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이 너무 장사를 잘해서 멸망했다면

by서재원

교과서에서는 대개 이렇게 배운다.

한 무제가 고조선을 공격했고, 고조선은 멸망했으며, 그 자리에 한사군이 설치됐다고.

그런데 이 대목을 다시 읽다가 한 가지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전쟁은 너무 비싸다. 그렇다면 한 무제는 왜 굳이 여기까지 왔을까.


한나라의 사신이 고조선에 협상을 하러 왔다. 협상은 실패했다. 그런데 돌아가던 사신은 국경까지 자신을 배웅하러 나온 고조선 관리를 죽였다. 한나라로 돌아간 그는 문바카라을 받기는커녕 벼슬을 받았다.

고조선은 군대를 보내 그 사신을 죽였다.

그리고 기원전 109년, 한 무제의 군대가 움직였다. 육군과 수군이 동시에 고조선을 향했다.


한나라는 당시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 가운데 하나였다. 병사를 먹이고, 배를 띄우고, 성을 공격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 국경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제국이 반드시 전쟁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한 무제는 왜 그 비용까지 감수했을까.

그보다 오래전부터 한나라가 탐내던 것이 있었다. 고조선이 쥐고 있던 ‘길’이었다.




길목을 쥐면 거래 상대도 쥘 수 있다


위만이 집권한 뒤 고조선은 주변으로 세력을 넓혀갔다.

이 시기의 고조선, 곧 위만조선의 성장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중계 무역이다. 한나라와 주변 집단 사이의 교역을 연결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는 설명이다.

처음에는 나도 이 전쟁을 중계 무역의 문제로 읽으면 꽤 깔끔하게 설명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고조선이 길목에서 이익을 얻고 있었고, 한나라는 그 길을 직접 이용하고 싶어 했다는 식이다.


하지만 자료를 조금 더 따라가다 보면 그렇게만 정리하기는 어려워진다. 중개인의 힘은 한 번 거래할 때 남기는 차익에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거래가 자신을 거치도록 만드는 것 자체가 힘이 될 수 있다.


A와 C가 직접 거래하지 못하고 반드시 B를 거쳐야 한다면, B는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다. 누가 누구와 연결될지를 어느 정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인다.

우거왕 때 고조선은 주변 여러 나라가 한나라에 들어가 황제를 만나려는 것을 막았다. 물론 여기서 한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오늘날의 수출 계약처럼 볼 수는 없다. 당시 외교에는 정치적 지위와 복속 관계까지 얽혀 있었다.


중요한 것은 고조선이 그 접촉 자체를 통제했다는 점이다.

주변 세력이 한나라와 직접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 고조선을 거쳐야 할 이유는 줄어든다. 물건의 이동뿐 아니라 사신이 오가고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면서 한나라의 영향력도 고조선 너머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길목을 쥔다는 것은 지도의 한 지점을 차지한다는 뜻 이상이었다. 다른 세력이 누구와 직접 접촉할 수 있는지를 통제하는 힘과도 연결됐다.


고조선 입장에서 길을 열어주는 일은 단순히 무역 수수료를 포기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영향력을 지탱하는 통로를 내주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반대로 한나라에는 고조선을 거치지 않고 동쪽의 여러 세력과 직접 연결될 수 있는 길이었다.

같은 길을 두고 양쪽의 계산이 정반대로 갈린 셈이다.



협상하러 온 사신이 사람을 죽였다


이런 이해관계가 쌓인 끝에 섭하 사건이 벌어졌다.

기원전 109년 한나라는 섭하를 고조선에 사신으로 보냈다. 그러나 우거왕은 한나라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빈손으로 돌아가던 섭하는 국경 부근에서 자신을 배웅하러 나온 고조선 관리를 죽이게 했다. 한나라로 돌아간 그는 조선의 장수를 죽였다고 보고했다.

한 무제는 그를 처벌하지 않았다. 오히려 요동 동부도위에 임명했다.

고조선은 군대를 보내 섭하를 죽였고, 그다음 한나라의 대규모 원정이 시작됐다.


중계 무역이라는 설명만 보고 있으면 전쟁은 지나치게 매끈한 사업계획처럼 보인다. 고조선이 중계 무역으로 돈을 벌었고, 한나라가 그 이익을 탐내 침공했다는 식이다.

실제 전개는 훨씬 복잡했다. 외교 협상이 실패했고, 사신의 살해 사건이 있었으며, 고조선의 보복이 이어졌다. 여기에 오래 쌓여 있던 세력 경쟁까지 겹쳤다.

한나라의 기록에는 고조선을 멸망시킨 일을 두고 흉노의 왼팔을 끊었다고 평가한 대목도 남아 있다. 이는 고조선 문제가 한나라의 북방 전략과도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 표현만으로 고조선과 흉노 사이에 구체적인 군사동맹이 존재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여기까지 오면 처음 가졌던 질문도 조금 달라진다.

한나라가 고조선의 중계 무역 이익을 탐냈는지만 물어서는 충분하지 않다. 더 넓게 보면 동쪽의 질서를 누가 주도할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된다.


한 무제의 계산에는 교역로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주변 세력과의 직접 외교, 국경 통제, 동쪽의 경쟁 세력, 흉노를 둘러싼 전략, 그리고 황제의 요구를 거부하는 나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의 문제까지 놓여 있었다.

그 여러 조건이 겹친 끝에 군대가 움직였다.

다만 전쟁을 시작한 쪽이 전쟁의 가격까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왕검성은 싸게 넘어가지 않았다


한나라는 육지와 바다에서 동시에 고조선을 공격했다. 강대국의 대군이 움직였으니 전쟁은 금방 끝날 것처럼 보인다. 실제 전개는 달랐다.

