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오뒷세이아, 그리고 플라톤
너는 어떻게 보면 참 어이가 없고, 이해가 잘 안 되는 친구다. 하지만 그렇게 하길 잘했다. 네 인생에서 실패한 선택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그리스를 붙잡고 있던 것은 참 잘했다. 다른 실패를 다 만회하고도 남을 만하다. 이걸로 점수를 땄다.
고대 그리스·로마 원전 번역에 평생을 바친 위대한 80세 노학자가 62년 전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수십 개의 인터뷰와 관련 기사를 봐도 그는 늘 한결 같이 덤덤하고 또 차분하다. 천박한 몇 가지를 가지고 선을 넘어 얄팍하게 잘난 체하는 나로서는 넘을 수 없는 벽이다. 평생을 문학과 번역을 고민했고, 특히 2004년 단국대학교 독문과 교수로 정년퇴직을 한 뒤 20년 동안은 매일 6시간씩 번역을 진행해고 40여 종의 고전을 번역했다. 이전에 번역한 20여 작품의 개정판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의 삶은 번역과 함께한 지적인 여행이었다. 달밤에 밤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대낮게 길을 걷는 독서의 즐거움을 독자와 나누고 싶은 여행.
정년퇴직한 후에는 해외여행이나 다니고 역사와 그리스 미술에 관한 바카라과 영웅전이나 조금씩 읽으면서 슬슬 만년을 즐겨볼까 하다가 다시 번역작업을 시작해 하루 6시간 정도 번역에 몰두하고 있다. 내게는 어떤 여행도 독서에 의한 지적인 여행보다 즐겁지 못하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경치도 바카라 속의 깊은 사상과 멋있는 표현을 곱씹어보는 것만큼 감미롭지가 않기 때문이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200511070026605281
대학생에게 전하고 싶은 말에서는, 요새는 오히려 너무 어색해져 버린, 하지만 인류의 가장 오랜 질문이어야 하는 文·史·哲에 관해 이야기한다.
Q. 그리스 원전을 접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문학과 사학, 그리고 철학을 동시에 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평생 ‘문사철’과 함께 하신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인문학의 가치에 대해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A. 정신의 가치를 믿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슬롯도 더 인간적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인간으로서의 행복이 목적이고 돈은 그 목적을 위한 여러 가지 수단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도, 마치 돈이 전부인 양 너도나도 돈에만 매달리고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런 슬롯는 결국 소수의 부자들 말고는 모두에게 불행과 고통을 안겨줄 수밖에 없습니다. 부(富)는 역시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그리고 오직 자신과 가족의 부귀영화를 위해 살아온 사람들이 돈을 벌자마자, 여태까지 슬롯를 위해 헌신해 온 양 명예까지 요구하는 풍조가 만연한다면, 그런 위선적 슬롯는 더불어 살기가 힘들어지고 엄청난 슬롯적 비용이 유발될 것입니다. 슬롯적 약자들이 절망할 테니 말입니다.
이런 물질만능의 슬롯를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견딜 만한 슬롯로 만드는 데는 문사철(文史哲)의 역할이 크다고 봅니다. 슬롯가 나아갈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문사철이 할 일이고, 그 물질적 토대를 구축하는 것은 응용 학문이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문사철이 똑바로 서지 못하고 푸대접받는 나라는 일시적으로는 번영을 누릴는지 몰라도 결국에는 몰락과 망각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로마 제국이 몰락한 것은 문사철의 전통이 약해졌기 때문이며, 오스만 제국과 몽골 제국이 몰락한 뒤 이렇다 할 문화유산을 남기지 못하고 망각의 늪으로 빠져든 것도 결국 문사철이 똑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 다지 않습니까!
