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서와 살 집의 중도금 1억은 지난주에 보냈다.
남은 잔금을 치르고 나면 두 사람은 그 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민재는 잔금에 보탤 돈을 따로 모아두고 있었다.
그날 오후에는 반차를 내고 잔금대출 본심사에 필요한 서류를 확인하러 갔다.
은행 직원은 계약서를 넘겨보며 말했다.
“현재 자료로는 처음 상담하신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최종 한도하고 금리는 심사가 끝나야 확정되고요.”
“잔금 일정에는 문제 없겠네요?”
“현재로서는요. 다만 심사 중에 다른 대출이 생기거나 신용 상태에 변동이 있으면 꼭 말씀해주세요.”
“그럴 일은 없어요.”
은행을 나오니 오후 두 시가 조금 안 됐다.
민재는 신혼집 쪽으로 차를 돌렸다.
단지 앞 카페에서 커피라도 하나 사갈 생각이었다.
정문을 지나는데 110동 앞에 대형 이삿짐 차량이 서 있었다.
민재는 무심코 지나쳤다가 입구 쪽에서 익숙한 얼굴을 봤다.
3년 전 소개팅으로 두 번 만났던 유진이었다. 이 단지에 월세로 살다 자기 집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뒤차가 붙어 그대로 지나갔다.
단지를 한 바퀴 돌아 다시 나왔을 때도 이삿짐 차량은 그대로였다.
이번에는 유진 옆에 남편도 있었다.
남자는 SUV 트렁크에 작은 상자를 싣고 있었다.
처음 횡단보도에서 봤을 때처럼 평범한 차림이었다. 손목에는 갤럭시워치가 있었고, 차도 흔히 볼 수 있는 국산 중형 SUV였다.
민재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지나갔다.
그 부부가 이사할 서린파크의 실거래가를 떠올렸다. 10억 3천. 자기들이 계약한 집보다 2억 넘게 비쌌다.
사람만 보면 아무것도 달라 보이지 않았다.
유진은 이삿짐 직원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남편은 트렁크를 닫았다.
둘 다 민재 쪽은 보지 않았다.
단지를 빠져나와 신호를 기다리는데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하이닉스 가격 알림이었다.
며칠 전 설정해놓은 가격보다 아래로 내려왔다는 알림이었다.
민재는 화면만 보고 다시 내려놓았다.
집에 도착해 주차를 마친 뒤 증권 앱을 열었다.
생각보다 많이 빠져 있었다.
전날보다 7퍼센트 가까이 하락 중이었다.
며칠 전 추가로 산 500만 원은 손실이 꽤 커졌고, 오래 들고 있던 물량의 수익도 빠르게 줄고 있었다.
회사 단체방에도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회사 동료 성호였다.
— 이거 뭐 떴냐
— 나 손절해야 되나
정우가 답했다.
— 일이나 해
— 내 월급보다 많이 빠지는데 일이 되냐
관련 뉴스를 먼저 찾았다.
반도체주가 전반적으로 약했다. 밤사이 미국 기술주가 크게 떨어졌고 외국인 매도도 강했다.
업황이 고점을 지나는 것 아니냐는 기사도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읽었던 실적 전망이 갑자기 뒤집힌 건 아니었다. 회사에 새로운 악재가 나온 것도 없었다.
민재가 성호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 회사에 뭐 생긴 건 아닌 듯.
답장이 바로 왔다.
— 그래서 더 사?
민재는 차트를 다시 봤다.
— 보고 있음.
지난번 같았으면 500만 원 정도를 더 샀을 것이다.
주문창에 500만 원을 넣어봤다.
예상 평균단가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동안 보유 금액이 늘어서였다.
민재는 숫자를 지우고 천만 원을 넣었다.
이번에는 평균단가가 조금 내려갔다.
그래도 생각했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주가는 계속 움직였다.
민재는 휴대전화를 소파에 내려놓고 샤워를 했다.
나왔을 때는 하락폭이 더 커져 있었다.
장 마감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성호에게 메시지가 하나 더 와 있었다.
— 나 300 더 샀음
— 이제 모르겠다
민재는 답하지 않았다.
증권계좌의 예수금을 확인했다.
얼마 전 일부 매도했던 돈이 남아 있었지만 천만 원까지는 되지 않았다.
추가로 사려면 은행에서 돈을 가져와야 했다.
은행 앱을 열었다.
급여 계좌.
생활비 계좌.
잔금을 준비해놓은 계좌.
손가락이 멈췄다.
중도금을 보내고 남은 돈이었다. 은서와 몇 번이나 계산해 잔금에 보태기로 한 금액이었다.
부모님 지원금과 대출금이 예정대로 들어와도 이 돈은 있어야 했다.
민재는 은서와의 대화창을 열었다.
중도금을 보낸 날 전송한 이체 화면이 남아 있었다.
입력창을 눌렀다가 아무것도 쓰지 않고 은행 앱으로 돌아왔다.
민재는 잔금 계좌를 눌러서 잔액을 봤다.
당장 오늘 빠져나갈 돈은 아니었다.
잔금일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대출 심사는 정상적으로 접수됐다.
부모님 돈도 예정대로 들어올 것이다.
민재는 다시 증권 앱으로 갔다.
하이닉스는 조금 전보다 더 떨어져 있었다.
주문창에 천만 원을 넣었다.
평균단가가 내려갔다.
2천만 원을 넣어봤다.
이번에는 차이가 눈에 보였다.
민재는 한동안 화면을 봤다.
지금 주가가 과하게 빠진 것이라면 반등했을 때 다시 빼면 됐다.
몇 달씩 들고 있을 생각도 아니었다.
5퍼센트만 반등해도 2천만 원이면 백만 원이었다.
10퍼센트면 이백만 원.
반대로 더 떨어질 수도 있었다.
그것도 알고 있었다.
그동안 벌었던 수익까지 생각하면 감당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민재는 계산기를 닫았다.
다시 은행 앱을 열었다.
잔금 계좌를 눌렀다.
증권계좌를 받는 계좌로 선택했다.
금액을 입력했다.
20,000,000원.
화면 아래에 확인 버튼이 떠 있었다.
민재는 바로 누르지 않았다.
주가를 다시 확인했다.
하락폭은 그대로였다.
조금 전 읽었던 기사도 다시 봤다.
새로 나온 내용은 없었다.
은행 앱으로 돌아왔다.
20,000,000원.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확인을 눌렀다.
이체 완료.
민재는 잔금 계좌로 돌아갔다.
2천만 원이 줄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