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갚게 해주려고, 돈을 빌려줬다

나라가 생기기도 전에 진 빚은 누가 갚아야 할까

by서재원

1962년 1월, 전북 군산에 사는 이병주에게 독립공채 세 장이 있었다.

아버지 이인식이 일제강점기에 사들인 채권이었다. 당시 이인식은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공채 세 장을 병에 넣어 선산에 묻었다. 나머지 다섯 장은 가택수색 때 발각될 위험에 처하자 찢어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남은 것은 액면가 1천 원짜리 세 장이었다.


이병주는 정부에 상환을 요구했다. 돈을 받으면 아버지의 묘소에 비석이라도 세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이미 광복한 지 17년이 지났고 대한민국 정부도 수립된 뒤였다. 그런데 독립운동을 위해 빌려준 돈은 여전히 갚아지지 않고 있었다.


이 채권은 어떤 약속으로 발행됐기에 아버지는 땅속에 묻어두고, 아들은 수십 년 뒤까지 간직했던 것일까.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나온다.

임시정부는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한민국원년독립공채'를 발행했다. 이자는 연 5%. 원금은 독립한 뒤 5년째부터 30년 이내에 상환하기로 했다.


상환을 시작하려면 먼저 독립해야 했다.

그런데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장 돈이 필요했다. 정부를 운영하고, 연락망을 유지하고, 사람을 파견하고, 외교활동을 벌이는 데도 비용이 들었다.

임시정부는 독립한 뒤 갚겠다는 약속으로 현재의 자금을 마련하려 했다.

채권을 사는 사람의 돈이, 훗날 그 채권을 갚을 국가를 세우는 일에 쓰이는 구조였다.


그런데 이 공채를 살펴보다가 더 궁금해진 것이 있었다.

독립운동을 도와달라고 하면 될 텐데, 왜 굳이 빚을 졌을까.



돈을 달라고 할 수도 있었는데, 왜 빌렸을까


임시정부는 처음부터 공채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인구세를 걷고 애국금도 모았다. 애국금은 독립운동을 위해 내는 돈이었다. 공채와 달리 원금과 이자를 돌려주겠다는 약속이 붙지 않았다.

그러나 애국금만으로 재정을 충당하기는 어려웠다. 임시정부는 보다 안정적으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공채 발행도 추진했다.


흥미롭게도 미국에서는 이 두 가지 방식을 놓고 갈등까지 벌어졌다.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는 애국금을 모집하고 있었다. 반면 이승만이 이끄는 구미위원부는 독립공채를 판매하려 했다. 양쪽은 자금 모집 방식을 둘러싸고 대립했고, 1920년 임시정부 재무총장 이시영의 훈령과 전보를 거쳐 미주지역의 모집 방식이 공채로 정리됐다.

물론 이것을 기부와 채권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좋은지에 관한 순수한 경제적 논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어느 조직이 독립운동 자금을 관리할 것인지도 중요한 쟁점이었다.


그럼에도 두 방식의 차이는 눈여겨볼 만하다.

애국금을 낸 사람은 돈을 돌려받을 권리를 기대하지 않는다. 공채를 산 사람에게는 미래에 원금과 이자를 상환받을 권리가 약속된다.

독립운동을 돕는 행위는 같아도 돈을 건네는 방식이 달랐다.

특히 임시정부가 발행한 공채에는 국채통칙과 공채발행조례라는 법적 근거가 있었다. 임시공채관리국을 설치하고 공채 모집위원을 두는 규정도 만들었다.

독립운동 단체에 돈을 건네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임시정부의 장부에 국가가 갚아야 할 빚을 남기는 일이었다.


아직 온전한 주권을 확보하지 못한 정부가 미래 국가의 이름으로 빚을 지고 있었다. 독립이 이루어지면 그 빚도 함께 넘겨주겠다는 약속이었다.

다만 그렇게 약속하는 것과 실제로 갚을 수 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채권보다 먼저 믿어야 했던 것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는 1921년 4월 1일 발행된 독립공채가 남아 있다.

액면가 50원. 가운데에는 독립문이 그려져 있고, 재무총장 이시영의 서명과 인장이 찍혀 있다. 오른쪽에는 1번부터 30번까지 이자표가 붙어 있다.

채권의 형식은 제법 갖춰져 있었다.

그러나 증서에 정부의 인장이 찍혀 있다고 해서 상환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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