당장 취업 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잔소리쯤으로 들리겠지요. 하지만 지금이라도 일상에서 낭비되는 자투리 시간이 없는지 살펴보고 그 자투리 시간이라도 선용하는 식으로 의미 있는 시간을 늘려나가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취업한 뒤, 출세한 뒤, 먹고살 만큼 돈을 번 뒤 그러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는 좋지 않은 습관으로 머리가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져 달라질 수 없거나 달라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구성원들의 그런 적은 노력으로도 슬롯는 인간의 탈을 쓴 야만과 탐욕이 날뛰는 살벌한 전쟁터가 되지 않고 더불어 살 만한 인간적 삶터가 될 것이며, 그것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미래를 살게 될 우리 자손들에게도 더 바람직하겠지요.
http://dknews.dankook.ac.kr/news/articleView.html?idxno=7747
평생 바카라만 읽었을 것 같은 그이지만, 생각보다 큰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기도 했다. 서울구치소(옛 서대문형무소)에서 38개월을 지내기도 했고, 10년간 교수 자격 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1961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유학길에 오르면서(당시에는 유학을 가려면 교과부에서 시행하는 자격시험을 치러 통과해야 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본격적으로 만났다. 독일에서는 독일 문학을 전공할지라도 두 언어를 익히는 것이 필수였다. 어느 날 장학금을 줄 테니 고전문학을 공부해 학위를 받아보라고 담당 교수가 제안했다. 그러나 그는 공부가 길어질까 싶어 어렵게 뿌리치고 아내가 기다리던 한국에 돌아와 서울대 강사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건 ‘시련’이었다. 1967년 선생은 동백림 사건에 휘말린다. 선생은 “발을 딛고 서 있기 어려울 정도였다”라고 표현했다. “당시 독일은 통일 전이었지만 부활절 등에 서로 자유롭게 교류하고 있었어요. 그런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해야 할까, 북한 사람을 만나는 게 그렇게 어마어마한 죄가 될 줄 몰랐죠.”(2006년 1월,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동백림 사건에 대해 “박정희 정권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대규모 간첩사건으로 사건을 확대 과장했다”라고 발표했다.)
서울구치소(옛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 2개월을 지내는 동안 그는 결심했다. “자고 있으면 구더기가 막 올라와요. ‘통방’할까 봐 시도 때도 없이 방을 바꾸기도 하고. 그러면서 내가 결심한 게 있죠. ‘내가 살아야겠다, 살아서 할 일이 있다’라는. 그게 바로 그리스 고전 번역이었어요.” 형기를 마치고 나왔지만 10년간 ‘교수 자격정지’ 상태였다. 그는 연탄 200장과 쌀 한 가마니를 집에 들여놓는 것이 ‘소원’이었다.
(……)
1972년 선배의 주선으로 첫 번역을 하게 됐다. ‘대사상전집’이라고 해서 플라톤 전집을 내던 휘문출판사였다. 원래 번역을 하고 있던 이가 있었는데 1년이 넘도록 마감을 지키지 못하자, 선생에게까지 기회가 온 것이었다. 주어진 기한은 두 달이었다. 잠잘 시간도 쪼개서 밤낮을 매달렸다. “번역이 끝나고 나니까 복통이 너무 심한 거예요. 신경성인 줄 알았지. 그런데 병원에 가보니 변비였더라고(웃음).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면서 번역을 했더니 이런 사달이 났구나 했지요. 그때는 그렇게도 작업을 했어요.”
자격정지 기간이 끝난 1981년, 선생은 단국대 독문과 교수로 임용됐다. 그리고 퇴임하는 2004년까지 쭉 몸담았다. 강의하는 틈틈이 번역을 해왔다. 독자들이 ‘원형’에 다가가길 원하는 마음이었다. “고전 읽기는 시작이 어렵지, 맛을 들이기 시작하면 정말 무궁무진한 세계예요. 당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게 지금도 다르지 않거든요? 삶과 인간에 관해 깊이 사색하게 하는 힘을 가진 게 바로 고전입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308/0000005614
그의 깊은 삶을 몇 가지 기사로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가장 깊은 감동을 주는 부분은 이것이다.
