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는 일을 정하는 것, 운영은 정해진 일을 하는 것.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 정해진 일을 정해진 대로 처리하고 퇴근합니다.
큰 실수도 없고, 맡은 일은 제때 끝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 일을,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하고 있는 걸까?"
지금 하는 일이 회사 사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내 커리어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더 답답한 건, 회사 안 누구에게 물어도 명쾌한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감으로는 알 것 같은데, 그건 어디까지나 감일뿐입니다.
먼저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그 확신 없음은,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회사가 사람을 키우는 순서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두 단어를 먼저 구분하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운영(Operation) 은 정해진 일을, 정해진 대로 하는 것입니다. Do the things right, 일을 올바르게 처리하는 것이죠.
관리(Management)는 무슨 일을, 왜 해야 하는지를 정하는 것입니다. Do the right things, 옳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먼저 흔한 오해 하나를 풀고 싶습니다.
운영은 주니어가, 관리는 시니어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 둘은 직급이 아니라 일의 성격입니다. 그래서 누구의 업무에도 둘 다 섞여 있습니다. 주니어의 하루에도 스스로 판단해야 할 관리의 순간이 있고, 시니어의 하루에도 정해진 대로 처리해야 할 운영의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다른 건 비중입니다. 주니어의 업무는 대체로 운영이 크고 관리가 작습니다. 직급이 오르고 맡은 역할이 무거워질수록, 그 무게중심이 관리 쪽으로 옮겨갑니다. 운영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관리의 몫이 점점 커지는 거죠.
그리고 이 비중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관리는 운영 위에서 자라거든요. 정해진 일을 제대로 굴려본 사람만이, 어떤 일이 진짜 필요한 일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운영의 근육 없이 관리부터 하려 들면 탁상공론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원래대로라면, 운영을 충분히 익히면서 그 위에서 관리의 비중을 조금씩 키워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운영의 묘도 살리고, 동시에 관리의 유연성도 발휘해서 원하는 성과(결과)에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은 이렇습니다.
주니어에게는 운영력을 길러주지 않습니다. 그냥 일을 던집니다.
"이거 해와." 왜 하는지, 잘한다는 게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니어는 '운영을 잘하는 법'이 아니라 '혼나지 않는 법'을 배웁니다. 일은 처리하는데, 그 일을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는 끝내 모른 채로요. 간혹 이와 관련해 상사에게 물어도 납득 가능한 답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하면, 그다음은 모두가 아는 상태가 됩니다. 시키는 대로 빠르게 일을 해야만 하는... 그래서 몸은 회사에 있지만, 영혼은 다른 곳에 가 있는 그런 상태 말입니다.
시니어에게는 커진 관리의 비중을 짚어주지 않습니다.
직급이 올라 업무 속 관리의 몫이 커졌는데, 정작 본인은 그 이동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보고 배운 게 운영 성격의 업무 위주라, 여전히 예전 주니어 때의 습관(태도) 그대로 일합니다. 운영은 꽉 채우면서, 늘어난 관리의 몫은 비워둔 채로요. 그래서 방향을 정해야 할 자리에서 할 일 목록부터 챙기고, 판단을 요구받는 순간에 익숙한 실행으로 손이 갑니다.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닙니다. 자기 안에서 커진 관리의 비중을, 아무도 짚어주지 않았을 뿐입니다.
사실 이 이동이 제대로 일어나려면 두 가지가 맞물려야 합니다. 하나는 개인이 스스로 '내 비중이 옮겨갔다'는 걸 인지하는 것, 다른 하나는 회사가 '이제 이 자리에선 이런 판단, 이런 대응이 나와야 한다'라고 방향을 짚어주는 것. 인지는 개인의 몫, 안내는 회사의 몫이죠. 그런데 현실에선 이 둘이 좀처럼 짝을 이루지 못합니다. 개인이 알아채도 회사가 방향을 안 주거나, 회사가 자리를 줘도 개인이 못 느끼거나, 꼭 한쪽이 빠집니다. 그래서 관리로 넘어가야 할 사람이, 그 문턱에서 멈춰 섭니다. 커리어의 성장이 의도치 않게 멈춰버린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그가 맡은 일의 성장의 국면도 전환됩니다. 성장에서 하락으로.
이러한 상황이 겹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직함으로 보면 회사엔 관리자가 즐비합니다.
