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한 최강의 사과 전화
순간 지혜의 눈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눈가에 맺히는 게 내눈에 보였다. 반짝이는 그것은 덩치를 키우더니 결국 볼을 타고 아래로 쭈욱 미끄러져내렸다. 나의 볼에도 따뜻한 무언가가 흘러내리는게 느껴졌다. 참 신기한 노릇이었다. 아무 표정의 변화 없이 감정의 변화 조차도 없이 눈물이 흘러 내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기쁨도, 슬픔도 감격도, 절망도 아닌 내가 아는 단어로는 표현 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굳이 한 단어를 떠올리자면 감사였던 것 같다. 그 무엇도 잘 난 것 하나 없는 나를 기다려주고, 위로해 주고, 붙들어 주는 사랑에 감사함이었다.
"왜 울어 바보 같이! 대답을 해야지?"
먼저 말문을 연 사람은 지혜였다.
"아~ 그랬었나? 정신이 없을 정도로 감사해서! 고마워! 그래~우리 결혼 하자!"
그 순간 지혜의 어깨를 가볍게 껴안았다. 왠지 모르게 힘줘 안으면 부서질것처럼 가녀리게 느껴졌기때문이다. 지혜의 어깨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이 멈출때까지 아무말없이 안아 주었다. 지켜주고, 보호해주고 싶었다. 시간이 멈춘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내 품속에서 너무나도 연약하게 콩닥이고 있는 울림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래~ 고마운 줄 알면 나한테 잘 해! 앞으로~"
지혜가 눈물을 훔치며 머리를 치켜 세웠다. 원래 반짝이던 지혜의 눈은 눈물로 씻겨 더욱 반짝이고 빛났다. 호수에 비치는 윤슬처럼!
"그래~평생 모시고 살게!근데...."
"근데? 뭐?"
갑자기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를 크게 잘 못 한 듯한....
"프로포즈를 내가 받아도 되나? 난 일좀 정리 되고 나면 내가 근사하게 하려고 했거든! 그래서 기분이 묘해! 뭐랄까? 뭔가 그저 먹든 듯한..."
"푸하하하! 알긴 아네! 그니까 더 더욱 나한테 잘 해라! 백강현!"
좀 전까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지혜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음을 터트렸다.
"이따 저녁에 일찍 정리하고 아빠한테 인사드리러가자! 부모님께도 주말쯤 인사드리고 싶어!"
지혜는 다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그러자!우리 부모님도 너보면 엄청 좋아하실거야~"
현 총장님도 우리 부모님도 눈물까지 보이시며 우리의 결혼 소식에 적극 찬성하셨고, 현 총장 퇴임도 다가 오고 있었고,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한달 뒤에 상견례하고 결혼식도 6개월 내로 잡자고 양가에서 합의 하셨다. 이렇게 까지 급물쌀을 탈지 몰랐지만, 우리 결혼은 학원사정과는 별개로 그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 했다. 우리 결혼 소식이 퍼지자 나를 둘러싸고 있던 추문들은 어느 정도 잠잠해 졌다.
다행히 그 시점에 결혼 소식을 터뜨린게 효과가 있었다. 학생들과 학부모님들 사이에서도 더이상 말이 번지지 않는 눈치였다.
"설마 이것까지 계산 한 거야? 지혜야!"
부모님 댁에 다녀오는 차안에서 지혜에게 물어봤다.
"내가 신도 아니고 어떻게 알았겠어! 다만..."
잠깐 말꼬리를 흐렸다.
"다만! 뭐?왜 거기서 말을 끊어? 여하튼 사람 궁금하게 하는데는 선수라니까!"
"푸하하. 사돈 남말하시네..됐고...다만 이럴 때일수록 너랑 더 붙어 있고 싶었어"
지혜는 운전을 하면서도 나를 보고 눈을 찡긋했다.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팔색조 미녀였다. 지혜는...행복했다. 우리는 그리고 이 행복이 영원할 거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짧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
학원도 어느정도 성장궤도 올랐고 결혼식도 한 달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여보세요? 자네가 웬일인가? 이 시간에..."
저녁식사를 마치시고 우리와 차를 한 잔하시며 담소를 나누고 계시던 현 총장님께서 표정이 약간 굳어 지시면서 전화를 받으셨다.
"그래. 알았네. 내 채비를 하고 잠시 후 그리로 감세!"
"아빠! 누군데 이 시간에 외출을 하려고?"
전화를 끊자 지혜는 현 총장님께 걱정스런 눈빛으로 물었다.
"어! 최 강인데 나한데 긴히 말하고 사죄드릴게 있다고 요 앞 사거리 공원에서 잠시 보자고 하네! 내 잠시 다녀 오마!"
현 총장님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지혜와 나는 서로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봤다. 현총장님이 만나러가는 상대가 다름 아닌 최 강이었기 때문이었다.
"저랑 같이 가시죠! 아버님! 시간도 늦었는데요"
내가 걱정스럽게 말을 꺼내자 지혜도 거들었다.
"그래! 아빠! 우리라 같이 가!"
"어허~사과 할게 있다고 온다는데 우루루 몰려가면 사과하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겠나? 요 앞이니 얼른 다녀 올 테니 걱정 말고 기다려! 여긴 우리 동네야! 길가에 풀한포기, 꽃 한 송이까지 훤히 다 알아~걱정 말고 쉬고 있어!"
현 총장님은 단호하게 우리의 동행을 만류하셨다.
"아빠...그래도....."
지혜는 마지막까지 부탁을 했지만 현 총장님은 걱정마시라며 곧 다녀 온다고 현관문을 나서셨다. 왠지모를 불길함에 온 몸의 털을 곤두서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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