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와 샤오미 앙숙이 된 두 팬덤-FanCase32

화웨이 '주즈랴오' 사건에서 읽는, 팬덤의 힘이 독이 되는 순간

by박찬우

브랜드가 팬덤을 원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광고비를 쓰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이야기해 주고, 신제품이 나오면 먼저 줄을 서 주고, 브랜드가 흔들릴 때 대신 방어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업은 팬덤을 '얼마나 좋아하는가'라는 하나의 축으로만 측정합니다.


그런데 그 축만 보면 절대 보이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2026년 여름 중국에서 몇 천 원짜리 대나무 장난감 하나가 만들어 낸 소동이 바로 그 장면이었습니다.


모든 팬덤이 적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레고나 파타고니아의 팬덤이 경쟁 브랜드를 공격하며 결속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강한 결속의 에너지가 향할 곳을 잃었을 때입니다. 그때 팬들은 함께 좋아할 대상보다 함께 싫어할 대상을 통해 더 쉽게 뭉칩니다.


대나무 장난감 하나가 거대 기업을 흔들었습니다


1785748376341303.png주즈랴오(竹知了)

주즈랴오(竹知了)는 대나무 통과 실, 대나무 막대로 만든 전통 완구입니다. 돌리면 매미 울음과 비슷한 '와와' 소리가 납니다.


2026년 7월 말, 중국 네티즌들이 이 소리가 화웨이 신제품 발표회장의 특정 장면과 닮았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화웨이 단말사업을 이끌던 위청둥(余承东)이 2023년 말 원제(问界·AITO) M9 발표회에서 "1000만 위안 이내 최고의 SUV"라고 선언했을 때 객석에서 터져 나온 감탄사와 비슷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흔한 인터넷 놀이입니다. 장난감 영상에 발표회 음성을 붙이고 "1000만 위안 이내 최고의 장난감"이라는 자막을 다는 식의 패러디가 더우인(Douyin)에 쏟아졌습니다. 보통 이런 종류의 밈은 며칠이면 수명이 끝납니다.


8월 초, 관련 영상 일부가 플랫폼에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에서는 곧바로 "화웨이가 주즈랴오 밈을 대대적으로 지우고 있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이 대응은 중국 내에서 '과잉 여론 통제'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8월 4일 밤, 화웨이 계열 브랜드 훙멍즈싱(鸿蒙智行)이 공개한 숫자는 달랐습니다. 관련 정보 5만 6천여 건을 모니터링했지만 실제 신고는 명백한 침해 소지가 있는 171건에 한정했고, 그중 144건이 내려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장난감 실물 상품을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신고한 적은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반면 자기 계정에서만 영상 80개가 삭제됐다고 밝힌 자동차 블로거도 있었습니다.


어느 쪽 숫자가 실제에 가까운지는 지금도 외부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순서입니다. "화웨이가 밈을 지우고 있다"는 인식이 먼저 굳었고, 숫자는 뒤늦게 나왔습니다. 그리고 인식이 굳은 뒤에 나온 숫자는 해명이 아니라 변명으로 읽혔습니다. 결과적으로 사건은 감추려 할수록 더 퍼지는 스트라이샌드 효과(Streisand effect)와 비슷한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평범한 반려견 이름 하나가 선전포고로 읽혔습니다


여기까지는 기업의 대응이 오히려 논란을 키운 위기관리 사례입니다. 이것이 팬덤 사례로 바뀌는 지점은 그다음입니다.


8월 6일, 쉬제윈(徐洁云) 샤오미(Xiaomi) 그룹 회장 특별보좌관 겸 홍보부 총경리의 웨이보 댓글창에 한 네티즌이 이렇게 남겼습니다. "입만 열면 higo 하는 사람이 고위 임원이라니." 'higo'는 화웨이 팬을 비하하는 멸칭 '하이거우(海狗·물개)'와 소리가 겹치는 표현입니다.


쉬제윈은 같은 날 공개적으로 답했습니다. 한 샤오미 사용자가 온라인에 자주 올리는 반려견의 이름이 '하이고(孩go)'이고, 그 글을 자주 보다 보니 인사 삼아 안부를 물은 것인데 무엇이 문제냐는 취지였습니다. 곧바로 반려견 주인이 직접 나섰습니다. 8년 키운 시바견 이름이 맞으며 자기 개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것이 황당하다고 밝혔습니다. 6월의 대화 캡처도 함께 돌았는데, 쉬제윈이 안부를 묻자 주인이 "요즘 상태가 안 좋다"라고 답한 평범한 대화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의 사실관계는 '임원이 상대 팬덤을 멸칭으로 불렀다'가 아닙니다. 개 이름 하나가, 이미 축적된 적대의 언어 때문에 다른 뜻으로 읽힌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해석은 되돌려지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논란을 계기로 화웨이 팬들은 샤오미 팬들을 '미허우(米猴·샤오미네 원숭이)'라고 부르며 맞받았고, 두 브랜드의 해묵은 팬덤 전쟁이 다시 불붙었습니다.


여기가 중요한 장면입니다. 팬덤의 배제 언어가 충분히 쌓이면, 말한 사람의 의도보다 집단이 공유하는 맥락이 의미를 결정합니다. 화자는 자기 말의 뜻을 더 이상 소유하지 못합니다.


더 눈여겨볼 것은 피해자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이 반려견 주인은 논란 이전부터 이미 악성 공격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임원도 브랜드도 아니고, 개 사진을 올리던 일반 사용자가 먼저 걸린 것입니다. 그리고 쉬제윈의 해명 이후에는 네티즌들이 그의 이름을 비틀어 만든 새로운 조롱 밈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해명이 또 하나의 놀잇감을 만든 셈입니다.


중국 안에서도 반응은 갈렸습니다. 개 이름을 두고 과잉 해석한 것이라는 쪽과, 홍보 바카라임자가 직접 댓글창에 내려와 대거리한 것이 부적절했다는 쪽입니다. 후자의 논평 가운데 한 문장이 특히 눈에 띕니다. 홍보의 일은 불을 끄는 것이지 지피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었습니다.


두 회사는 원래 서로를 칭찬하던 사이였습니다


화웨이 팬 '화펀(花粉)'과 샤오미 팬 '미펀(米粉)'이 처음부터 적대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박찬우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고객 중심 관점과 디지털 크라우드 컬쳐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기업의 디지털 마케팅 전략과 브랜드 팬덤 구축을 위한 맞춤형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15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5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00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2화이름을 붙여도 팬덤은 안 생깁니다 -FanCase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