그런데 그중 누구도 관리를 하지 않습니다. 다들 명패만 관리자일 뿐, 실제로 하는 일은 운영이니까요. 그래서 정작 방향을 정해주거나, 새롭게 나타난 현상 혹은 문제에 적극적으로 바카라임 있게 나서는 관리자도 없고, 그렇다고 운영 하나를 제대로 붙들고 있는 운영자도 없는 기묘한 공백이 생깁니다. 그래서, 회사에 관리자는 있지만, 운영자는 없습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관리자마저도 없는 셈입니다.
이건 말장난이 아니라 지난 수년의 경험에 의한 진단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여기까지 읽으며 당신이 느낀 그 공허함의 정체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운영을 제대로 배울 기회도, 관리로 넘어갈 기회도 받지 못한 채, 그 사이 어딘가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겁니다.
이게 한 사람의 문제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문제는, 이런 관리자가 조직에 층층이 쌓인다는 데 있습니다.
그때부터 회사는 나쁜 쪽으로 돌기 시작합니다. 회사에서 팀으로. 방향을 정해줘야 할 사람이, 방향 대신 '할 일 목록'을 나눠줍니다. 그러니 팀은 무엇을 위한 일인지 모른 채 바빠집니다. '고객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새로운 활동이 자꾸 늘어나지만, 정작 고객은 별 효능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따라서, 실제 매출 또는 이익의 성장 속도와 방향에도 변화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악화되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 관리자의 속을 들여다보면 이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방향이 없으니, 일의 양으로 불안을 덮는다."
그로 인해 팀에서 회사로 그 헛일들은 고스란히 비용으로 쌓입니다. 성과 없는 활동에 시간과 돈이 새어 나가고, 그건 장부 위 숫자로 드러납니다. 결국 다음 단계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 회사는 투자 협상에서 밀리고, 심하면 다음 자금을 구하지 못합니다. 방향을 잃은 팀 하나하나가, 결국 회사의 생존을 갉아먹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어려워진 회사는 사람을 키울 여유를 더 잃습니다. 운영력도 관리력도 가르치지 못한 채 또 누군가를 관리자 자리에 올리고, 운영자로 사는 관리자를 한 명 더 만들어냅니다. 고리가 처음으로 돌아온 겁니다.
무서운 건, 이 고리 안에서 다음 차례가 바로 나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확신 없이 운영만 반복하다 (경력 기간만) 시니어가 되면, 나 역시 명패만 관리자인 사람이 됩니다. 회사가 저지른 그 미스매치를, 이번엔 내가 나에게 저지르는 겁니다. 그것도 나도 모르게 말이죠.
그래서 이 고리는 회사가 고쳐주기를 기다려서는 끊기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적 상황에서 심각성을 인지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조직 안에서 변화와 성장을 꿈꾸며 먼저 움직이며 여러 시도를 합니다. 회사가 열어주지 않은 문을 아래에서부터 밀어 올리며 자신에게 어울리는 답을 찾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그 한 수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단, 회사와 함께 합의하는 과정을 밟기
핵심은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사업 기준으로 스스로 매겨보는 것.
다만 이건 두 단계로 완성됩니다. 혼자 매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① 혼자, 내 일의 비중부터 재봅니다.
평소에 내가 하는 여러 업무 중에 대표성 있는 업무를 쭉 적어보세요. 그리고 각 업무를 관리와 운영적 요소가 각각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가에 대해 구분해 봅니다. 정해진 대로 처리한 운영인가, 무엇을 할지 내가 정한 관리인가. 다 나눴으면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지금 내 자리에서, 관리의 비중이 이 정도면 충분한가? 주니어 때와 다를 바 없다면, 스스로 의심해봐야 합니다. "혹시 내가 경력만 쌓인 시니어의 탈을 쓴 주니어인가" 이러한 느낌이 온다면, 그게 첫 번째 신호입니다.
이어서 각 항목 옆에 한 줄을 더 붙입니다.
"이 일은 사업의 무엇에 기여하는가."
매출인가, 고객 유지인가, 비용 절감인가, 다음 거래인가. 또는 팀이 가진 고유의 정체성을 사업 입장에서 재해석해보는 겁니다.
