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삽입술 – 눈 안에 오래 둘 렌즈라서 따져본 것들
와이프는 시력이 좋지 않습니다.
안경을 벗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낸 지는 10년도 넘은 것 같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안경을 썼고, 지금은 양쪽 다 마이너스 9 디옵터를 넘습니다. 안경이나 렌즈를 벗었을 때 기준으로 0.05 미만(약 0.01~0.02 수준)입니다. 렌즈가 두꺼워서 안경테를 고를 때 선택지가 늘 절반으로 줄어드는, 그런 정도의 근시입니다.
그런데 와이프의 진짜 고민은 시력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안경을 쓰면 눈이 작아 보인다는 것이었죠. 눈이 크고 예쁘다는 소리를 듣던 사람에게 두꺼운 안경은 치명적입니다. 한동안은 콘택트렌즈로 버텼지만 그마저도 눈에 무리가 되어 더는 착용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도수 높은 안경은 렌즈가 눈을 축소해서 보여줍니다. 안경 쓰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눈이 작아지지 않는 안경'을 봤습니다. 다시 눈이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어 졌던 모양입니다. 일본 안경 브랜드 진스(JINS)가 내놓은 제품이었습니다.
안경테와 눈 사이 거리를 좁히고, 동공과 비슷한 짙은 색으로 경계의 대비를 줄이고, 귀 쪽 테를 두껍게 처리해 렌즈 두께를 가린 안경입니다. 기술적인 발명은 아닙니다. 착시를 활용한 설계죠.
그런데 찾아보니 일본에서만 살 수 있었습니다. 검색까지 해가며 그런 안경을 찾다가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안경으로 가릴 방법을 찾는 것과, 안경을 벗는 것은 다른 이야기니까요. 오래 들어온 불편에 이름이 붙었다면, 이제는 그 불편 자체를 없앨 방법도 한 번 알아볼 때가 됐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미루던 안과를 올해 초 함께 갔습니다. 안경을 벗을 방법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방법들이 있는지 한 번 들어나 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렌즈삽입술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습니다. 눈 안에 얇은 렌즈를 넣어 도수를 맞추는 방법이라고 하시더군요.
이름 자체는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아는 건 거의 없었습니다. 눈 안에 무언가를 넣어 계속 두게 된다는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고요. 상담실을 나오면서 "일단 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두 달 동안 이것만 파고들었습니다.
이 글은 그 기록입니다. 제가 상담 과정에서 가장 자세히 알아본 제품은 이보ICL이었고, 의사 선생님의 추천도 있고 해서 이 글의 확인 내용도 대부분 그 제품을 중심으로 합니다. 다른 제품도 함께 봤지만 같은 깊이로 조사하지는 못했다는 점을 먼저 밝혀둡니다.
먼저 네이버에 '렌즈삽입술'을 쳐봤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하고 계시더군요. 후기도 많고, 병원 소개도 많고.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정리가 안 됐습니다. 제품 이름이 너무 여러 개 나왔거든요.
더 헷갈렸던 건 각 제품이 내세우는 게 전부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떤 건 한국인 눈 구조에 맞게 설계됐다고 하고, 어떤 건 사이즈 옵션이 몇 가지라고 하고, 어떤 건 오래 검증됐다고 하고, 어떤 건 광학부가 몇 밀리미터라고 합니다.
비교 기준 자체가 서로 다르니까 비교가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자동차를 고르는데 A는 연비를 말하고 B는 색상을 말하고 C는 회사 역사를 말하는 격이랄까요.
그래서 상담을 두 군데 더 받아봤는데 이것도 갈렸습니다. 병원마다 주로 쓰는 렌즈가 다르더군요. 각자 자기가 쓰는 렌즈의 장점을 설명해 주시는데, 저는 그 설명을 평가할 기준이 없으니 그냥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사용 후기를 파보기로 했습니다. 카페, 블로그, 커뮤니티를 며칠 동안 읽었습니다. 제가 『리뷰 마케팅』이라는 바카라을 쓴 사람이라, 리뷰를 보는 눈은 좀 날카로운 편입니다.
