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열기가 정점에 도달하는 여름은 저마다 가진 고유한 개성들이 잘 드러난다.
드러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임계점을 태양이 툭 건드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면에 간직한 어떤 성질이나 열정을 강렬한 색채로 표현해 내는 데 탁월한 이 시점 어떤 대상을 보기 위해 인파가 몰리는 쇼핑몰에 다녀왔다. 이곳 두 그루의 배롱나무는 인공 연못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서 있는데 수형이 둥그스름하면서 조화롭게 잘 생겼다. 나무도 아름다운데 진분홍 꽃송이들을 매단 압권을 안 보고 넘어가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물가에 무심히 서 있기에 더 운치가 있다.
사람 피부색을 닮은 수피는 불가에서 말하는 번뇌의 껍질을 스스럼없이 벗겨내어 매끈하고, 꽃을 피우는 모습이 수행자의 정신적 표상을 닮아 보인다. 고택과 어우러져 연못 수면 위로 낙화할 때의 애잔함이 여름을 물들이는 전통적 공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쇼핑몰에선 사람들에게 활기를 덧입히고 낭만을 불러일으킨다.
줄줄 녹는 아이스크림을 떠먹으며 꽃그늘 아래에서, 연못을 건너간 저편에서, 2층에서 여러 각도로 감상해 보았다. 가까이보다는 멀어질수록 빛깔이 뿜어내는 기운이 더 완곡하다. 나무의 감정이 더 잘 읽힌다고 할까.
나이가 들수록 원시가 되어가는 이치도 시선을 들어 멀리 내다봄으로써 인생의 큰 그림을 깨우치고, 눈앞의 이익을 좇지 말라는 가르침이 들어있는 것 같다.
멀고 가까운 공간을 평면 위에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원근법을 거꾸로 해석하여 내 가까이 있는 대상들을 멀리
보고, 먼 곳에 외따로이 떨어져 있는 대상들을 내 곁으로 가까이 지켜보는 시선의 역전환도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데 필요하다. 때로는 너무 붙어있어 못 본 체 놓치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나의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다. 늘 보아서 안 보이는 허점들이 자신에게는 더더욱 많을 수밖에...
내가 뜨거운 사람인지 차가운 사람인지 미지근한 사람인지 나의 온도조차 가늠하지 못할 때 있다.
딸아이 치과 진료차 동네 병원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딸은 엑스레이 찍으러 들어가고 혼자서 병원 내부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찰나 어떤 여자분이 들어와서 내 근처 좌석에 앉았다. 홀쭉하니 마른 몸에 키도 나와 비슷하고 나이는 더 적어 보였다. 발등까지 내려오는 베이지색 카고바지에 심플한 회색 티셔츠, 검은 샌들, 그리고 화장기라곤 없는 얼굴에 직모 단발머리를 묶은 그녀의 꾸미지 않은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연령대 도시 여자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수수한 겉모습만큼 인상도 담박하였다. 에어컨 바람 선선한 이 공간에 내 고향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신선함을 느꼈다. 박수근 그림 '귀로'에 나오는 여인 같달까. 온통 겉모습에 편중된 시선들에 개의치 않을 만큼 내면의 자부심이 강하게 엿보이는 그녀를 힐끔 더 관찰하고 싶은데 딸의 이름이 호명되고 그녀는 이내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모양을 보기 좋게 매만지고 장식하는 꾸미기는 무리에서 돋보이려는 심리이거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이며 적어도 뒤처져 보이지 않게 하는 모방이다. 서로 비슷해 보임으로써 정서적 안정감 만족감을 누리는 집단 심리는 눈치와 눈총을 따갑게 쏘아붙인다. 그런 대중들의 시선을 따갑지 않게 맞받아칠 수 있는 배짱이 자부심 아니겠나. 과장된 언어 행동 몸짓도 거품이 거품을 무는 꾸밈이다. 무지개 서린 거품에 속지 않으려면 거품을 꺼뜨리는 명료한 지침, 허점을 찌르는 바늘 같은 생각과 안목이 있어야겠다.
어릴 적 거품의 환상을 보고 죽을 뻔한 적 있었다. 학교에 다녀오면 가방을 던져놓고 들길을 따라서 냇가에 놀러갔다. 수양버들 그늘이 드리운 냇가에는 앉기 좋은 너럭바위가 있었고 그 바위는 냇물에 절반쯤 잠겨 있었다. 바위에 앉아서 두 발을 물에 담그면 시원했다. 그날도 늘 앉는 지점에 발을 딛는데 아래쪽으로 펑퍼짐한 바위가 무척 넓게 보였다. 바위색과 비슷한 갈색 거품을 문 바위의 보호색이 바위 면적을 확장시키는 착시현상을 일으켰다. 녹조현상에 의해 떠밀려 온 갈색 거품이 단단한 화강암 덩어리로 보였다. 신이 나서 한 발을 내디디려던 순간 부피를 키운 거품의 불규칙한 표면이 눈에 들어왔다. 아찔했다. 그곳은 아이가 빠지면 헤어날 길 없는 어른 한 길 수심이었다. 아이들을 한 명씩 잡아가는 물귀신이 산다는 그 냇가에는 그날 이후 다시는 가지 않았다. 지금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 위로 다리가 놓여있는 외진 바닷가라서 고향에 갈 때면 자주 찾는다.
거울이 모르는 맹점에 허상을 비추면서 그다지 꾸밀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나 역시 타인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무리의 일부였다. 나를 나답게 꾸미는 데 드는 슬롯적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고 있었던 셈이다. 태양이 달구는 총천연색 자연의 색채들이 선명해지는 요즘 자유자재 흘러가는 흰 구름들을 줌인한다. 모양도 제각각 저물녘에는 석양의 분홍색으로 예쁘게 옷을 갈아입는 구름들의 변신은 무죄. 겉치레는 하되 진실을 덮는 가림막은 치지 말기를.
그늘 깊은 음지로만 다니는 나 보란 듯이 지열이 푹푹 찌는 도로 한복판 헬멧을 쓰고 긴팔 작업복에 조끼를 입은 작업자들, 땡볕 아래 야광봉을 들고 교통 통제를 하는 사람, 공무수행 오토바이를 타고 한낮의 열기를 질주하는 공무원, 폐전봇대 꼭대기까지 올라간 능소화들이 태양과 맞짱 뜨는 승리의 깃발을 펄럭이는 이 여름도 멀리서 보면 흥겨운 생명의 한판 축제이어라.
여름이 연출하는 풍경 낭만적이죠..
청단풍, 푸른 하늘, 흰 구름
그 아래 발간 기와 지붕, 아치형 타일 벽체
그리고 화룡점정 배롱나무꽃
연못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거니는 사람들..
무더운 줄만 알았던 여름을 원근법으로 줌인 줌아웃
생명력이 왕성한 색채의 향연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보입니다
애써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