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할 때에는 차라리 펼쳐보는 건 어때
컴컴하고 적막한 동굴로 들어가
가장 소외된 언어를 골라봐
다듬어지지 않은
꾸미지 않은
원초의
말
소리로
나오지 않는
비명이 되지도 않는
벌거벗은 나무의 겨드랑이 같은
그럴 줄 알았을까
그럴 줄 알았지
그랬으니까
그랬구나
아
물이 많은 세상에서 풀이 많은 세상으로 넘어오는 길이 자꾸 눈에 어른거려
손이 많이 가는 길에서 발이 부지런한 길로 가는 거니까
눈 밖에 난 이야기
잠자코 듣다보면 다다르지 않아야 할 곳에서 서성이고 있지
여름인 척 가장한 계절도 있는 법이지
서둘러 걷어버린 이불들을 다시 꺼내서 포개어 놓네
아무리 곱게 접어도 일곱 번을 넘길 수 없는 게 신기해
위로가 되는 글을 쓰겠다는 다짐이 가당키나 할까
글도 아래로 쓰면서
푸힛
쓰면서 내가 위로가 되면 그것으로 족하지
어차피 커피는 하루에 두 잔은 무리야
나름의 전략으로 4온스를 여러 잔 마시기로 했지
받침이 있는 우아한 잔을 골라
손가락을 끼우고 입술을 모으면
잔 표면의 크리미가 코로 향기를 뱉지
이미 마신 거랑 다름 없지
그래서 옛날에 할머니는 코피라고 불렀나봐
손님이 다녀간 다음에 잔 주위를 닦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
립스틱이 잘 지워지지 않으면
우리는 커피를 마신 게 아니라 입술을 나눈거니까
왼손잡이면서 오른손으로 커피잔을 쥐고 마시는 건 반칙이야
콩이 갈리는 소리는 가슴을 울리지
가끔은 콩내음이 아닌 기계내음이 나기도 해서
더 친절하게 노즐을 청소해주곤 해
일요일은 왜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같을까
앞뒤가 없어서
출구가 없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날이라서 그리 된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