그러다 눈에 띈 게 있었습니다. 후기가 올라온 날짜였습니다.
어떤 제품은 2015년, 2018년, 2020년 후기가 골고루 나옵니다. "수술한 지 5년 됐는데 아직 괜찮습니다" 같은 글도 있고요. 그런데 어떤 제품은 후기 수는 꽤 되는데 날짜가 거의 최근 1년 안쪽이었습니다.
이걸 두고 "그 제품이 문제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검색 노출 방식이나 게시물 정리, 마케팅 시점 같은 다른 이유도 있을 테니까요. 다만 확실한 건 하나였습니다. 적어도 제가 검색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기 사용 후기는 없다는 것.
수술 후 한 달 후기와 5년 후기는 전혀 다른 정보입니다. 한 달 후기는 "잘 보인다"밖에 담을 수 없지만, 5년 후기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담고 있으니까요.
이 시점부터 제 관심이 "어느 게 좋다더라"에서 "시간이 지난 뒤에 뭘 확인해야 하나?"로 옮겨갔습니다.
처음에는 생성형 AI 몇 곳에 "안내삽입렌즈를 고를 때 뭘 봐야 하나?"라고 물어봤습니다.
답변 자체를 근거로 삼지는 않았고, 거기서 나온 키워드를 가지고 FDA와 식약처 자료, 논문을 다시 찾아보는 식으로 접근했습니다.
후방과 전방 각 하나의 브랜드밖에 검색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이미 후방 렌즈삽입술로 의사결정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결국 한 브랜드밖에 남지 않은 것이죠.
결론이 시시하게 나버리는 기분이랄까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다른 많은 렌즈들은 FDA승인을 받지 못한 걸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승인받기가 정말 어렵더군요.
1. 안내 삽입렌즈는 그냥 의료기기가 아닌, Class 3 의료기기로 분류되고, 가장 엄격한 PMA(Premarket Approval) 기준이 적용됩니다.
PMA는 FDA가 의료기기에 요구하는 가장 엄격한 유형의 시판허가 신청 절차라는 표현은 FDA의 공식 문구에 직접 근거함
“PMA is the most stringent type of device marketing application required by FDA
2. FDA는 Class 3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판단할 때 다음을 고려합니다.
그리고 안전성과 유효성 판단에는 valid scientific evidence, 즉 유효한 과학적 근거가 필요합니다.
단편적인 증례보고, 세부정보가 부족한 보고, 근거 없는 의견 등은 안전성과 유효성을 증명하는 valid scientific evidence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3. 소수 사례가 아니라, 수백 명 단위의 데이터가 필요하고, 장기 추적 연구 업데이트가 필요합니다.
FDA는 PMA 승인 시 승인된 의료기기의 지속적인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기 위해 Post-Approval Study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Post-Approval Study는 승인 조건(condition of approval)이 될 수 있으며,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FDA가 승인을 철회할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병원에서 이보+ ICL을 많이 사용하는 이유도 알 것 같습니다. FDA가 승인한 표준 치료 재료를 썼다는 것 자체가 의사입장에서도 환자의 부작용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될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무조건 FDA 승인을 받은 제품만 좋은 것일까?
미승인 제품은 걸러야 하는 것일까?
위 기준에 부합하는 연구 데이터를 쌓고 거듭 증명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렌즈삽입술은 마음 편히 넘어갈 수 있는 종류의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수술이 끝난 뒤에도 눈 안에 렌즈라는 물건이 남습니다. 제거하거나 교체할 수는 있지만, 그러려면 다시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찾아보니 FDA도 안내삽입렌즈의 위험으로 안압 상승, 백내장, 각막내피세포 감소와 그에 따른 각막 혼탁 가능성 등을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물어야 할 건 "넣는 순간"이 아니라 "넣은 뒤의 시간"이었습니다.