한 줄이 안 써지는 항목이 반드시 나옵니다. 바로 그게 의심의 출발점입니다. 없애야 할 업무일 수도, 목표를 다시 잡아서 재설계해야 하는 업무일 수도 있습니다.
이어서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이 업무가 사라지면, 사업에는 무슨 일이 생기는가?
지금 쏟는 시간과 이 일의 사업적 값은 균형이 맞는가?
내 업무들을 사업 기준으로 다시 줄 세우면, 순서가 어떻게 바뀌는가?
말로만 들으면 막연하니, 직무만 바꿔 같은 흐름을 통과시켜 보겠습니다.
어느 자리에 있든 방식은 똑같습니다.
핵심은 업무 자체가 아니라 그 업무 안에서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입니다.
같은 리포트도, 숫자만 채우면 운영에 머물고 '그래서 무엇을 하자'가 붙으면 관리의 성격이 일부 붙으며 업무에 대한 자기 주도성 등이 확보됩니다. 그럼, 일을 하는 재미와 의미, 가치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노하우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일이 즐거워질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 흐름을 당신 버전으로 끝까지 채워볼 수 있게, 점검 워크시트를 하나 만들어 두었습니다.
(풀 버전이 필요하신 분들은 댓글로 아래에 이메일 주소만 적어주시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가상의 마케팅 파트 리드 사례를 끝까지 채운 '예시' 한 장과, 당신이 직접 쓰는 '내 차례' 한 장이 들어 있습니다. 업무마다 운영·관리 요소와 겨냥 지표를 적고, 지금의 내 모습과 리더·회사가 합의한 기대 사이의 갭을 정량·정성으로 나눠 무엇을 보완할지 의견을 내미는 것 — 여기까지가 한 세트입니다. 사실 이게 좋은 비즈니스 리더십 피드백이 굴러가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② 동료와, 합을 맞춥니다.
혼자 매긴 값은 아직 '감'입니다. 감을 확신으로 바꾸는 건 검증뿐입니다.
거창한 회의를 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1:1이나 짧은 대화에서 가설을 던지면 됩니다.
"저는 이 업무가 결국 ○○를 위한 거라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 판단이 맞고 여기에 대해 동료의 인정을 받으면, 확신이 생깁니다.
틀리면, 더 값진 걸 얻습니다. 내가 놓치고 있던 사업의 맥락 말이죠.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어느새 나는 '주어진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함께 정하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동료들도, 나를 그렇게 대하기 시작합니다. 회사가 놓아주지 않은 운영과 관리 사이의 다리를, 내가 스스로 놓은 셈입니다. 결국, 회사가 나를 인정해 줄 때까지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때마다 내가 가진 생각과 의견을 전달하면서 내가 그들과 너무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도 확인하고, 동시에 그들은 나의 생각과 비슷한 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함께 일한다'는 느낌을 계속 받으면서 일할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이 참인 회사는, 사람을 키우는 순서가 무너진 회사입니다.
그 순서를 회사가 고쳐주면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동안에도, 스스로 준비할 방법은 있습니다. 내 일의 값을 사업 기준으로 매겨보고, 그 값을 동료와 맞춰보는 것. 그렇게 스스로 다리를 놓아본 사람은, 언젠가 관리자 자리에 앉았을 때 운영자 노릇을 하지 않습니다. 이미 관리하는 법을, 아래에서부터 익혀왔으니까요.
주니어는 일을 올바르게 하고(Do the things right),
시니어는 옳은 일을 합니다(Do the right things).
그 사이를 잇는 다리는 회사가 놓아주길 기다릴 수도 있고 내가 먼저 놓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빠를지는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이미 아실 겁니다. 그럼, 아는 바를 실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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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스쿨 김영학 대표. 17년차 전략 컨설턴트.
6년이 넘는 동안 1,500여 명의 온라인 게임인을 만나 커리어 코칭을 했고, 함께한 사람들이 스타트업 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중견기업에서 전도유망한 스타트업 기업으로, 외국계 기업이나 해외로 취업하는 것을 도왔다. 또한 수년간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전략 기반의 비즈니스 컨설팅을 했으며, 현재는 스타트업 전문 비즈니스 코치로도 활동 중이다. 또한, 온라인 게임생활과 커리어에 인사이트를 주는 글을 꾸준히 쓰고 있으며 〈이코노믹리뷰〉에 ‘온라인 게임에서 생존’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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