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조용한 슬롯 기술
할 수 있다는 것과 해도 된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 둘을 자연스럽게 같은 문장 안에 놓게 되었다. 가능성이 곧 권리처럼 느껴지고, 내 몫을 최대치까지 챙기는 일이 어느새 영리함의 증거처럼 여겨지는 시대. 나쁜 사람들이 만든 세상이 아니다. 저마다 합리적으로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달한 풍경에 가깝다.
그러니 딱히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그냥 이런 거구나 하고 넘어가기도 쉽다. 하지만 가끔은 그 풍경 앞에서 잠깐 멈춰볼 필요가 있다.
도로에는 안전거리가 있다. 법으로 정해진 거리가 아니라, 앞차가 급정거해도 내가 멈출 수 있는 거리. 그 여백은 내 것도 아니고 남의 것도 아니다. 그냥 비어 있어야 하는 공간이다. 사람 사이에도 비슷한 거리가 있다. 법적으로 문제없고, 명시된 규정도 없지만, 그래도 여기까지는 가지 않는 것. 우리는 그걸 오랫동안 그냥 알고 있었다. 배운 것도 아니고, 강제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는 것이었다.
그 감각의 이름이 거리낌이다. 법이 강제하지 않아도 스스로 물러서는 것. 이익이 보장되어도 선뜻 나서지 않는 것. 논리적으로 정당해도 어딘가 찜찜한 기분. 이 감각은 비효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슬롯가 마모되지 않도록 막는 완충재였다. 그리고 그 완충재는 규칙이 아니라 감수성으로 작동했다. 조항이 아니라 분위기로. 강제가 아니라 자발로. 우리는 이것을 미덕이라 불렀고, 어른다움이라 배웠다. 이름은 시대마다 달랐지만 가리키는 방향은 늘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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