질문이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어느 게 더 좋은가?"가 아니라 "뭘 확인하고 넣어야 하는가?"로요.
논문 초록도 읽어보고, 식약처 의료기기 정보포털과 미국 FDA 자료도 뒤져보고, 상담 때 여쭤본 내용까지 합쳐서 제 나름의 확인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아마 제가 받는 수술이었으면 이 정도까지 조사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와이프느님의 수술이니 최선을 다했습니다.
전공자가 아니니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겁니다. 다만 저처럼 처음 알아보는 분께는 출발점이 될 것 같아 정리해 둡니다.
어떤 규모의 임상 데이터로 허가를 받았고, 그 임상의 관찰 기간은 얼마인가?
어떤 소재로 만들어졌고, 그 소재가 얼마나 오래 쓰였는가?
눈 안 어디에 위치하고, 구조는 어떻게 설계됐는가?
수술 직후가 아니라 몇 년 뒤 데이터가 있는가? 그리고 그 데이터는 어느 모델의 것인가?
실제로 얼마나 많이, 얼마나 오래 쓰였는가?
그 자료를 내가 직접 확인할 수 있고, 연구의 기간·대상·한계까지 알 수 있는가?
아, 이 여섯 가지는 전부 '렌즈'에 대한 질문입니다. 제가 렌즈 선택을 먼저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정작 와이프의 수술 결과를 좌우하는 건 검사의 정확성, 사이즈 선정, 사후 관리 같은 것들인데 그건 렌즈 스펙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글 말미에 병원에 물어볼 항목을 따로 정리했습니다.
이 여섯 가지 질문을 병원에서 추천받기도 했고, 제가 논문까지 찾아본 이보ICL을 대상으로 확인해 보았습니다.
현재 세대인 EVO/EVO+는 2022년 3월 25일 미국 FDA 승인을 받았고, 그 이전 모델인 Visian ICL은 2005년에 승인을 받았습니다. 국내에서는 2002년에 최초 모델이 식약처 허가를 받았고, 중앙홀이 적용된 EVO는 2013년 허가를 받았습니다.
승인 근거가 된 임상시험은 미국 다기관에서 진행됐고 327명, 629안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평가 항목이 시력만이 아니었다는 점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안압, 각막내피세포밀도, 백내장 발생 여부 같은 안전성 지표를 함께 봤다고 돼 있었습니다.
특히 각막내피세포를 눈여겨봤습니다. 이 세포는 줄어들면 원래 수만큼 다시 회복되기 어렵다고 합니다. 각막의 투명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데, 너무 많이 줄면 각막이 붓고 뿌옇게 되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하고요.
그런데 여기서 제가 처음에 오해했던 게 있습니다.
임상 규모가 크다는 걸 저는 '오래 검증됐다'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승인 자료를 보니 최초 승인 판단의 핵심 평가는 수술 후 6개월 시점의 결과였고, 이후 같은 임상군을 대상으로 3년 추적이 이어졌습니다.
629안이라는 임상 규모와 6개월이라는 관찰 기간은 별개의 지표였던 겁니다.
이보ICL의 'ICL'이 Implantable Collamer Lens의 약자라는 걸 이때 처음 알았습니다. 가운데 'C'가 렌즈에 쓰인 소재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었던 겁니다.
콜라머(Collamer)는 HEMA 기반 공중합체에 콜라겐 성분이 포함된 소재라고 합니다. 흔히 쓰이는 아크릴이나 실리콘 계열과는 다른 계열이라고 하고요. 성분의 우열은 제가 판단할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확인한 건 사용 기간이었습니다. 제조사 자료에 따르면 콜라머 소재의 ICL이 처음 삽입된 것은 1993년이며, 이후 ICL 제품군은 계속 콜라머 소재 계열을 사용해 왔다고 합니다. 소재가 바뀌면 그 이전에 쌓인 장기 데이터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워지니, 이건 의미가 있다고 봤습니다.