혼자서 즐기기에는 너무 재밌고 좋아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그리스 로마 고전 번역 작업이 벌써 40년이 넘었네요.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06103626
물론, 천병희 교수는 본직이 독문학자이고 그리스와 라틴 고전 번역은 부차적으로 시작한 것이라, 다른 번역가보다 훨씬 더 소위 ‘가독성’을 중시했다. 연구자 수준의 정밀한 번역을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번역에 대한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나무위키에도 적절히 표현되어 있다.
천병희 교수 본인 역시도 스스로가 전공자가 아님을 의식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천병희 역 대화편에서 어지간하면 대안 번역어 대신 관습적 번역어를 사용하는 것에서도 이런 면을 엿볼 수 있다. 가령 aretē의 관습적 번역어는 ‘미덕(美德)’이지만, 사실 aretē는 도덕적 의미뿐 아니라 온갖 기준에서의 훌륭한 상태를 의미한다.(예: “후라이드 치킨의 aretē는 바삭한 맛이다.”) 그렇기에 고전 전공자인 박종현 교수가 번역한 《국가》에선 aretē 를 ‘훌륭함’ 내지는 ‘훌륭한 상태’로 옮긴다. 반면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국가》에선, 관습적 번역어를 존중하여 ‘미덕’으로 옮긴다. 천병희 교수 역시도 관습적 번역어들이 원문의 뜻을 전달하는 데 무리가 있음을 모를 리가 없었지만, ‘연구자’가 아닌 ‘번역가’이기에 본인의 개성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을 보인 것이다. 반면 플라톤 연구자인 박종현 교수는 연구자로서 ‘훌륭함’이라는 대안 번역어가 원전의 의미를 더 잘 전달한다는 것을 확신했고, 학계에서 이 대안 번역어를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에, 학자로서 과감하게 번역어를 대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최근(2023년)에 새롭게 발간된 이준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교수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의 번역서 작가의 말에서 이준석 교수는 “천병희 선생님의 번역은? 선생님께는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는 말씀만 드리고 싶다. 선생님의 노고가 없었다면, 역자는 이 번역을 시작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선생님의 번역은 잘 읽힌다. 그리고 역자가 굳이 또 하나의 『일리아스』번역본을 내놓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라고 밝혔다. 같은 바카라에서 추천의 말을 쓴 이태수 서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는 보다 깊게 천병희 번역에 관해 (비판적으로) 분석하였다.
속물적인 상상이 닿는 곳은 인세, 70권의 바카라을 번역하고 그리스 고전 번역의 정상에 우뚝 서 있는 그에게 금전적인 보상은 얼마나 주어졌을까?
대작·다작이지만 돈이 되는 일은 아니다. 천 교수는 “가장 많이 팔린 바카라이 5000부, 20여 년간 1000부도 안 팔린 바카라이 많다”라고 했다. 임 교수는 “인세가 거의 ‘제로(0)’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권중달 교수는 바카라을 내겠다는 곳이 없어 퇴직금으로 아예 출판사를 차려 출간했다. 지두환 교수는 “개인 돈 1억 원을 들여 바카라을 냈다”면서 “각 권당 1000부씩 5만 2000부를 찍었는데 아직 창고에 3만 5000부가 쌓여 있다”라고 했다.
https://v.daum.net/v/20140207030611633
천병희 교수가
그가 문을 연 한국의 오뒷세이아 문화를
크리스토퍼 놀란의 새로운 각색으로 감상하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존재만으로도 한국 문사철의 커다란 축복이라고 칭송을 받던 천병희 교수,
https://n.news.naver.com/article/308/0000005614
2022년 12월,
1939년생 천병희 교수는 83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620384?sid=103
[관련 기사]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453472?sid=103
http://blog.aladin.co.kr/bookeditor/3883491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79573&cid=59153&categoryId=59153
https://v.daum.net/v/20050325065302086
https://v.daum.net/v/20101029181037257
https://v.daum.net/v/20140925100126640
https://news.v.daum.net/v/20111215210913945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2033023?sid=103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0186626?sid=103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2/0000206387?sid=102