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르고 누르다 터져버린 풍선처럼 아주 요란스럽고 큰 충격으로 무기력과 우울감이 몰려왔다. 갑작스러웠지만 갑작스러운 일은 아닌, 이미 유학시절부터 시작된 전조증상을 무시한 채 몇 년을 버티고 버티다 보니 한계점에 다다른 결과였다.
결국 2년 여 동안 칩거 생활을 하며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물음만 반복했다. 그리고 자기 비하의 끝자락에 이르니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었다. 처음으로 곪아 있던 마음의 상처가 느껴졌을 때는 어르고 달래 보기도 했다. "그래, 그동안 고생했으니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쉬어도 된다"라고. 그러나 그것도 며칠이 지나자 소용이 없었다. 매일같이 마음이 썩어 탁한 생각의 고름이 쏟아져 나왔다. 너무 썩어서 차마 만지기도 역겨운 부정의 냄새를 풍기며, 그동안 외면했던 대가를 몇 배로 되갚아 주는 듯이 나를 괴롭혔다.
낮이고 밤이고 생각이라는 것이 떠오르면 하나같이 비관적이고, 후회 섞인 자조의 물음들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고, 열심히 살아왔고, 성실하게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믿었는데, 왜 삶은 내게 이련 시련을 주는 것인가". 한 번 터져버린 폭탄은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마음속에서 터진 곪은 상처의 폭탄 역시 예전의 내 모습은 모두 치워버리고, 검은 재만 남겨 두었다.
나에게는 우울증이라느니, 무기력이라느니, 번아웃과 같은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나도 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 눈으로 보게 되자 오만했던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무엇을 믿고 그렇게 질주하며 살았던가. 아무것도 없었기에 더 거침없이 달릴 수 있었던 것일까. 두려울 것이 없었던 지난날, 아니 두려움이 있어도 헤쳐나갈 수 있다고 확신했던 그 옛날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두렵고, 집 앞을 나가는 것도, 사람의 눈을 마주치는 것도, 공기를 마시며 숨을 쉬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다.
열정으로 움직이던 사람이 열정을 잃게 되면 삶의 의미가 사라진 듯 느껴진다. 목표하는 바를 이루고, 성장하는 모습을 기대하며 장밋빛 미래를 그렸던 것이 흑백사진으로 바뀌었을 때는 온통 암흑천지처럼 느껴진다. 영원할 것 같던 삶에 대한 열정이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배신감을 견디지 못하고 마음속 열정의 불꽃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리고 마치 강력 걸쇠를 채운 듯이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게 된다.
또다시 시작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 물음은 첫 위기가 왔을 때 나에게 물었어야 했고, 두 번째 위기가 왔을 때 외면하지 않고 붙잡아서 물었어야 했다.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 것이냐고. 수 차례 내 안에서 보냈던 신호들을 무시하다 보니 더 이상 이상 신호조차 보내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주저앉혀 버린 것이다. 그때 물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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