다만 반대도 성립하지는 않겠더군요. 소재 계열이 같다고 이전 모델의 장기 데이터가 현행 모델에 그대로 적용되는 건 아닙니다. 그 사이에 렌즈 설계와 사이즈 선정법, 중앙홀 유무, 수술법이 모두 바뀌었으니까요.
이건 몰랐던 부분이라 좀 놀랐습니다. 안내삽입렌즈라고 다 같은 자리에 들어가는 게 아니더군요. 홍채 앞에 위치하는 전방형과, 이보ICL처럼 홍채 뒤·자연수정체 앞에 위치하는 후방형으로 나뉩니다.
이보ICL이 후방형으로 설계됐다는 내용은 FDA 승인 문서에 명시돼 있었습니다. 밖에서 봤을 때 렌즈가 보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하네요.
여기서 하나 더 알게 된 게 중앙홀이었습니다. 렌즈 가운데에 아주 작은 구멍이 있습니다.
기존 모델은 방수(눈 안을 채우는 액체) 흐름을 확보하기 위해 수술 전에 주변부 홍채절개술을 따로 받아야 했다고 합니다. 중앙홀이 적용된 모델은 렌즈 자체를 통해 방수가 흐르도록 설계돼 그 절차를 생략할 수 있게 됐고요. 국내에서는 2013년부터입니다.
이걸 "이전 모델에 결함이 있어서 고쳤다"로 읽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절차가 하나 줄어든 설계 변경이지, 이전 모델이 잘못됐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저에게 의미 있었던 건 설계 변경 이력이 문서로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였습니다.
이 항목을 조사하면서 제가 하마터면 크게 잘못 읽을 뻔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이렇게 정리했었습니다. "1990년대 초부터 임상 경험이 쌓여왔으니까 장기 추적 결과가 많겠구나."
그런데 이건 세 가지를 뭉뚱그린 문장이었습니다. ICL 계열 전체의 사용 이력, 과거 Visian ICL의 장기 추적 결과, 그리고 중앙홀이 적용된 현행 EVO의 추적 결과. 세 번째가 실제로 와이프 눈에 들어갈 렌즈의 데이터입니다. 앞의 두 개는 참고는 되지만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논문을 볼 때 어느 모델을 대상으로 했는지, 추적 기간이 얼마인지를 따로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제품의 진짜 의미가 뭔지도 이때 바뀌었습니다.
저는 "오래 쓰였다 = 안전하다"로 읽고 있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과거 Visian ICL의 장기 추적에서는 각막내피세포 감소와 재수술 사례가 관찰됐고, 더 긴 추적군에서는 일부 형태의 백내장도 보고됐습니다.
처음 이걸 봤을 때는 솔직히 좀 겁이 났습니다. 그런데 며칠 생각해 보니 다르게 읽혔습니다.
이런 사례들이 보고돼 있다는 건, 누군가 그만큼 오래 추적했다는 뜻입니다.
물론 부작용이 보고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부작용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충분히 관찰했는데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추적 기간이 짧거나 대상이 적어서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분명한 건 5년 데이터가 없다면 적어도 그 자료만으로는 5년 뒤의 결과를 알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오래됐다는 사실의 가치는 안심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알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가지 짚어둘 게 있습니다. 위에 적은 결과들은 중앙홀이 없는 과거 모델의 것입니다. 구조가 다르니 현행 EVO의 결과와 섞어 읽지 않으려고 따로 메모해 뒀습니다. 현행 EVO를 대상으로 한 추적 연구들도 확인은 됐지만, 연구마다 대상 수와 설계, 추적 완료율이 달라서 그 결과를 어디까지 적용할 수 있는지는 더 살펴봐야 했고요.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항목이라 찾기는 쉬웠습니다. 다만 단위와 지역을 섞어 읽으면 안 된다는 걸 중간에 알았습니다.
