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미국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후회되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소위 '아는 척'을 한 거였다고 말하고 싶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온라인 게임생활을 해 왔고 경력의 짬도 있다 보니, 회사 업무에 관련된 웬만한 문제들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회의 시간에 너무 기초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와 쟤는 어떻게 저런 것도 모르냐' 하며 속으로 무시 (내가 뭐라고) 했던 적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모르는 것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게 느껴졌다.
단지 UX 업무 때문이 아니었다. 한국과 다른 문화, 일하는 스타일의 차이, 그리고 언어에 대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언어에 대한 문제가 컸는데. 원어민이 아니다 보니 행간의 의미와 뉘앙스를 놓치면 맥락을 따라가는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이럴 땐 그냥 물어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데, 왠지 나만 못 알아듣고 있다는 걸 들키는 게 창피하고 바보 같아서, 그냥 아는 척하고 넘어갔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다 나중에야 완전히 반대로 알아들었던 걸 깨닫고, 부랴부랴 밤새워 작업을 다시 고친 경우도 많았다.
왜 아는 척을 했냐면, 남들 다 이해하는 걸 나만 못 알아듣는다는 사실이 창피하고 자존심도 상했으며, 무엇보다 그런 내 모습을 들키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
저 어린 친구도 다 알아듣는데, 이 나이에 이 경력으로 아직도 이걸 이해 못 하고 있다니!
영어까지 안 되니 자신감도 자존감도 떨어졌고, 그래서 더더욱 모른다고 인정하기가 싫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점점 주눅이 들었고, 작아지는 내 모습이 한없이 초라해져서 질문하기가 더 두려워졌다.
가끔 용기 내서 질문을 해도, 돌아오는 답이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 때도 많았다.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러다 어느 날 동료와 밥을 먹다가 알게 된 사실 — 세상 어디에나 설명을 어렵게 하는 사람은 있다는 것. 그리고 알고 보니 영어가 모국어인 그 동료조차 회의 내용을 잘 못 알아듣겠다는 것이었다. 즉, 이건 영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그 사람과 나의 차이는, 그는 못 알아들은 경우 바로 손을 들고 질문한다는 것이었다.
난 그땐 왜 그렇게 질문하는 게 창피했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교육의 고질적인 폐해인지도 모르겠다.
내 나이대는 대중 앞에서 질문하는 데 유독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나도 학교 다닐 때 모르는 게 있어도 그 자리에서 묻지 못하고, 나중에 선생님께 따로 물어보곤 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아무튼 몇 년을 그렇게 삽질하며 몸이 피곤하게 살다 보니, 이제는 질문하는 쪽팔림을 어느 정도 극복해 나가고 있다.
차라리 한번 용기 내서 쪽팔리고 말자는 쪽으로 바뀐 셈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소리를 듣게 되는 날도 왔다.
"그런 질문을 해 줘서 고마워. 네 덕분에 모두가 회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어."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더 용기가 생기고 안심이 된다.
굳이 아는 척하지 말자.
못 알아들을 수도 있는 거지. 모르고 앉아 있다가 나중에 일을 그르치는 것보다, 모를 땐 모른다고 인정하고 물어보는 게 훨씬 낫다.
그거 물어본다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얼마 전 워크숍 때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내가 모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큰 발전이다.
남 눈치 보지 말자.
모르는 건 모른다고 속 시원히 말하자.
모를 수도 있지.
모르면 그냥 물어보면 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