먼저 왕검성에 도착한 한나라 수군은 고조선의 반격을 받고 패했다. 지휘관 양복은 병력을 잃고 산속으로 피했다. 육로로 진격한 군대도 고조선의 방어를 쉽게 돌파하지 못했다.


전쟁에서 시간은 곧 비용이다. 성 하나가 하루 더 버티는 동안에도 병사들은 먹어야 하고, 멀리 떨어진 원정군에는 식량과 장비를 계속 보내야 한다. 부상자를 돌보고 병력을 보충하는 데에도 돈과 사람이 들어간다.

고조선 역시 버티는 데 큰 부담을 안았다. 성을 지키는 동안 농사와 일상은 흔들렸고, 전쟁이 길어질수록 내부 부담도 커졌다.


양쪽은 전쟁 도중 타협을 시도했지만 불신 때문에 협상은 무산됐다. 한나라 지휘관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벌어졌다. 이 전쟁은 강대국 하나가 작은 나라를 단숨에 밀어버리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전쟁이 길어지면서 고조선 지배층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났다. 우거왕이 살해됐고, 그 뒤에도 왕검성의 저항은 이어졌다. 그러나 기원전 108년 고조선은 끝내 멸망했다.

한나라는 이겼다.


그렇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은 남는다. 얼마나 많은 비용을 들여 얻은 승리였을까.

정확한 원정 비용도, 전쟁 뒤 한나라가 얻은 경제적 수익도 계산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전쟁이 경제적으로 ‘남는 장사’였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이 부분에서는 선을 긋는 편이 맞다고 생각한다. 경제의 눈으로 역사를 읽는 것과 모든 역사를 돈으로 설명하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나라는 예상보다 강한 저항을 받으면서도 고조선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전쟁 뒤 무엇을 했는지를 보면, 그들이 확보하려 했던 것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인다.



군대가 지나간 자리에 관청이 들어왔다


한나라는 고조선을 멸망시킨 뒤 낙랑·임둔·진번·현도의 네 군을 설치했다. 점령한 지역을 한나라의 행정구역으로 편성한 것이다.

전쟁 전까지 한나라는 고조선 왕에게 요구를 전달하고 그의 결정을 거쳐야 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직접 관리를 파견하고 통치 조직을 설치했다.

낙랑군은 이후 한나라가 동방으로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넓히는 중요한 거점이 됐다. 고조선이 있던 길목에 제국의 행정조직이 들어선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이 이 전쟁을 이해하는 데 꽤 중요하다고 본다.

한나라가 원했던 것이 단순히 고조선이 가져가던 중계 무역의 몫을 차지하는 것이었다면, 이후의 군현 설치까지 그것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중개 무역에 개입해 이익을 얻는 것과 사람과 토지를 직접 다스리는 것은 권한의 수준부터 다르다.

군현을 설치하면 주민과 토지, 물자와 노동력을 행정체계 안에 넣을 수 있다. 이동과 교역을 통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해당 지역 자체를 관리하게 된다.


물론 정복했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군현을 운영하는 데에도 비용이 들었고 현지의 저항도 있었다. 한사군은 이후 통폐합과 이동을 거쳤다. 정복 뒤에도 통치는 계속 사람과 자원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고조선과 한나라의 전쟁을 단순히 “한나라가 중계 무역 수수료가 아까워 고조선을 공격했다”고 요약하면 부족하다.

경제적 이해관계는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누가 길을 통제하고, 누가 주변 세력과 직접 관계를 맺으며, 누가 그 지역의 질서를 주도할 것인지의 문제가 함께 놓여 있었다.

한나라가 고조선을 없애고 얻은 것은 중개상이 가져가던 차익만은 아니었다. 고조선을 거치지 않고 직접 판단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도 함께 얻었다.



중개인을 없앤 뒤, 제국이 직접 길을 지배했다


고조선의 멸망에는 여러 원인이 겹쳐 있었다. 외교적 충돌과 섭하 피살 및 보복이 있었고, 흉노를 둘러싼 군사 전략이나 한 무제 시기의 제국 팽창도 함께 작용했다.

그 가운데 내가 이 글에서 붙잡고 싶은 것은 ‘길’이다.

사람과 물건이 오가는 길을 누가 쥐고 있었는지, 주변 세력이 누구와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있었는지의 문제다.

고조선은 오랫동안 그 길목에 서 있었다. 길을 통제한다는 것은 물건의 이동만을 통제하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의 이동과 외교 관계, 주변 세력의 선택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처음보다 더 중요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역사에서 길은 단순한 통로에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그 길 자체가 권력이 될 수 있다.

왕검성이 무너지면서 고조선은 그 힘을 잃었다. 한나라는 그 자리에 군현을 설치했다.

역사바카라에는 짧게 적힌다.

고조선이 멸망하고 한사군이 설치되었다.

하지만 그 문장 사이에는 다른 질문이 숨어 있다.

길목에서 중개하던 나라가 사라진 뒤 사람과 물자의 흐름은 누가 관리하게 되었는가. 주변 세력과의 관계는 누가 결정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이 지역에서 생산되고 이동하는 것에 대한 권한은 누구에게 넘어갔는가.

그렇게 보면 고조선과 한나라의 전쟁은 한 나라의 멸망만을 보여주는 사건이 아니다.

길을 둘러싼 권력이 이동한 사건이기도 했다.


참고한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고조선과 청동기 문화」
https://contents.history.go.kr/eh_kk/teach/tong/II/05.htm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위만조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1138

국사편찬위원회 한국 고대 사료 DB, 『한서』 「무제기」 및 주석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ko_020r_0030_0090

국사편찬위원회 한국 고대 사료 DB, 『삼국유사』 「위만조선」
https://db.history.go.kr/id/sy_001r_0020_0030_0020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사군」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1664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낙랑군」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1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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