글로벌 - 제조사 발표 기준 누적 판매 렌즈 개수
2019년 100만 개 → 2022년 200만 개 → 2024년 300만 개
2026년 2월 400만 개 돌파
현재 75개국 이상에서 판매
국내 - 누적 수술 건수
2023년 12월 30만 건 돌파
2026년 8월 초 기준 40만 건 돌파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판매 렌즈 개수'와 '수술 건수'와 '환자 수'는 서로 다른 단위입니다. 양쪽 눈을 수술한 사람 한 명이 렌즈 두 개, 수술 두 건으로 집계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400만이 환자 400만 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래도 국내 숫자를 보고는 잠깐 멈췄습니다. 이보ICL은 해외 제품이니 한국인 데이터는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걱정이 있었는데, 국내 최초 허가가 2002년이고 그 이후 쌓인 수치가 이 정도라면, 적어도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국내 사용 경험이 많이 축적된 렌즈였습니다.
다만 이 수치들은 모두 제조사나 유통사가 발표한 것이지 제삼자가 집계한 자료가 아니라는 점도 감안해야 했습니다. 다른 제품들의 국내 사용량은 비교할 만한 공개 자료를 찾지 못해서, "이게 제일 많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마지막 항목이 결과적으로 제일 유용했습니다.
앞의 다섯 개를 조사하면서 계속 부딪힌 벽이 있었습니다. 어떤 제품은 자료가 나오고, 어떤 제품은 안 나옵니다.
이보ICL은 FDA 승인 데이터베이스에서 승인 문서를 볼 수 있었습니다. 승인일, 임상 규모, 관찰 기간, 렌즈가 후방형으로 설계됐다는 구조 설명까지 문서에 있었습니다. 사용설명서도 공개돼 있어서 비전공자인 저도 목차 정도는 훑어볼 수 있었고요.
제가 이 항목을 만든 이유는 "자료가 있느냐?"보다 "그 자료의 한계까지 알 수 있느냐?"였습니다.
좋은 결과만 적힌 홍보 자료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런데 연구 대상이 몇 명이었는지, 얼마나 추적했는지, 몇 명이 중도 탈락했는지, 어떤 이상반응이 몇 건 나왔는지가 함께 적혀 있어야 그 결과를 제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앞의 4번 항목에서 부정적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문서가 공개돼 있었기 때문이고요.
제가 검색한 일부 제품은 회사 소개 자료까지는 확인했지만, 동일 모델을 장기간 추적한 원자료까지 찾아가기는 어려웠습니다. 여기서 저는 판단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자료를 못 찾은 게 제 검색 능력의 한계일 수도 있고, 자료가 없다고 해서 제품이 나쁘다는 뜻도 아닐 테니까요. 다만 저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했습니다. 와이프 눈 안에 오래 둘 물건에 대해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건, 저한테는 그 자체로 중요한 정보였습니다.
상담을 다니면서 "렌즈 종류보다 중요한 건 내 눈에 맞는 크기와 도수를 찾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은 맞습니다. 아무리 자료가 많은 렌즈라도 와이프 눈에 안 맞는 사이즈를 넣으면 문제가 생기니까요.
찾아보니 렌즈와 자연수정체 사이의 간격을 볼트(vault)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렌즈가 눈에 비해 지나치게 크면 볼트가 과도하게 높아져 전방각이 좁아지거나 안압이 오를 수 있고, 반대로 너무 작으면 볼트가 낮아져 수정체와 가까워지거나 렌즈가 회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어느 쪽이든 사이즈 선정과 수술 후 관찰이 중요하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래서 사이즈 옵션이 몇 가지인지를 강조하는 제품들이 있습니다.
며칠 생각해 보다가, 질문이 하나 남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옵션이 많은 것과, 그중에서 정확한 걸 골랐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옵션이 여섯 가지든 네 가지든, 결국 와이프 눈에 맞는 하나를 골라야 합니다. 그리고 잘 골랐는지는 수술 다음 날 시력표로는 알 수 없습니다. 볼트가 적절한지, 안압과 전방각은 안정적인지, 각막내피세포가 예상보다 빠르게 줄고 있지는 않은지를 수술 후 정기적으로 확인해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니까요.
