는 악당을 응원하지 않던 관객도,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 사람을 여럿이 둘러싸고 괴롭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불편해질 수 있다. 악당이라는 이름이 이후의 모든 모욕을 자동으로 흥미롭게 해 주지는 않는다.


장면을 읽을 때는 벌이 몇 번 이어지는지보다 매번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살펴볼 만하다. 새 전화가 이전 전화와 다른 손실을 알리는지, 소동 하나가 명령의 효력을 얼마나 줄이는지, 다음 공격이 상대를 깔보던 판단을 어떻게 뒤집는지 말이다. 패배 뒤에도 볼 일이 남는 까닭은 인물이 지키려는 것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것마저 놓치는 순간, 길게 이어진 소동은 비로소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마지막 장면이 된다.



함께 읽는 15가지 클리셰와 트롭스

내가 선을 넘었음을 깨닫다 — Jerkass Realization: 남에게 못되게 굴던 인물이 자기 행동의 문제를 알아차린다.〈못 말리는 패밀리〉(드라마): 토바이어스는 마이클의 죽은 아내를 들먹인 직후 부적절한 말이었다고 사과한다.

위협이 약한 악당 — Harmless Villain: 거창한 야심에 비해 실제로 끼치는 해악은 작거나 우스꽝스럽다.〈디스크월드: 마지막 영웅〉(소설): 악당 해리 드레드는 직업윤리를 지킨다며 탈출하기 쉬운 감옥과 어리석은 경비를 고른다.

다시 돌아오는 악당 — Joker Immunity: 큰 패배를 겪은 악당도 살아남거나 복귀해 계속 이야기에 등장한다.〈블리치〉(만화): 아이젠은 패배 뒤 죽지 않고 봉인되어 이후 다시 등장할 가능성을 남긴다.

악당의 구체적인 계획 — Evil Plan: 악당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행동의 순서를 짠다.〈알라딘(1992)〉(애니메이션): 자파는 램프를 얻으려던 계획이 틀어지자 공주와 결혼해 왕권을 차지하려 한다.

불필요한 잔혹함 — Kick the Dog: 당장 이득이 없는 잔인한 행동으로 인물의 악의를 드러낸다.〈Twice Charmed〉(뮤지컬): 아나스타샤와 드리젤라는 프랑코가 신데렐라를 작게 만드는 동안 그녀를 괴롭힌다.

구경거리가 된 사람 — Come to Gawk: 누군가의 곤경이나 별난 모습 자체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모인다.〈심슨 가족〉(애니메이션): 해산물 식당 주인은 끝없이 먹는 호머를 손님들이 구경할 수 있는 명물로 내세운다.

자백을 듣게 만드는 함정 — Engineered Public Confession: 상대가 모르는 청중이나 녹음 장치 앞에서 스스로 비밀을 말하게 유도한다.〈몬스터 주식회사〉(애니메이션): 마이크는 워터누즈가 아이를 납치하겠다고 말하는 모습을 훈련 시설에서 녹화한다.

약한 수단으로 거두는 승리 — Cherry Tapping: 보통은 위협적이지 않은 공격이나 도구로 상대를 제압해 격차를 강조한다.〈리딕: 헬리온 최후의 빛〉(영화): 리딕은 자신을 둘러싼 상대에게 찻잔을 무기로 쓰겠다고 한 뒤 실제로 실행한다.

기상천외한 벌 — Cool and Unusual Punishment: 익숙한 매질 대신 엉뚱하거나 독특한 방식으로 고통을 준다.〈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소설): 보곤 선장은 포로들에게 자기 시를 들려준다.

장례에서 드러내는 모욕 — Last Disrespects: 마지막 예의를 갖추어야 할 때 고인에게 노골적으로 적의를 표한다.〈신들의 전쟁〉(소설): 오드리는 남편과 외도했던 로라의 장례에서 로라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바뀐 지배자, 비슷한 방식 — Meet the New Boss: 새로 등장한 권력자가 전임자와 닮은 통치나 행동을 반복한다.〈퓨처라마〉(애니메이션): 파라오가 된 벤더는 옛 지배자의 잔혹함이 끝났다며 자기 방식의 잔혹함을 예고한다.

남의 민망함을 보는 웃음 — Cringe Comedy: 인물이 난처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불편함에서 웃음이 생긴다.〈페르소나 5 더 로열〉(게임): 류지는 방송에 나오지 않으려고 카메라 앞에서 일부러 민망한 말을 하지만 영상은 사용된다.

발을 부여잡고 깡충거리기 — Hurt Foot Hop: 발을 다친 인물이 한쪽 발로 뛰며 통증을 우스꽝스러운 동작으로 표현한다.〈21 점프 스트리트〉(영화): 슈미트는 젠코를 따라 쓰레기통을 걷어찼다가 발을 다쳐 깡충거린다.

같은 상처로 돌려받다 — Karmic Injury: 누군가에게 입힌 것과 닮은 부상을 가해자 자신도 입는다.〈파이널 판타지 VIII〉(게임): 사이퍼가 스퀄의 얼굴에 상처를 내자 스퀄도 그의 얼굴을 베어 되갚는다.

자랑이 부른 곤란 — Boast Backfire: 실력을 자랑한 말 때문에 오히려 증명할 의무나 위험이 생긴다.〈이솝 우화: 허풍쟁이 여행자〉(문학): 로도스에서 대단한 도약을 했다던 여행자는 바로 여기서 뛰어 보라는 요구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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