그러니까 '맞춤'이라는 주장을 검증하는 방법도 결국 같은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 렌즈로 사이즈를 골랐던 사람들의 몇 년 뒤 경과 데이터가 있는가.
옵션 개수는 카탈로그에 적혀 있습니다. 그 선택이 실제로 잘 맞았는지는 시간이 지나야 나옵니다.
알아보는 과정에서 할인 이벤트를 여럿 봤습니다. 신제품 도입 기념, 기간 한정 같은 것들이요.
솔직히 흔들렸습니다. 적은 돈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순서를 정하기로 했습니다.
병원과 시기, 가격은 결정 전까지 바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눈에 들어간 렌즈는 마음이 바뀌었다고 간단히 바꿀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닙니다.
제거나 교체가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건 또 한 번의 수술이고, 그 자체로 부담이 있는 일이죠.
그래서 가격은 쉽게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다 확인한 다음에 볼 항목으로 미뤄뒀습니다. 순서를 정해두니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위의 여섯 가지는 전부 렌즈에 대한 질문입니다. 렌즈 자료를 아무리 확인해도 알 수 없는 게 남습니다. 그래서 이건 따로 정리했습니다. 다음 상담 때 여쭤볼 목록입니다.
와이프의 전방 깊이와 각막내피세포밀도가 수술 가능 기준에 들어가는가?
렌즈 사이즈는 어떤 측정값과 방식으로 결정하는가?
수술 후 예상되는 볼트 범위는 얼마이고, 실제 볼트가 예상과 다르게 나오면 어떤 기준으로 경과 관찰이나 교체를 판단하는가?
정기검진에서 안압·전방각·각막내피세포·수정체를 얼마나 자주 확인하는가?
렌즈 제거나 교체, 나중에 백내장 수술이 필요할 때 대응 경험이 있는가?
안내삽입렌즈는 넣고 끝나는 게 아니라 넣은 뒤의 관찰이 계속 필요한 의료기기입니다. 그래서 렌즈를 고르는 일과 병원을 고르는 일은 둘 다 필요하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신하지는 못한다는 게 두 달간의 결론이었습니다.
혹시 저와 비슷한 상황이신 분들은 이렇게 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식약처 의료기기 정보포털에서 그 제품의 허가 연도를 직접 조회해 보기
광고 문구의 연도가 회사 연혁인지 제품 허가 이력인지 구분해서 읽기
논문이나 자료를 볼 때 어느 모델을, 몇 년간 추적했는지 확인하기
후기를 볼 때 내용보다 작성 날짜의 분포를 먼저 보기
상담 때 "이 렌즈에서 보고된 이상반응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어보기
마지막 항목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결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니까요. 어떤 이상반응이 있었고, 얼마나 오래 관찰했으며, 몇 명이 추적에서 빠졌는지도 함께 알아야 그 결과를 제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와이프는 다음 주에 정밀검사를 예약해 뒀습니다. 각막내피세포 수치와 전방 깊이, 각막 곡률을 확인해야 렌즈 삽입이 가능한지 알 수 있다고 해서요. 어쩌면 검사 결과 와이프는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각막이 얇아서 라식이 안 됐던 것처럼, 전방이 좁아서 렌즈도 어려울 수 있다고 하더군요. 결과가 나오면 그 내용도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두 달 동안 제가 고른 것은 아직 렌즈가 아닙니다. 무엇을 확인한 뒤 결정할 것인지, 그 순서를 고른 것입니다.
과연 와이프는 두꺼운 안경, 눈이 작아 보이는 안경을 결국 벗게 될까요?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 시력교정술의 가능 여부와 방법은 개인의 눈 상태에 따라 다르며, 반드시 안과 전문의의 검사와 상담을 통해 결정해야 합니다. 본문의 제품 정보는 식약처 의료기기 정보포털, 미국 FDA 공개 자료, 제조사 발표 자료를 참고했으며, 개인의 조사 기록이므로 의학적 판단의 근거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